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정주영 탄생 100년
아산 정주영의 전설
아산 정주영의 전설
전설①…거북선 기적
전설②…봉이 정선달
당시 40대의 그리스 선박왕은 정주영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정주영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내가 도박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는 26t급 배를 두 척이나 주문했다. 계약금은 14억원. 당시 쌀 한 가마 가격이 5000~6000원 정도 할 때였다. 정주영은 약속한 기간인 5년 반보다 일찍 배를 만들어 주었다.
다음 전설은 자동차산업에서 나왔다. 1974년 7월 정주영은 자동차 공장을 짓기로 마음 먹었다. 1년에 무려 5만6000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었다. 조선소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 도박이었다. 이전에 자동차 6대를 조립해보긴 했지만 그렇게 많은 물량을 만들 능력이 있을까.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 당시 국내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수가 1000대 정도였으니 주위의 우려가 무리는 아니었다. 정주영의 생각은 달랐다. “수출하면 된다”였다. 주변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일본 자동차 조립회사의 방해도 많았다. 무리한 계획이었지만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는 것이 정주영식이었다. 1974년 현대는 ‘포니’를 이탈리아 자동차쇼에 선보였다. 90%가 자체 부품이었다. 1976년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지금의 현대자동차는 이렇게 탄생했다.
전설④…주베일 공사
전설⑤…서산간척지 공사
구불구발한 서산간척지를 메워 땅을 만드는 공사가 1979년 시작됐다. 정부가 할 일이었지만 수지타산이 안 맞아 어떤 기업도 나서지 않았다. 정주영은 해외에 있는 건설장비도 쓸 겸, 해외 근로자에게 일자리도 줄 겸 해서 나섰다. 방조제 6500m를 지어 물을 막아야 했다. 마지막 남은 270m가 문제였다. 초속 8m의 급류가 흘러 메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돌을 부어도 쓸려 내려갔다. 정주영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폭 45m, 높이 27m, 길이 322m짜리 고철 배를 가라앉혀 급물살을 막는 이른바 ‘정주영 공법’을 썼다. 1988년 서산간척지는 옥토로 변했다.하지만 학교에선 정주영을 가르치지 않는다. 정주영 탄생 100주년에 되돌아 본 기업가 정신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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