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신드롬은 어른이 돼도 여전히 어린이 상태에 머무르고자 하는 심리를 일컫는다. 책임이 버거워 그냥 어린이로 머물고 싶어 하는 심리로, 미국 심리학자 댄 카일러의 《피터팬 신드롬》에서 유래했다. 한데 바로 우리나라 중소·중견기업들이 ‘피터팬 신드롬’을 앓고 있다. 대기업이 되는 것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대기업이 되는 순간 엄청난 규제로 성장에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3일 셀트리온 카카오 SH공사 하림 한국투자금융 금호석유화학을 ‘상호출자·채무보증 제한 기업(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대기업집단은 65곳으로 늘어났다.

인터넷 은행업에 진출하기 위해 지난해 정부로부터 예비인가를 받았던 카카오는 이번 대기업집단 지정으로 사업 진출이 불투명해졌다고 걱정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으로부터 복제의약품(바이오시밀러) 판매 승인을 받은 셀트리온도 향후 계열사 간 채무보증을 할 수 없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거라는 우려가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던 벤처 기업들이 대기업집단으로 분류되면서 되레 ‘성장 제약의 굴레’가 씌워지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해외에서 찾아 보기 힘든 우리나라 특유의 ‘경제력 집중 억제 제도’다. 독점으로 인한 폐해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에 독점 폐해가 아닌 독점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을 규제하는 정책이다. 1981년 공정거래법이 제정될 때 도입됐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우리나라의 특별한 산업 구조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경제개발 초기 전자·조선·자동차·철강 등 중화학산업을 집중 육성한 결과 이들 산업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격차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기업으로 경제력이 과도하게 집중됐다는 통계는 대부분 왜곡되고 부풀려져 있다.

오히려 자유무역협정(FTA) 등 시장 개방으로 세계적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시장 상황에서 우리 대기업들이 몸집을 더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 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지만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인 자산 규모 5조원이 2008년 후 9년째 제자리걸음인 것도 문제다. 그러다 보니 덩치를 더 키워야 할 벤처 기업들까지 대기업으로 지정돼 성장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기준을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부 정치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고 대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4, 5면에서 대기업집단의 의미와 우리나라 대기업의 국제적 위상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