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값의 60%가 세금…유가인하 혜택 못봐
100:85:50으로 묶인 경직된 가격 구조도 문제
대한민국은 석유수출국이다100:85:50으로 묶인 경직된 가격 구조도 문제
‘대한민국은 석유수출 국가다.’ 이 말은 사실이다. 한국은 산유국은 아니지만 틀림없는 석유수출 국가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한국은 작년에 원유 10억7812만배럴을 수입했고 석유 4억8819만배럴을 수출했다.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회사들은 원유를 수입한 뒤 고급 항공유, 휘발유, 경유, 등유 형태로 정제한 석유 제품을 고가(高價)로 66개국에 수출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는 석유화학산업이 일찌감치 발전한 덕분이다.
정유회사들은 수출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석유제품을 국내 소비자에게 판다. 한국 기름값은 결코 싼 편이 아니다. 국제 유가가 내릴 때도 체감 가격은 높게 느껴진다. 실제로 그런 면이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최고 수준인 유류세를 첫째 원인으로 지목한다. 일반적으로 공산품의 소비자가격은 ‘공장원가+유통마진+세금’으로 형성된다. 하지만 휘발유와 경유에는 이런 계산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세금이 ‘공장원가+유통마진’보다 크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다. 이런 구조는 오래전에 형성됐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은 석유 의존도를 줄여야 하고 그래야 환경오염에도 대처할 수 있다.’ 이런 논리는 ‘세금을 왕창 부과해 가격을 높여야 한다’로 귀결됐다.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세금은 여섯 가지나 된다. 가격과 상관없이 정액제로 고정돼 있는 교통에너지환경세(529원), 교육세(79.35원), 주행세(137.54원)에다 관세(3%), 부가가치세(10%), 수입부담금(L당 16원)이 유류세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휘발유가 L당 1500원이면 60% 이상인 909원이 세금이다. 정유회사들은 주유소 등을 통해 휘발유를 L당 1500원에 팔지만 이 중 909원을 세금으로 걷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제, 수송, 저장, 유통, 마케팅 등을 모두 담당하는 정유회사가 소비자 꾸중을 다 듣는다.
기름값 내리려면 유류세 내려야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정유업계와 주유소업계에 기름값 인하를 요구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지난 수년간 정유사들은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L당 100원 인하’ 등으로 대응하긴 했다. 하지만 복병은 여전히 높은 유류세다. 사실 폭리를 취하는 쪽은 정부라고 보는 게 옳다. L당 1500원인 경우 세금이 909원이라는 말은 가격 인하의 열쇠를 정부가 쥐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세금을 내리면 가격 인하폭은 커진다. 유류세를 인하하지 않으면 휘발유 가격이 1300원 이하로 떨어지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혜택을 서민에게 돌려주려면 유류세를 낮춰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정유회사들이 떼돈을 벌까? 2011년 두바이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에서 120달러로 솟아오를 당시 국내 휘발유 가격도 L당 1800원에서 2000원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이때 정유회사들은 73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중국 인도 등 경쟁국의 정유회사들이 원유 가격을 상쇄하기 위해 휘발유 등을 앞다퉈 생산한 탓에 공급과잉을 빚은 결과였다. 정유회사들은 정작 L당 1402원으로 떨어진 작년에 큰 돈을 벌었다. 비싸면 덜 쓰고, 싸면 더 쓰는 경제원리가 적용된 데다 중국 일본 등 경쟁업체들이 시설점검을 하느라 생산을 줄인 이유도 작용하긴 했다.
100 대 85 대 50이라는 ‘희한한 구조’
가장 많은 의문은 국제원유 가격이 내리는데 왜 국내 기름값은 빨리 안 내리느냐는 것이다. 원유가격이 내리거나 오르면 국내 기름값도 따라서 변하긴 한다. 하지만 그동안 생산된 휘발유 등 재고가 있으면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는 데 시차가 생긴다. 국내 기름값은 원유보다 국제 휘발유 가격에 영향을 더 받는다고 한다. 한국 휘발유 가격은 역내 석유 제품시장인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국제제품가격(MOPS)을 기본으로 매일 결정된다. 휘발유의 수요와 공급은 원유와 별개라는 뜻이기도 하다.
휘발유, 경유, LPG의 상대가격을 100 대 85 대 50으로 정한 것도 바꿀 때가 됐다는 지적이 있다. 유류세가 높은 휘발유를 기준으로 묶어 놓은 가격구조 탓에 경유와 LPG 가격도 경직돼 있기 때문이다. 환경보호를 생각한다면 질소산화물 등을 많이 배출하는 경유의 가격을 지금보다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LPG는 전체 소비량의 66%를 수입에 의존한다. 석유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면서도 서민용 에너지(?)라는 논리로 교통환경에너지세와 주행세 등이 면제되고 있다. 한국 기름값은 여러모로 묘하다. 기름값으로 정부가 한해 거둬들이는 세금이 20조원이 넘는다. 기름값 구조가 묘하다.
NIE 포인트
기름값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자세히 조사하고 가격인하를 둘러싼 정부와 정유회사의 입장을 비교해 보자.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