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37) 두 교황(下)
'바키리크스'로 드러난 고위 성직자들의 비리…'주인-대리인'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가톨릭 역사상 약 600년 만에 2013년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베네딕토 16세(요제프 알로이스 라칭거 추기경, 앤서니 홉킨스 분)와 그 뒤를 이은 현재의 교황 프란치스코(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 조너선 프라이스 분)의 실화를 다룬 영화 ‘두 교황’. 2005년 콘클라베를 통해 교황직에 오른 베네딕토 16세는 ‘바키리크스’ 등으로 바티칸이 추문에 휩싸이자 개혁파인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을 불러 자신을 이을 교황이 돼달라고 제안한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집권 군부세력이 3만여 명의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더러운 전쟁’ 당시 예수회 신부들을 지키기 위해 군부와 타협했다고 고백하며 그 제안을 거절한다.

더러운 전쟁의 시작에는 1940~1950년대 아르헨티나를 휩쓴 ‘페론주의’가 있다. 당시 대통령이던 후안 페론이 펼친 포퓰리즘 정책은 지나친 정부의 개입으로 심각한 비효율을 낳았다.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핑계로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직접 플레이어로 뛰면서 더 큰 비효율을 발생시켰고, 이는 ‘정부 실패’로 이어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페론 정부의 왜곡된 임금 정책이 경제 발전에 부담을 주면서 비교우위 산업을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며 “또 국제경쟁 실패, 지속적 무역수지 적자, 급속한 외채 증가라는 거시경제 운영 전반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20세기 초반까지 부자 나라였던 아르헨티나는 이후 경제가 급속히 무너졌고 정치가 경제의 뒷다리를 잡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독재와 페로니즘이 번갈아가며 집권했다. 필요한 개혁은 완수되지 못했고 위기 때마다 디폴트(국가부도)를 선언하는 등 후진국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필요한 변화는 놓치지 말아야베네딕토 16세는 “돌아보면 뚜렷하지만 그때는 헤맬 수밖에 없다”며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죄를 사(赦)해준다. 베르고글리오가 더러운 전쟁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노력한 점 역시 명백했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 사제는 죄를 고백한 신자의 죄를 하느님을 대신해 사해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2013년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난다. 종신직인 교황이 물러난 것은 1294년 교황 첼레스티노 5세 이후 두 번째였다. 다시 열린 콘클라베에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돌본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딴 첫 번째 교황이 됐다.비틀스를 좋아하는 프란치스코와 차라 레안더의 음악을 연주하는 베네딕토 16세. 뭐 하나 맞는 게 없는 두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본인의 잘못도 인정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영화는 생각을 바꾸는 건 타협일 수도 있지만 꼭 필요한 변화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영화 속 프란치스코의 말처럼 “진짜 위험은 우리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한 경제정책을 반복하며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어쩌면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지도 모르겠다. 주인-대리인 문제‘바키리크스’로 드러난 교황청 기밀문서에는 고위 성직자들이 외부 업체와의 계약에서 가격을 부풀리는 등 비리를 저지르고, 이 과정에서 바티칸 은행이 돈세탁을 해줬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명 인사에게 교황을 만나게 해주면서 돈을 받았다는 것도 있었다. 이 같은 비리는 ‘주인-대리인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경제학에서 주인 대리인 문제는 대리인이 주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바티칸의 성직자들이 신도들,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의 뜻과 달리 돈을 섬긴 것처럼 말이다.

지난해 문제가 불거진 정의기억연대 사건도 비슷하다. 대리인은 주인이 정확하게 자신의 행동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도덕적 일탈 유혹에 빠진다. 시민단체는 기업 또는 정부기관과 달리 회계 투명성을 갖출 유인이 부족하다. 후원금 모집과 그 사용처를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아도 이를 감시 처벌할 규정이 마땅치 않다. 국세청으로서도 회계 누락 등이 확인돼도 일반 기업처럼 추가 과세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샅샅이 살펴볼 이유가 없다.

'바키리크스'로 드러난 고위 성직자들의 비리…'주인-대리인'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그래프>에서 회계 투명성을 갖추기 위해 드는 노력의 한계비용(MC)이 일정한 상태에서 일반 기업은 한계편익(MB) 곡선만큼 노력할 것이다. 회계 투명성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생기는 한계편익과 한계비용을 고려한 선택이다. 시민단체의 경우 이 곡선이 왼쪽으로 이동한다. 노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편익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일반 기업이 회계 투명성을 위해 A만큼의 노력을 하는 동안 시민단체는 B만큼의 노력만 기울이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이 같은 일탈을 막기 위한 유인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대리인 스스로에게도 이득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정된 임금을 주는 대신 성과급을 지급하거나, 이윤을 공유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감춰진 행동을 했을 때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처벌로 인한 손해가 더 크다고 판단하면 잘못된 행동을 할 유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 yykang@hankyung.com NIE 포인트① 한계편익과 한계비용 그래프에서 한계편익 곡선이 왼쪽으로 이동하면 순편익은 어떻게 될까.

② 성격과 신념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잘못을 용서하며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③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의 미주대륙(남북아메리카) 출신 교황인데, 자생적으로 가톨릭을 받아들이고 많은 순교자를 낳았던 한국 출신의 교황이 탄생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