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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723호 2021년 9월 27일

역사 산책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군사력·상업에 문화·종교까지 결합한…청해진 바다 영토 확대하며 신라 사회개혁 의식 높여


장보고와 청해진 체제는 무장력과 해양력을 바탕으로 동아지중해의 운송업, 삼각중계무역, 보세가공업을 운영했고 문화교류와 이데올로기 통합도 주도했다. 자치권과 상업활동, 세금 혜택 등이 보장된 느슨한 경제특구에 해당할 수 있다. 장보고는 천민도 왕족이 될 수 있다는 사회 개혁의식을 확산시켰다.

9세기에 들어와 동아시아에는 평화의 시대, 경제의 시대, 무역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라비아까지 이어지는 해양 실크로드, 동로마까지 연결된 사막 실크로드와 초원 로드는 동아지중해 무역망과 긴밀해지는 중이었다. 국가들과 대상인들은, 무장력을 갖춘 해상 관리자가 해적들을 퇴치해 바다를 평정하고, 무역로를 보호해 주길 원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장보고는 고향인 완도를 해양요새 ‘청해진’으로 만들고 본국신라인들, 재당신라인들, 재일신라인들을 ‘범(汎)신라인’으로 네트워크화해 항로를 일원화시켰다. 국제무역과 국내산업을 연결하는 수륙교통의 요지인 청해진은 국제교통의 ‘인터체인지(IC)’가 되었고 신라와 당나라, 일본, 아라비아 상인들은 물론이고, 승려들과 사신들도 장보고 선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쌍방무역을 넘어 삼각 중계무역 … 문화상품까지 주도
장보고는 무역시스템을 변화시켰고, 상업의 내용과 상품을 다양화하는데 일조했다. 당나라에 ‘대당매물사’라는 수입상인들과 교관선(무역선)을 파견해 당나라, 동남아시아, 아라비아의 고가품들을 수입했고, 신라의 산업제품들을 수출했다. 일본에는 수입상인(廻易使·회역사)을 파견하고, 직접 후꾸오까(福岡)시를 방문해서 사무역은 물론 공무역까지 시도했다. 《속일본후기》에는 '번외의 신라국 신하인 장보고(張寶高)가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올렸다'라고 대재부가 중앙정부에 글을 올렸다. 그는 기존의 쌍방무역을 넘어 삼각 중계무역을 활발하게 주도했고, 주변의 배후도시들과 연결해 청자 등의 보세가공 무역도 시도했다. 또한 먹·종이·경전·서적·도자기 등의 문화상품들과 춤·음악·서예 등의 문화콘텐츠를 수입하고, 중계무역도 했다.

장보고는 해양무역과 청해진 체제에 신앙과 종교를 도입했다. 이슬람 상인들은 이슬람교와 상업을 연결시켰고, 유럽의 제국들은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기독교를 활용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신라배가 출항하는 산둥반도의 적산포(석도항) 등 신라방에 법화원 같은 종교시설을 마련해 흩어진 교민들을 신앙조직으로 묶었고, 극한상황에서 일하는 항해인들의 정신적 유대관계를 결속시켰다. 또한 불교를 매개로 상업 확장을 꾀했고, 신라에서 선(禪)불교가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일본 불교가 질적으로 성장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조영록, 《동아시아 불교교류사연구》).
왕위 쟁탈전에 휘말린 결말 … 신라의 붕괴로 이어져
장보고는 짧은 시간에 확실히 놀랄만한 성공을 거두웠다. 하지만 국제질서의 또 다른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고, 정치권력의 복잡함과 국제무역의 비도덕성, 자신의 권력의지를 간과했다. 왕위 쟁탈전에 휘말린 그는 군대를 동원해 왕성을 공격해 민애왕을 죽이고 신무왕을 옹립해 쿠데타의 주역이 됐다. ‘감의군사’라는 벼슬과 식읍 2000호를 받았지만, 본인의 딸을 문성왕의 후비로 들이려는 시도에 반발한 귀족들에게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에는 대해적들과 장보고에 상권을 빼앗긴 당나라와 일본의 대상인 등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청해진은 10년 후에 해체되고,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신라는 붕괴의 길로 들어섰다. 무역질서는 다시 혼란스러워졌고, 일본열도에는 신라해적들의 침입이 빈번해졌다.
21세기에 바라본 장보고와 청해진 체제
장보고와 청해진 체제는 동아시아 세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무장력과 해양력을 바탕으로 동아지중해의 운송업, 삼각중계무역, 보세가공업, 문화교류, 이데올로기의 전달 등을 해양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유기적으로 운영했다. 또한 좁은 땅을 극복하고, 바다를 매개로 NET(자연스러운 영토·Natural Economic Territory)를 확대하면서 군·산·상 복합체 (김성훈, 《장보고》)에 신앙까지 관여시켰다. 청해진은 당나라의 예로 보아 일종의 자치권과 상업활동, 세금 혜택 등이 보장된 느슨한 경제특구에 해당할 수 있다. 장보고는 천민도 왕족이 될 수 있다는 사회 개혁의식을 확산시켰다. 그의 사후 백성들이 주체가 된 후삼국 시대가 도래했고, 경기만의 해양세력인 왕건은 통일을 이룩했다. 경제무역의 시대, 해양의 시대, 문화의 시대, 네트워크의 시대, 인권의 시대인 지금 우리는 장보고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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