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전문가 시각
창덕궁의 현 주소는 ‘서울 종로구 와룡동 2의 71’.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5년(1396년)부터 사용된 와룡동은 ‘용(왕)이 누워 휴식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와룡동은 ‘봉황의 날개’라는 뜻의 종묘 옆 봉익동과 짝을 이루며 6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내년 1월1일부터 창덕궁의 공식 주소는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로 바뀐다. 일제가 창경궁과 종묘를 단절하기 위해 만든 도로인 율곡로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봉익동도 돈화문로로 변경된다. 문화재 및 한글 전문가들은 도로명 주소 시행으로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고유한 지명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종로구의 72개 동 가운데 도로명 주소로 이름이 사라지는 곳은 59개(82%)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내자동 체부동 가회동은 각각 해당 지역에 있던 조선시대 관청 이름을 땄기 때문에 역사성이 깊다”며 “고유한 마을 이름을 없애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지에 계획적으로 건설된 미국·유럽식 도시에 적합한 도로명 주소 체계를 언덕이 많은 국내 상황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미국 영국처럼 도로명 주소를 쓰는 국가들은 애초에 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이 도로를 중심으로 생활권이 형성돼 있다”며 “수십㎞에 걸쳐 있는 도로를 주소로 쓴다면 어디가 어딘지 구분하기 힘든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통일로는 서울역 사거리~파주 통일대교 47.6㎞에 이르지만 서울 중구·종로구·서대문구·은평구와 경기 고양시·파주시는 주소에 모두 통일로를 쓴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