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세계를 강타하다

"EU 관료화로 불황 타개책 미흡" 회원국 불만
유럽연합(EU)이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로 출범한 이후 59년간 자발적으로 EU를 탈퇴한 국가는 없었다. 따라서 이번 영국의 EU 탈퇴 결정으로 하나의 경제·정치 공동체를 구축해 유럽 국가간 무역과 이동을 자유로이 하고 정치·군가적 긴장 관계를 해소하려던 EU가 커다란 암초를 만난 셈이다. 특히 영국의 EU가 탈퇴가 프랑스, 네덜란드, 체코 등의 탈퇴로 이어진다면 ‘하나의 유럽’ 꿈은 점차 멀어지게 된다.

EU 도미노 탈퇴?

EU는 영국의 탈퇴를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EU 잔류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실익보다 저성장·실업·이민자 우려가 더 표심에 영향을 미쳤다. 독일을 중심으로 제2의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 유럽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등의 극우세력은 벌써부터 “EU 탈퇴를 놓고 영국처럼 국민투표를 하자”며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프펜 대표는 지난달 22일 ‘프렉시트(Frexit:France+exit)’를 약속하고 나섰다. 그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솅겐조약(유럽국가 간 통행의 자유를 보장한 조약)에 가입한 프랑스가 EU를 떠나야 할 이유는 영국보다 수천 개 더 많다”고 했다. 그는 지난 6월 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내년 프랑스 대선 주자 중 1위에 오른 인물이다.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체코 총리도 “영국이 EU를 떠나면 체코에서도 수년 뒤 EU 탈퇴 문제로 논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네덜란드, 핀란드, 덴마크에서도 반 EU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언론 탄압에 대한 EU의 비판을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폴란드 정부와 여당인 법과정의당도 여차하면 EU를 떠날 태세다. 지난해 11월 폴란드 총리는 항의 표시로 EU 깃발을 사무실에서 치워버렸다. EU의 관료화로 경기 불황 및 이민자 대처등이 신속하지 못하다는 불만이 높다. 물론 이들 나라들이 줄줄이 EU를 탈퇴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EU의 구심력이 약해질 가능성은 확실하다.

쪼개지는 EU…신고립주의로?

영국의 EU 탈퇴로 유럽국가들이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물론 영국의 사례로만 미뤄 ‘고립주의로의 회귀’라고 단정짓는 건 곤란하다. 영국은 EU를 탈퇴하더라도 EU와의 기존 관계를 돈독히 유지한다는 입장이고, 독일 프랑스 등 EU 주축국 정치 지도자들도 “영국을 미워하지 말라”며 분열적 분위기를 자제시키고 있다.하지만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EU 신규 가입문제가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EU는 시리아 등에서 넘어오는 난민을 일단 터키에 대기시켜 두는 조건으로 터키의 EU가입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하지만 EU회원국중에는 이를 달가와 하지 않은 국가가 많다. 실제로 영국 극우 정당인 영국독립당은 터키의 EU 가입 가능성을 제기하며 영국 국민들의 EU의 탈퇴 정서를 부추겼다. 터키는 이슬람교 비중이 99%에 달해 기독교 문화의 EU 회원국과 정서적으로 어울리지 않은 실정이다.

NATO 안보전선도 ‘삐걱’

EU를 아예 둘로 갈라서 운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내년 대선 주자로 나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이런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 인물이다. 유로존 국가를 재정적으로 통합해 한 명의 경제장관이 이끄는 재정동맹으로 만들고, 나머지 국가는 경제정책을 별도로 시행하되 연구, 에너지, 농업 등의 정책만 공동 추진하는 느슨한 연합을 구축하자는 ‘EU 이원화’론이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EU 회원국들이 유로화를 쓰는 나라와 자국의 고유 통화를 쓰는 나라로 나뉘고, 상대적으로 경제가 튼실한 북유럽 국가와 재정이 상대적으로 부실한 남유럽 국가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EU 탈퇴는 세계 안보에도 불안감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 당장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대 테러 전선에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재 EU의 28개 회원국 중 탈퇴를 앞둔 영국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21개국이 NATO 회원국이다. 따라서 EU와 NATO는 그동안 동일 운명체로 인식되어 왔다.

최근 나름 성과를 내고 있는 국제연합군의 IS 격퇴전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영국의 브렉시트 확정으로 IS 격퇴전 참여국가들에서 고립주의 정서가 강해지면 자국 군의 철수 여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 EU 잔류 선언

영연방 해체될까?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 등으로 이뤄진 연방국가다. 그런데 이번 브렉시트 투표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찬성표가 많은 반면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유럽연합(EU) 잔류에 표를 던진 유권자가 많았다.

특히 스코틀랜드는 유권자의 62%가 EU 탈퇴에 반대했다. 니콜라 스터전 수반이 이끄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EU에 남을 수 있는 가능한 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자치의회의 권한을 명시한 스코틀랜드 법률 제29조에 따르면 스코틀랜드에 영향을 미치는 EU의 법은 영국 중앙정부가 아닌 자치의회 결정을 따르게 돼 있다. 스코틀랜드와 EU와의 관계를 규정할 때도 자치의회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스코틀랜드의 승인 없이는 EU에서 탈퇴할 수 없는 만큼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스코틀랜드 결정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차기 총리가 영연방 법을 바꾸면 스코틀랜드의 비토권이 무력해질 수 있다. 이 경우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스코틀랜드 독립은 영연방의 해체를 의미한다. 스코틀랜드는 2014년 9월에도 영국으로부터의 분리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했으나 부결된 바 있다.


유럽연합(EU)의 역사는?

경제공동체로 출발…'브렉시트'로 균열

유럽국가들은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하나된 유럽’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나된 유럽’으로 내부의 상처를 치유하고, 강대국들에 대해선 공동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는 194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유럽대륙이 평화와 안전, 자유 속에서 살 수 있도록 유럽합중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연설했다. ‘하나의 유럽’을 향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통합은 독일 프랑스 등이 주도했다. 독일(당시 서독)과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6개국은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창설했다. 석탄과 철강의 공동시장에 초점이 맞춰졌다. EEC는 이후 유럽 내 여러 공동체를 통합해 덩치를 키웠고, 1967년 유럽공동체(EC)로 재탄생했다. 영국은 1973년 EC에 뒤늦게 가입했다. 대영(大英)제국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던 영국은 당시에도 찬반논란이 거셌다. 1975년에는 집권 노동당 주도로 EC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잔류결정(67.2%)을 하기도 했다.

EC회원국들은 1985년 회원 국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을 맺었다. 영국의 EU 탈퇴파들이 핵심 명분으로 들고나온 외국인 이주자는 주로 이 조항에 근거한다. 1991년에는 공동의 외교안보·내정 정책 등 정치 통합을 마스트리히트조약을 체결했다. EU는 이를 바탕으로 1993년 출범했다. 상품시장은 물론 생산요소(노동력)의 이동을 완전히 자유화하고 외교 안보 등 정치적으로 하나임을 선포한 것이다. 특히 2002년에는 공동 화폐인 유로화를 도입하면서 ‘하나의 유럽’에 한 발짝 다가갔다. 한데 이번에 영국이 EU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하나된 유럽’에는 커다란 금이 생겼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