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권력의 도구로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두 가지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첫째는 편향성이다. 문화 공급자가 주제와 관점을 일방적으로 정해 보급하게 된다. 히틀러가 지배했던 독일, 스탈린이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소련(현재 러시아), 김일성 일가가 세습왕조화한 북한의 문화 공급자들이 대표적이다. 둘째는 첫째의 결과로 빚어진다. ‘선택의 자유’ 박탈이다.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편향성이 없는 다양한 문화를 소비할 수 없게 된다.

개인의 창의를 존중하는 우리에게 문화 권력이 존재한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편향성이 강요되고, ‘선택의 자유’ 가 공공연하게 박탈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문화권력은 국가권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민간의 특정세력이 파벌을 형성하고 지배하는 권력도 포함된다. 한국사 교과서 시장의 99.99%를 지배하는 강력한 ‘좌편향 역사 카르텔’은 다른 교과서의 보급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는 점에서 민간 분야의 문화권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권력들은 한 가지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순치다. 이들은 자신들의 관점과 주장을 소비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입한다. 소비자들은 부지불식간에 문화권력이 구성한 패턴과 구도에 빠지게 된다. 비판의식이 키워지지 않고, 특정 패턴과 구도에서 벗어난 문화에 대해선 배타적인 자세를 갖게 된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일찌기 이렇게 경고했다. “숨은 의도가 관점을 결정하며 관점이 주장을 결정한다.” 숨은 의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편향성에 물들게 된다는 경고다.

우리나라엔 국가권력에 의한 문화권력 행사는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었다. 대중문화와 매체를 통한 국가의 일방적인 선전·선동은 사라졌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인터넷 시대와 개방화 시대에 국가에 의한 문화지배가 일방적으로 통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민간의 문화권력는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특정 정치노선을 지향하는 집단에 의한 견고한 문화권력 카르텔은 1980년대부터 형성돼왔고 지금은 하나의 철옹성이 됐다는 비판이 많다. 바로 좌편향 문화권력이다. 영화는 대표적인 장르다. 여기에는 반외세, 민족제일주의 같은 민중사관이 가득차 있다는 비판이 많다. 보다 넓은 차원인 인류와 문명을 아우르는 시각이 없다. 우리는 착하고, 외세는 나쁘다는 민족 나르시즘이 가득하다. 최근 일고 있는 역사계도 비슷하다.

문화에는 참여문화, 순수문화가 있다. 현실을 비판하고 그것을 문화로 투영해내는 일은 문화의 고유영역이다. 하지만 그런 자유를 반(反)대한민국, 좌편향 투쟁의 도구로 삼는 것은 문제다. 영화, 문학, 출판, 학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 문화권력의 실상과 역사를 4, 5면에서 살펴보자.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