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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558호 2017년 6월 12일

서양철학 여행

[김흥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6) 플라톤(중) 동굴의 비유


플라톤 철학의 핵심은 이데아론이다. 그의 이데아론에 의하면 세계는 현상의 세계와 이데아의 세계로 구분된다. 현상의 세계는 감각으로 지각되는 불완전한 세계로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반면 이데아의 세계는 이성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는 완전하고 불변하는 세계이다. 예컨대 현실에 있는 삼각형이나 아름다운 꽃들은 모두 불완전하지만, 이데아의 세계에는 완전한 삼각형의 이데아와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세계와 완전한 세계

이 세상의 모든 사물마다 그 본질인 이데아가 있으며, 그 가운데 최고의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이다. 그러나 이데아에 대한 그의 사상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플라톤도 이데아를 말로 적절하게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유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에 제시된 유명한 ‘동굴의 비유’이다.

동굴 안에 죄수들이 갇혀 있다. 이들은 오직 맞은편 동굴 벽에 있는 그림자만 볼 수 있도록 온몸과 목이 사슬에 묶여 고정된 상태이다. 죄수들의 뒤에 있는 장벽 위에서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앞에서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다. 죄수들이 보고 있는 그림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평생 벽만 보고 살아온 죄수들은 등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들이 묶여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고 있는 그림자들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다. 그런데 한 죄수가 사슬에서 풀려나 동굴 밖으로 끌려 나간다. 그 죄수는 지금까지 보아온 그림자들이 모두 실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동굴 밖 세상을 보고, 모닥불이 아닌 진짜 태양 빛도 느끼게 된다. 그 후 그가 다시 동굴 안으로 돌아온다. 그가 아직 묶여 있는 죄수들에게 장벽 뒤의 세상 이야기를 해준다면, 그의 말을 선뜻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그를 조롱할 것이다.

그림자 만드는 태양이 이데아

동굴의 비유는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를 벗어나 참된 본체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비유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현상의 세계는 동굴 안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동굴 안에 갇혀 있는 죄수들은 현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리고 동굴 밖의 세계는 참된 실재인 이데아의 세계이며, 참된 세계를 보려면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보아야 한다. 동굴 밖의 태양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진정한 원인인 선의 이데아를 상징한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만물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근원이다. 태양이 그 빛으로 세상을 널리 비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 하나 볼 수 없으며,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데아는 사물의 인식 근거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쇠사슬을 풀고 동굴 밖을 나와 태양을 보고 다시 동굴로 들어간 죄수는 누구인가? 이는 바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상징한다.

이제 동굴의 비유를 통하여 플라톤은 철학자로서 소크라테스가 누구이며 그가 한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이성을 통해 그림자의 세계인 동굴에서 벗어나 이데아의 세계에 도달한 사람이다. 또한 동굴 밖에 나아가 태양을 보고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참된 세계로 인도하려 한 사람이다. 이를 위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말을 통해 자기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진리를 추구할 것을 역설하였으며, 아테네 젊은이들에게 이성적 진리 탐구 방법인 대화법을 가르쳐 기존의 지식과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고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도록 하였다. 또한 인간의 영혼을 돌보는 일을 최대 관심사로 생각했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에서조차 “음미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등에’로서 무지의 잠을 자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도전을 주었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죽은 이유였다.

소크라테스는 이데아에 도달한 이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이제 올바른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해 준다. 그 기준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그 보편적인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헌신이 있느냐 여부이다. 소피스트들은 보수를 받고 수사학과 같이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이들이 변론술을 통하여 보여 주려 했던 것은 어떠한 주제든지 반대편 입장에서도 훌륭한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말로 하면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궤변과 비슷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이 소피스트들을 일컬어 ‘지식의 장사꾼’이라고 비판했던 의미를 이제 분명히 알 수 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

동굴의 비유는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를 벗어나 참된 본체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비유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현상의 세계는 동굴 안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동굴 안에 갇혀 있는 죄수들은 현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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