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1915~2001)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때를 맞춰 신문과 방송은 ‘한국 재계의 영웅’ 정주영을 조명하는 기사를 많이 내보냈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내외 경제 여건이 심상치 않은 시점이어서 ‘기업가 정주영 탄생 100년’의 의미는 더 컸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정주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답은 매우 부정적이다. 미국과 일본 역사교과서는 경제성장을 주도한 기업과 기업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미국 교과서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석유혁명가 존 록펠러, 금융인 존 피어폰 모건을 큰 사진과 함께 자세히 소개한다. 최근 인물인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생존 인물인 빌 게이츠 전(前)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나온다. 일본 교과서도 미쓰이, 미쓰비시 등 일본 대표기업을 상세히 기술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에서 유를 일군 영웅들의 이야기를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근현대사 역사교과서 한 모퉁이에 정주영에 관한 서술이 있긴 하다. 건설, 조선, 자동차 산업을 일으킨 경제인이 아니라,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카네기나 록펠러에 못지않은 ‘영웅’이 많은데도 우리 교과서에는 없다.

정주영 할아버지는 현대그룹을 일으킨 창업주 이상으로 기억된다. 그를 ‘1세대 벤처사업가’ ‘불가능에 도전한 기업가’ ‘애국 기업가’로 표현하는 이유다. 그의 인생은 한국 경제발전과 맥을 같이한다. 기술과 자금도 없이 허허벌판에 조선소를 세우고 배를 만들어 수출한 일화는 유명하다. “잠 다 자고 어느 세월에 선진국을 따라 잡나”라는 불굴의 의지는 절대 빈곤에 허덕이던 우리나라의 정신이 됐다. 아래 직원이 “그건 어렵습니다”라고 하면 “이봐, 해봤어?”라고 꾸짖은 이야기는 현대경영학의 아버지라는 ‘피터 드러커’ 뺨 치고도 남는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된다”는 말은 한국이 지난 60여년간 걸어온 성장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는 요즘 한창 나도는 ‘원조 흙수저’였다. 은수저, 금수저로 신세 한탄을 하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정주영 할아버지는 무엇이라고 할까. “어이 젊은이, 해봤어?” 정주영은 초등학교 교육이 전부다. 열여섯 살 때 아버지가 소를 팔아 마련한 돈 70원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온 것이 도전의 시작이었다. 공사장 막노동과 쌀가게 점원으로 바닥을 기었다. 일자리가 변변치 않았던 가난한 시대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런 것뿐이었다. 지금의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세대)보다 못한 처지였다.

남 탓만 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주영 탄생 100주년’은 어떤 의미일까? 하늘나라에서 그는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꾸짖고 있는 듯하다. 4, 5면에서 기업가 정신과 ‘영웅 정주영’을 만나보자.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