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물가 장기간 지속하면 경제 무기력증 빠져
■ NIE 포인트

최근 국내 물가 동향이 어땠는지 통계 자료를 파악해 보자. 정부가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책수단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물가 상승은 ‘양날의 검’에 비유되곤 한다. 물가가 적당히 오르는 것은 경기가 좋다는 신호다. 경제가 살아나면 가계와 기업의 소득이 늘고 수요가 증가해 물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도하게 뛰면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진다. 지출이 줄고 경기가 꺾일 수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제 성장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안정적인 물가 상승 수준을 뜻하는 ‘물가안정목표’를 정하고 공들여 관리하는 이유다.

① 물가는 항상 오르기만 한다?

[Cover Story] 물가 상승은 악(惡)?…적당히 올라야 좋아요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이자 많은 소비자들이 “물가가 자꾸 오르기만 해서 힘들어진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계란, 닭고기, 돼지고기의 가격 급등을 걱정하는 사람은 많아도 배추, 쌀 등의 가격 폭락에 주목하는 소비자는 드물다. 또 불과 몇 달 전까지 물가상승률이 오랫동안 0~1%대에 갇혀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한국은행 측은 “사람들은 자신이 자주 구입하는 상품의 가격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며 “1년에 한두 번 사는 상품의 가격 인상엔 둔감하지만 자주 구입하는 상품이 오르면 비록 지출액이 적더라도 체감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심리적 요인은 물가 통계와 체감 물가에 항상 괴리가 크다는 오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언론 보도도 물가가 내릴 때보다는 오를 때만 집중돼 이와 같은 인식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② 물가는 떨어지는 게 언제나 좋다?

물가가 계속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갑이 상대적으로 두툼해져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경기 침체 속에 물가가 떨어지는 현상을 디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저물가가 장기간 지속하면 기업 매출 감소→성장 정체→소득 감소→소비 위축→저물가의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경제가 ‘무기력증’에 빠져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이 바로 그 디플레이션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했다. 일본은 1990년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이후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물가상승률도 장기간 바닥을 면치 못했다.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아베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은 지긋지긋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중에 돈을 풀고 물가 상승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③ 원재료 값보다 비싸면 폭리다?

사람들이 많이 먹는 식품들은 종종 ‘폭리 논란’에 휘말리곤 한다. ‘닭값은 떨어졌는데 왜 치킨값은 오르나’ ‘아메리카노의 원가는 몇백원에 불과하다’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업체들은 이런 비난이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완제품의 가격에는 인건비, 물류비, 임대료, 유통마진 등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에 핵심 원재료의 가격만으로 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격에는 각자 다른 소비자를 공략하는 업체들의 차별화 전략이 반영되기도 한다. 같은 아메리카노라도 스타벅스는 5000원, 이디야는 2500원, 편의점은 1000원에 파는 까닭은 매장 구성과 타깃 고객층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가격이 원가대로 정해져야 한다면 루이비통, 에르메스 같은 ‘명품’ 패션 브랜드가 존재하는 것도 비상식적이 된다.

④ 정부가 물가를 잡을 수 있다?

물가가 급등하면 국민은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기를 요구한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비롯한 여러 정책수단을 활용해 물가를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욕심이 앞서면 시장에 직접 개입해 가격을 누르는 경우도 생기는데,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부작용을 낳게 된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 때 정부가 식품업체 임원들을 불러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압박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가격은 묶고 용량을 줄이거나, 몇 년 기다렸다 정권 말기에 한꺼번에 인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부가 휴대폰 가격을 규제한 단통법도 통신비 절감이라는 취지와 정반대로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암시장의 불법거래만 유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⑤ 공짜는 좋은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처럼,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지 않으면 결국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콘텐츠산업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공짜라는 인식이 만연한 대표적 사례다. 한국인의 40% 이상이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현실은 업체들의 투자 의욕을 꺾고 있다. 한국에서 금융, 관광, 교육, 의료 등과 같은 고부가가치의 서비스산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도 ‘서비스는 공짜’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