![[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수재를 당했을 때는 '초토화'가 아니죠](https://img.hankyung.com/photo/201708/AA.14516281.1.jpg)
![홍성호 한국경제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https://img.hankyung.com/photo/201708/01.14544855.1.jpg)
‘초토’는 불에 타 그을린 땅
태풍으로 폭우가 휩쓸고 지나가거나 집중호우로 홍수가 져 큰 피해를 입었을 때 흔히 ‘수마(水魔)가 할퀴고 지나가다’란 말을 쓴다. 그리고 거기에 습관적으로 따라붙곤 하는 말이 ‘초토화(焦土化)’다. 하지만 이 말은 물난리로 피폐해진 곳에 쓰기엔 적절치 않은 점이 있다. ‘초토(焦土)’란 글자 그대로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을 말하기 때문이다. 한자 焦가 ‘(불에)그을리다, 불타다’를 뜻한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초미(焦眉)의 관심사’란 게 있는데, ‘아주 다급하고 중요한 관심사’라는 뜻으로 쓰인다. 눈썹(眉)에 불이 붙었으니(焦)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랍고 애가 타는 상황일지 짐작이 간다.
마찬가지로 초토화는 본래 화재를 당하거나 폭격 따위로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현장을 나타낼 때 적합한 말이다. “마을이 불타 순식간에 초토가 됐다” “가스 폭발로 공장이 초토화됐다” “폭격으로 초토화된 도시” 같은 게 전형적인 표현이다. 좀 더 넓게는 ‘불에 탄 것처럼 황폐해지고 못 쓰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가령 ‘시장 개방으로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이 초토화할 우려가 제기됐다’느니, ‘소행성이 지구를 강타할 경우 그 파괴력은 대륙 하나를 초토화시킬 정도다’처럼 쓰인다. 이 역시 ‘황폐해진 상태’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일 뿐, 직접적으로 수해를 당한 것을 두고 하는 표현은 아니다.
‘쑥대밭’ ‘아수라장’이 적절한 말
수재(水災)를 당했을 때는 ‘초토화’ 대신 문맥에 따라 ‘쑥대밭’이나 ‘아수라장’ 따위를 쓰는 게 좋다. ‘쑥대밭’은 쑥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는 거친 땅을 말한다. 여기서 의미가 확장돼 ‘매우 어지럽거나 못 쓰게 된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이게 됐다. ‘쑥대+밭’의 구성으로 된 합성어이다. ‘쑥대’는 물론 쑥의 줄기를 이른다. ‘쑥대’와 어울려 이뤄진 말에는 ‘쑥대머리’도 알아둘 만하다. 이는 ‘머리털이 마구 흐트러져 어지럽게 된 머리’를 가리킨다. ‘쑥대밭 같은 머리카락’, 그것이 곧 쑥대머리다. 한자어 ‘봉두난발(蓬頭亂髮)’도 같은 말이다. 사람에 따라 이 말을 더 익숙해할 것인데, ‘머리털이 쑥대머리같이 텁수룩하게 마구 흐트러진 것’을 뜻한다.
불교 용어에서 온 ‘아수라장’도 골라 쓸 만하다. 이는 극심하게 혼란스러운 상태를 나타낼 때 적절한 말이다. ‘수도권 강타한 폭우…쓰레기로 하천 아수라장’ ‘인천 지역에는 시간당 100㎜에 가까운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한 명이 숨지고 주택 600여 채와 주요 간선도로가 침수되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처럼 쓴다. 그 정도가 지나쳐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상태라면 ‘아비규환’이다. 사람들이 엉망진창으로 뒤엉켜 뒤죽박죽이 됐으면 ‘난장판’ ‘깍두기판’이라고 한다.
이를 더욱 속되게 말하면 ‘개판’이다. 하지만 이 말은 그리 품위 있는 표현이 아니므로 조심해서 써야 한다.
홍성호 한국경제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