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경제성장은 행복의 공약수
얼마 전 아시아의 소국 부탄이 국민행복도에서 세계 1위라는 보도가 있었다. 부탄은 국민소득 2000달러의 가난한 나라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행복은 소득 순이 아니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은 지난 수년간 수많은 국가의 국민소득과 평균수명, 문맹률, 영아사망률 등의 통계를 바탕으로 소득과 행복 간의 관계를 실증 분석했다. 그 결과 국민소득이 높을수록 평균수명이 길고 문맹률, 영아사망률이 낮은 등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희망하는 욕구가 잘 충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경제성장과 행복의 상관관계는 한 국가 내의 국민들을 비교하든, 국가 간을 비교하든 관계없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부탄이 가장 행복하다?
부탄 같은 저소득 국가의 국민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비교 불가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소득이 낮은 나라는 주로 폐쇄성이 강해 외부세계와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들이 적어 국민들의 상대적 낙심감이나 불행감이 적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경제가 성장하면 사람들의 행복도가 높아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는 국민소득을 꾸준히 늘리는 경제성장을 정책의 최상위 목표에 두고 있다. 소득이 높아지면 빈곤 퇴치, 평균수명, 건강지수 등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다. 또한 소득이 높아지면 자선, 여유, 배려와 같은 사회의 도덕심이 높아지게 된다.
#빈곤 퇴치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행복의 제1 조건은 빈곤 퇴치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다면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지난 2000여 년 중 거의 1800년 동안을 1인당 국내총생산(GDP) 400달러(1990년 불변가격 기준)라는 절대 빈곤 속에서 살았다. 이른바 ‘맬서스 함정’기간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발전하면서 창의와 자유를 바탕으로 생산성이 급속히 높아져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 우리나라도 지난 60여년 사이 소득이 불과 100여달러에서 3만달러로 수직상승했다.
#평균수명과 과학
사람이 일찍 죽거나 어린 나이에 병들어 죽는 자식이 많아서는 행복을 논할 수 없다. 인류의 평균수명이 30~40세였던 적이 있었다. 불과 200여 년 전의 이야기다. 유럽은 물론이고 아시아 전체가 그랬다. 그 이전에는 이보다 훨씬 낮았다. 태어난 뒤 첫 생일을 맞은 영아가 1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높은 영아사망률은 당연히 평균수명을 끌어내린다. 평균수명은 영아사망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간의 기대수명은 지난 100년간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생산성 향상으로 식량 문제가 해결되고 건강, 의료 체계가 세워지면서 나타난 변화다. 앵거스 디턴은 2010년을 기준으로 기대수명과 1인당 국민소득을 분석한 결과, 국민소득이 높을수록 오래 산다는 것을 밝혀냈다. 수명은 질병 퇴치와 과학 발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상하수도 개선과 공중위생도 마찬가지다.
#도덕과 신뢰 향상
흔히 사람들은 경제가 성장하면 물질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환경이 파괴되고 도덕성이 퇴보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의 분석 결과 그렇지 않다는 것이 증명됐다. 벤저민 프리드먼은 ‘경제성장의 미래’에서 경제가 성장하면 사람들이 여유를 갖고 자비를 베풀어 사회 전체적으로 도덕심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사실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려면 사회의 도덕과 신뢰도 중요하다. 남을 속이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시장경제는 계획경제보다 도덕과 신뢰를 중시한다. 이마누엘 칸트가 “돈의 힘은 국가 권력 아래에 있는 모든 권력 중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한 것도 교환과 무역을 강조한 말이었다. 교환과 무역의 증가가 곧 경제성장이다.
#문맹률과 여가
경제가 성장하면 문맹률이 낮아지고 사람들의 여가시간은 늘어난다. 이는 소득이 높은 선진국일수록 의무교육기간이 길고 근로자들의 주당 근로시간이 짧은 데서 알 수 있다. 선진국일수록, 교육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자유도 중시한다. 여가시간이 늘어나면 스포츠 예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말하자면 소득이 높은 국가의 국민일수록 문명생활을 할 수 있다.
인류는 과거보다 부유하고 행복한 상태에 있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빈부격차와 같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절대빈곤은 줄어들었고 세계는 점점 평등해지고 있다. 경제성장은 소득 증가를 의미한다. 성장의 효과가 넓게 퍼지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