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해치는 표현들 (10)

'~수 있다'로 통용되는 우리말 '가능성 표현'을 다양하게 써야 한다.
그래야 우리말 어휘가 살아나고 넉넉해진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수 있다'를 바꿔 쓰면 문장이 살아나요
글쓰기에서 조심해야 할 여러 유형 가운데 하나가 상투어 남발이다. 상투어란 익숙한 표현이지만 하도 흔하게 써서 진부해진 것을 말한다. ‘~이 화제다’느니, ‘주목을 받고 있다’느니 하는 게 그런 예다. 별것 아닌 얘기를 하면서 ‘출사표를 던졌다’ ‘~을 웅변한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수 있다’와 ‘~것이다’란 말은 간과하기 십상이다. 습관적으로 쓰다 보니 아예 당연한 것처럼 여겨 문제점을 깨닫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의미 없이 덧붙이는 ‘~수 있다’ 많아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수 있다'를 바꿔 쓰면 문장이 살아나요
‘~ㄹ 수 있다’는 ‘어떤 일을 이루거나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이 가능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나는 무엇이든지 잘할 수 있다’거나 ‘네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해라’ 같은 게 전형적인 쓰임이다. 굳이 나누자면 ‘능력’과 ‘가능성(확률)’에 쓰는 표현이다. 영어의 can과 maybe에 해당한다. 영어에서는 두 가지를 구별해 쓰지만 우리말에서는 ‘~수 있다’로 두루 표현한다.

그런데 같은 ‘~수 있다’를 쓴 문장이지만 문맥에 따라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판로가 여의치 않은 중소기업은 그만큼 회사가 쉽게 ‘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그리 펑펑 쓰다 보면 예산이 ‘부족해질 수 있다’. △전문적인 내용이라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버거울 수 있다’.

이런 문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비(非)의지 서술어로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어에서 이런 용법은 문법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며, 현실적으로도 광범위하게 쓰인다. 하지만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화자의 의지가 담기지 않을 때는 ‘~수 있다’보다 ‘~일지 모른다’가 자연스럽다. 예문을 모두 ‘~일지 모른다’로 바꿔놓고 보면 훨씬 우리말답다는 게 느껴질 것이다. 이 외에도 ‘~할 가능성이 있다/~할 것 같다/~할 듯하다/~할 듯싶다/~할 만하다/~할 판이다/~할 우려가 있다’ 등을 문맥에 따라 적절하게 골라 쓰는 게 요령이다. ‘겠(미래 사건에 대한 추측 또는 가능성·능력을 나타내는 어미)’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다양한 우리말 표현을 살려 써야

‘~수 있다’로 통용되는 우리말 ‘가능성 표현’을 다양하게 써야 한다. 그래야 우리말 어휘가 살아나고 넉넉해진다. “이 옷이 너한테 클 수 있어”라고 말하지 말고 “클지 몰라”라고 해보자. “내일은 비가 올 수 있다”보다 “비가 올지 모르겠다”고 하는 게 자연스러운 우리 말투다.

또 다른 문제점은 ‘~수 있다’를 습관적으로 붙이는 경우다.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부대행사도 마련했다. △10년을 끌어온 갈등과 논란이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이런 문장을 무심히 넘긴다면 말로 해보면 답이 나온다. 시민이 ‘참여하는’ 것이지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종지부를 찍을지’ 주목되는 것이고, ‘꼽을 정도로’ 적다는 뜻이다. ‘-ㄹ지’와 ‘-ㄹ’이 막연한 의문, 추측을 나타내는 어미다. 이런 데 쓰인 ‘~수 있다’는 모두 군더더기다. 특별한 의미를 더하는 게 아니라 무심코 덧붙였을 뿐이다. ‘~수 있다’ 부분을 삭제하면 간결해진다. 심할 경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식으로도 쓴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의미상 동어반복이라 비문에 가깝다. ‘만난 것과 같다’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면 충분하다.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