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은 단순히 국경을 넘는 행위가 아니다. 거기에는 심오한 의미가 들어 있다. 새로운 삶과 꿈, 반전의 기회를 찾아가는 몸부림이요 도전이다. 낯선 땅과 문화로 뛰어들기란 누구든 쉽지 않다. 합법 이민이라면 그래도 괜찮다. 법의 보호는 우리를 안도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불법이민이라면 어떨까. 죽음과 맞바꿀 만한 무엇인가가 저편에 있지 않다면 감행하기 어렵다. 극악한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이 없이는 죽음의 행렬에 나서지 않을 터다.

유럽을 뒤흔들고 있는 불법 이민자 이야기다. 최근 국제뉴스를 타고 들어오는 그들의 소식은 처절하다.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난민선을 타고 가다 배가 뒤집혀 목숨을 잃은 사람이 지난 1년 동안 3570명을 넘는다. 34만명이 올해 ‘무사히’ 유럽에 들어왔다지만, 수십, 수백 명씩 한꺼번에 지중해에 빠져 죽는 일은 비극이다. 천국을 찾아가는 죽음의 행렬은 주로 가난하고 불안한 나라에서 시작된다. 에리트레아, 수단, 나이지리아, 세네갈, 모로코, 카메룬, 기니, 코트디부아르,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사람이 대부분이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죽음의 배에 올라타게 했을까. 보험도 들지 않고, 흔한 구명조끼 하나 없는 난민선에 몸을 싣게 한 것은 무엇일까. 그 중력은 자유와 소유, 법치, 인권이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해야 옳다. 이 두 가치가 만들어낸 문명의 힘이 이들을 가난의 땅, 억압의 땅에서 끌어당겼다.

하지만 난민들이 모여드는 유럽연합(EU)은 큰 고민에 빠졌다. 일부 국가는 난민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반면 일부 국가는 난민 수용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연대가 필요한 시점은 지금”이라며 회원국의 동참을 요구했다. 80만명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 독일로선 급한 상황이다. 독일은 출산율 하락과 노동력 부족 탓에 난민을 받아들일 여유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스페인과 동유럽 국가들은 경제상황 등을 들어 손사래를 친다. 이들 나라에선 난민들에게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여론이 유권자들 사이에 강하게 남아 있다. EU가 오는 12일 회원국 대책회의를 가질 예정이지만 난민문제가 속시원하게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죽음을 불사하고 오는 불법이민자의 행렬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불법난민을 만들어 내는 나라들의 경제가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4, 5면에서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이민의 현황과 정치, 경제학적 원인을 알아보자. 또 자유무역처럼 국제간 자유로운 노동력의 이동이 불법이민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 불법이민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도 함께 진단해 본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