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4차 산업혁명과 ICT 혁명

ICT혁명으로 가치사슬도 지속적으로 변화
ICT 발달해도 고숙련·저숙련 일자리 공존
ICT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이끄는 토대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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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2007년 동안 매년 세계의 정보저장능력은 23%, 전기통신은 28%, 계산력은 58% 상승했다. 1986년에 원격으로 1년 내내 전송된 정보를 1996년에 전달하는 데는 0.002초면 충분했다. 이뿐만 아니라 2006~2007년 전송된 정보의 총합은 그 이전 10년간 전송된 정보의 총합보다 훨씬 크다. 오늘날 ‘혁명’이라는 단어가 필요 이상으로 남용되지만, 정보통신기술(ICT)이 보여준 발전상은 언어가 지닌 형용의 제약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ICT 혁명의 의미

ICT란 정보(information)와 통신(communication), 그리고 기술(technology)로 구분된다. 정보혁명은 계산비용과 저장비용의 획기적인 감소로 가능했다. 통신혁명은 전송방식의 개선으로 나타났으며, 기술혁명은 일하는 방식과 조직을 재구성함으로써 정보와 통신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더 구체적으로 정보혁명은 ‘무어의 법칙’으로 설명된다.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컴퓨터의 계산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마이크로칩은 24개월마다 집적도가 두 배씩 증가해 처리속도가 두 배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술혁명을 설명하는 이론은 ‘길더의 법칙’과 ‘멧커프의 법칙’이다. 길더의 법칙이란 대역폭은 계산능력보다 세 배 더 빨리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대역폭이란 1초 동안 전송 가능한 데이터의 양을 의미한다. 이런 전송능력의 발전으로 계산과 저장의 제약이 완화됐고, 오늘날 ‘클라우드’ 기술의 바탕이 됐다. 멧커프의 법칙이란 네트워크의 가치는 사용자 증가분의 제곱에 비례해 커진다는 주장이다. 네트워크의 기존 사용자가 10만 명이라면 신규 사용자 한 명이 늘어났을 때 새롭게 만들어지는 접속은 10만 개다. 계산력과 통신에서 이뤄진 이러한 발전으로 기존의 작업 및 관리 방식은 물론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 모두를 변화시켰다. 더 이상 기업들은 자국 내에 생산설비를 둘 필요가 없어졌고, 모듈에 따른 생산을 강화한 결과 해외에 건설한 생산설비에서도 생산과정을 쉽게 조정할 수 있었다. 이 모든 변화는 불과 10년 남짓한 기간에 이뤄졌다.

ICT혁명이 가져온 가치사슬의 분리

ICT혁명으로 지식의 이동비용이 낮아지자 선진국들은 생산시설을 저임금 국가로 이전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는 주요 7개국(G7)과 개발도상국 간 역할이 분담됐다. 이로 인해 각국의 경쟁력은 자동차산업, 의류산업 등에서 조립단계, 가공단계 등의 ‘생산단계’로 이동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유행했던 G7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생산단계 이전은 곧 가치사슬의 분리를 의미했다. 가치사슬의 분리란 ‘어떤 과업에 어느 직무를 할당할 것인지’ ‘어떤 직무를 어느 단계에 할당할 것인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레이트 컨버전스>의 저자인 리처드 볼드윈 교수는 기업의 생산공정을 ‘과업-직무-단계-제품’의 네 개 층으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과업’은 제품을 생산해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위해 수행하는 일이다. 연구개발(R&D), 디자인, 마케팅, 회계업무, 사후서비스(AS), 광고, 창고관리 등이다. 그리고 과업에 의해 각 노동자에게 정해진 일들을 ‘직무’라고 한다.

ICT는 가치사슬 분리의 효율을 높여준다. 통신과 기술의 결합은 조직 내 지식, 교육, 정보의 전달을 촉진해 전문화를 강화시킨다. 전문화 수준이 높아지면 생산단계는 더 세분화되고, 해외 이전이 활발해지며, 부품과 구성품 무역이 많아진다. 정보와 기술의 결합은 노동자들이 더 많은 과업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정보와 기술의 결합인 IT의 특징은 자동화다. IT의 향상은 노동자 수를 줄여 비용을 줄일 수 있으므로 많은 과업을 하나의 직무에 몰아넣어 전문화를 방해한다. 오늘날 많은 공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산업용 로봇, 무인 운반로봇, 3차원(3D) 프린팅을 통한 적층제조 등으로 한 사람의 노동자가 이전보다 많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결국 통신과 기술의 결합이 주는 전문화가 정보와 기술의 결합이 창출하는 가치보다 큰 사슬의 경우 해외 이전이 이뤄진다. 반대의 경우 본국으로의 회귀도 이뤄질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자 아디다스와 같이 생산설비를 해외로 이전했던 기업들이 본국으로 되돌아오는 ‘리쇼어링’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다.

가치사슬 분리와 일자리 지형

ICT혁명으로 인한 가치사슬의 분리는 일자리의 지형도 바꿔놓는다. ICT 가운데 정보와 기술의 결합인 IT와 관련된 일자리는 구체적으로 기계를 작동시키는 첨단 일자리(고숙련 일자리)와 현장에서 기계의 보조를 맞추는 노동집약적 일자리(저숙련 일자리)로 구분된다. IT의 발달은 저숙련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하는 것을 보다 수월하게 한다. 그 결과 G7 내에는 첨단 일자리만 남고, 노동집약적 업무는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한다.

ICT 발전이 가속화되면 오히려 선진국 내에 고숙련 일자리와 저숙련 일자리가 공존한다. 개발도상국에서도 기계가 저숙련 업무를 사람보다 저렴하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저숙련 일자리는 해외로 이전되지 않고 선진국 내에 남아 결합한다. ICT혁명으로 인한 세계화의 변모, 즉 분리된 가치사슬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사회상을 이해하는 밑바탕이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 및 기업전략을 수립할 때 국가와 기업 모두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