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동성(同性)결혼…진화의 수수께끼
1952년 영국 정부는 서구문명이 배출한 ‘천재 중의 천재’ 앨런 튜링을 체포했다. 앨런 튜링은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암호 해독팀에서 일하면서 독일 나치 잠수함이 교신할 때 쓰던 암호를 해독, 전쟁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디지털 컴퓨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실용적 버전을 설계한 것도 그였다. 하지만 영국의 영웅은 체포돼 화학적 거세를 당했고, 42살 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튜링은 당시 영국에선 불법이었던 동성애자였다. ‘동성애자는 독일 남자요원의 함정에 걸려들 위험이 더 높다’는 게 당시 영국 분위기였다. 그는 100년전 또 다른 천재 오스카 와일드에게 적용됐던 외설 행위로 고발당했고, 영국정부는 그를 사실상 죽음으로 몰았다. 튜링이 죽은 지 61년만인 2013년 영국은 동성애에 이어 동성결혼까지 인정하는 나라가 됐지만.

‘권리 혁명기’에 들다

앨런 튜링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이미테이션게임’
앨런 튜링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이미테이션게임’
이런 논술 질문이 나올 수 있다. “1952년에 인정되지 않은 권리가 2013년에 인정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권리는 인류문명이 개인과 자유를 발견한(계몽주의) 이래 확장돼 왔다는 것은 정설이다. 노예가 해방되고, 시민권이 확장되고, 여성투표권이 인정됐다. 이어 아동권과 환경권이 신장됐고, 이젠 동물권까지 인정되는 추세다. 동성애와 동성결혼 권리도 그 대열에 속한다. 황제, 교황, 왕, 영주의 시대에선 꿈도 꿀 수 없었던 권리였다. 동성애는 화형과 저주의 대상이었고 여성과 아동 구타는 비일비재했다. 동물을 때려죽여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은 시대였다.

‘동성애자 권리’라는 말이 본격 등장한 시기는 언제쯤일까. 구글 북스로 디지털화된 책 500만권을 분석한 결과, 1970년대였다. 이 때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이 표현은 20세기 후반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권리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인류는 이제 동성애 자체를 범죄로 보지 않는 ‘탈범죄화 시대’에 들었다. 동성애에 사형선고를 내리는 나라가 여전히 많지만, 반대로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는 나라 수도 꾸준히 증가중이다.

동성애와 동성혼을 허용하는 나라들의 소득 수준이 평균적으로 높은 것을 보면, 개인의 권리는 경제성장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잘 살면 인권, 환경, 동물권 등 여러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잘 보장된다.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거가 규정한대로 인류는 역사상 유래없이 잘 살며 가장 높은 단계의 ‘권리 혁명기’를 즐기고 있다.

하나님 “자식을 많이 낳아라”

동성애와 동성혼 이야기는 종교 관점으로 들어가면 180도 달라진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동성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종교에 오면 동성애를 범죄시화 해서는 안된다는 몽테스키외와 볼테르는 없다. 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가져오는 행위를 도덕적인 것으로 보는 공리주의 추론을 써서, 동성애의 피해자가 없으므로 동성애는 비도덕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한 제러미 벤담도 없다.

성서를 받드는 기독교계는 동성애자를 고문, 절단, 화형한 전력이 있다. 동성애자 사형제도를 가진 나라 중 대부분이 이슬람권 국가라는 점은 이슬람이 동성애자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를 잘 보여준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많은 나라들은 여전히 신의 뜻에 어긋난다며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한다. 2008년 유엔이 “보편 원칙에는 예외가 없다. 인권은 진정코 모든 인간이 타고난 권리다”라고 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안 통한다. 종교는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처음 한 말을 중시한다. “자식을 많이 낳아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라.” 자식은 곧 남녀의 결합을 의미하며, 종교에서 이것은 신성한 명령이다. 동성애는 신이 인간을 만든 목적에 정면으로 반한다.

유전자를 거역하다?

논술 비교문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유전과 진화와 관련한 글이다. 필독서에 올라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플라톤의 ‘향연’, 미셸 푸코의 ‘성의 선택’ 중 한 대목이 각각 발췌돼 나올 수 있다. 생물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려 한다는 게 유전, 진화론의 핵심이다. 하지만 동성애와 동성결혼은 다윈적 진화론을 거부하는 행위다. 대개의 경우, 유전자를 퍼뜨리지 못하는 개체는 멸종한다. 하지만 동성애자와 동성결혼자의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만일 동성애가 유전적이라면, 개개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므로 동성애자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다. 진화론적 시각에서는, 유전자를 확산시키지 못하는 성향을 가진 개체가 어떻게 오래 보존되는가 하는 문제도 등장한다.

반면에 만일 성장과정에서 접하는 환경 탓이라면,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꿔 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가능하다. 동성애와 동성결혼은 이제 옳고 그름의 문제로 단순화하기엔 늦은 듯하다. 인도주의가 확산되는 ‘권리의 시대’에선 특히 그렇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