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이 일자리 뺏어 가는 등 혜택은 적고 부담만 커
영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유럽연합(EU) 탈퇴를 지지,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미국의 온라인 매체 복스(Vox)는 '크리스마스에 찬성하는 칠면조(Turkey voting for Christmas)'로 비유했다. 잡아 먹힐 걸 알면서도 크리스마스가 좋다는 칠면조나, 망하는 길임이 뻔한데도 EU 탈퇴를 선택한 영국이나 마찬가지란 뜻이다. 영국은 왜 브렉시트를 선택했을까? 그리고 그 파장과 교훈은 무엇일까?

“EU 회원국 혜택은 적고 부담만 크다”

투표 전 브렉시트 위험성을 경고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영국 국민 중 다수는 EU 탈퇴를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아있는 게 득보다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EU 회원국으로 영국이 내야 하는 분담금이다. 영국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EU 예산에 네 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다. 2014년 기준 141억유로를 분담했다. EU 총분담금의 10.6%다. 하지만 EU로부터 받는 수혜는 71억유로(EU 내 총수혜의 5.4%)에 그쳤다. 영국의 EU 분담금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브렉시트 찬성파들은 이 돈을 국민건강보험(NHS)에 쓸 수 있다고 외쳤다.

둘째는 이민자 문제다. 영국은 EU의 룰에 따라 해외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브렉시트 찬성파들은 EU 규정 때문에 영국이 수많은 이민자를 허용해야 하고 이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지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민자들 때문에 일자리가 줄었다고 생각하는 나이가 많고 지방에 거주하며 소득이 낮은 중하위층이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 영국의 EU 탈퇴는 회원국의 EU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조약 50조에 따라 이뤄진다. 영국 정부가 EU 회원국 정상회의인 유럽이사회에 공식적으로 탈퇴 의사를 알리면 영국과 EU 간 탈퇴 협상이 진행된다. 협상기간은 최대 2년이다.

불확실성 증가로 세계 경제에 악영향

브렉시트는 영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와 세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당사자인 영국은 옛 대영제국의 마지막 영화(榮華)를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 됐다. 영국이 EU 회원국 지위를 잃게 되면 ‘커멕시트(Company+Exit: 금융회사와 대기업들의 영국 탈출)’가 나타나 영국 경제는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는 감소하고 국내총생산(GDP)은 상당 기간 뒷걸음질칠 것이다. 금융중심지로서의 런던 위상도 약화된다. 세계 경제도 불확실성으로 인해 상당 기간 혼란이 불가피하다. 실물이나 금융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어서 경제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 경제에 기름을 부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유럽중앙은행(ECB) 영국 미국 일본 등 중앙은행들이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각국 통화가치가 요동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본시장에 투자된 영국 자금이 이탈하고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면 증시가 흔들리고 수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수출에서 반사적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흔들리는 팍스 아메리카나’

브렉시트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에 의한 세계 평화)’라는 세계 질서에도 위협요소다. 영국은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이다. 영국은 거센 국내 반발에도 2003년 이라크전 때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규모로 파병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때는 미국이 요구했던 EU의 러시아 제재를 주도했다. 하지만 영국이 EU를 빠져나오면 이런 ‘형제간 연합’은 어려워진다. 미국이 구 소련(현 러시아)에 맞서 1949년 출범시킨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파장이 불가피하다. 스페인 등 다른 나라들이 영국의 뒤를 따라 EU 회원국에서 도미노 탈퇴를 선택하면 세계 질서의 근간이 흔들린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만 수혜를 입을 수 있다.

정덕구 니어(NEAR)재단 이사장은 “브렉시트 투표는 국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인기영합주의자들의 선동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라는 중요한 숙제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영국처럼 분노하고 우울한 국민들이 적지 않다. 이들을 포퓰리즘으로 현혹해 극단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정치세력이 힘을 얻는 걸 경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브렉시트를 우리 정치권 스스로가 혁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