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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선즉제인 (先 則 制 人)

    ▶ 한자풀이先: 먼저 선則: 법칙 칙, 곧 즉制: 절제할 제人: 사람 인중국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에 이어 2대 황제에 즉위한 호해는 무능한 폭군이었다. 곳곳에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나라를 세워 스스로 왕에 오르는 자들도 생겨났다. 어느 날 강동 회계의 태수 은통이 오중(지금의 장쑤성 오현)의 실력자 항량을 불러 거사를 의논했다. 항량은 초나라 명장 항연의 아들로, 고향에서 사람을 죽이고 조카 항우와 함께 오중으로 도망친 뒤 뛰어난 통솔력으로 이름을 날리던 젊은이였다. 은통이 속내를 드러냈다. “지금 곳곳에서 진나라에 반기를 드는 건 나라의 명운이 다했기 때문이오. 내가 듣건대 ‘선손을 쓰면 남을 제압할 수 있고(先則制人), 뒤지면 남에게 제압당한다’고 했소. 나는 그대와 환초를 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일으킬까 하오.”한데 ‘선수를 쳐서 적을 제압한다’는 선즉제인(先則制人)의 병법은 항량이 한 수 위였다. “거병을 하려면 환초를 찾아야 하는데 그의 행방을 아는 자는 제 조카 항우뿐입니다. 지금 밖에 있으니 그를 불러 환초를 데려오라 명하시지요.” “그를 들라 하시오.” 항량은 재빨리 밖으로 나가 항우에게 귀엣말로 일렀다. “내가 눈짓을 하면 즉시 은통의 목을 쳐라.” 은통의 목은 그렇게 날아갔다. 항량은 관아를 접수해 스스로 회계 태수에 오른 뒤 8000여 군사를 이끌고 함양(진나라 수도)으로 진격하다 전사했다. 뒤이어 회계 태수가 된 항우는 5년에 걸쳐 유방과 천하의 패권을 다툰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얘기다.역사는 용기 있는 자가 쓴다. 두려움에 지면 모든 길이 흐려진다. 공포에 지면 흐릿한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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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양지인 (宋 襄 之 仁)

    ▶ 한자풀이宋: 나라 송襄: 도울 양之: 갈 지仁: 어질 인명분은 순리와 이치를 앞세우고 실질은 현실을 중시한다. 베풂은 명분이고, 누구에게 어떻게 베풀지는 실질이다. 베풂이 상대에게 되레 해가 된다면 명분은 맞지만 실질은 어긋난 것이다. 베풂이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다.송나라 군사가 강을 두고 초나라 군사와 마주했다. 송나라 양공(宋襄)이 강 한쪽에 먼저 진을 쳤다. 막강한 초나라 군대는 송나라 진을 부수고자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송의 군대가 턱없이 약하다고 판단한 장군 목이가 양공에게 간했다.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양공은 듣지 않았다. “그건 의로운 싸움이 아니다. 정정당당히 싸워야 참된 패자가 될 수 있다.”어느 새 초나라 군사는 강을 건너와 진용을 가다듬고 있었다. 목이가 다시 한번 간절히 진언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진용을 미처 가다듬기 전에 치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양공은 재차 무시했다.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싸움의 결과는 이미 짐작했을 거다. 원래 열세였던 송나라 군사는 참패하고, 양공 자신도 허벅지에 입은 부상이 악화돼 이듬해 죽고 말았다. 남송 말부터 원나라 초에 걸쳐 활약한 증선지가 편찬한 《십팔사략》에 나오는 이야기다.‘송양의 어짊’을 뜻하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은 어리석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거나 과한 인정을 베풀다 되레 해를 입는 것을 비유한다. 누구는 조선 500년을 ‘명분의 시대’라고 꼬집는다. 명분만을 좇다 실질을 잃어 나라가 허약해졌다는 것이다. 실질이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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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문불여일견 ( 百 聞 不 如 一 見 )

    ▶ 한자풀이百: 일백 백聞: 들을 문不: 아니 부(불)如: 같을 여一: 한 일見: 볼 견판단은 빗나갈 때가 많고, 추론도 오류가 잦다. 책을 단 한 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달랑 책 한 권으로 세상을 논하고, 그게 다 맞다고 우기면 대책이 없다. 조약돌만 한 소견으로 태산을 논하는 건 무지의 오만이다.한나라 9대 황제 선제 때의 일이다. 서북 변방의 유목 민족인 강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진압에 나섰으나 대패했다. 선제가 오늘날 검찰총장격인 어사대부 병길에게 토벌군 장수로 누가 적임인지를 후장군(後將軍) 조충국에게 물어보라 명했다. 당시 조충국은 76세 백전노장이었지만 군사를 거느릴 정도로 힘이 넘쳤다. 7대 황제 무제 때 흉노 토벌에 나선 그는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진해 한나라 군사를 모두 구출했다. 이런 전공으로 싸움터에 나갈 때 깃발을 들고 앞서는 거기(車騎)장군에 임명된 명장이었다. “내가 적임이오. 이 노신을 능가할 자가 어디 있겠소.” 병길이 선제의 뜻을 전하니 그는 선뜻 그 일을 자신이 맡겠다고 나섰다.조충국이 명장임을 아는 선제가 그를 불러 강족 토벌 대책을 물었다. “계책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군사는 얼마나 필요하겠소.” 그가 답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합니다(百聞不如一見). 무릇 군사란 싸움터를 보지 않고는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니 바라건대 신을 금성군으로 보내 주시면 현지를 살핀 후 계책을 올리겠습니다.” 선제는 기꺼이 허했다.현지를 둘러본 조충국은 기병보다 둔전병(屯田兵·평시엔 농사를 짓다 전시엔 싸움에 동원되는 병사)을 두는 게 좋다는 방책을 올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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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란지위 (累 卵 之 危)

    ▶ 한자풀이累: 포갤 루卵: 알 란之: 갈 지危: 위태할 위먼 나라와 손을 잡고 이웃 국가를 친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을 주장한 범저는 본래 위나라 출신이다. 그는 돈도 없고 인맥도 부족해 유세에 나설 노잣돈조차 없었다. 그래서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 수가를 섬겨 그를 수행했다. 한데 범저의 사람됨을 알아본 제나라에서는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많았다. 제나라 양왕은 범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까지 했지만 범저는 이를 사양했다.범저의 인기에 마음이 상한 수가는 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가 위나라의 기밀을 누설한 대가로 선물을 받았다”고 거짓으로 일러바쳤다. 범저는 모진 고문 끝에 겨우 목숨은 건졌다.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탈출한 범저는 마침 그 무렵 진(秦)나라에서 온 사신 왕계를 따라 진나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범저는 왕계를 통해 진나라 왕을 알현하고자 했는데 그때 그는 왕계를 통해 이런 말을 왕에게 전하도록 했다.“지금 진나라는 ‘달걀을 겹쳐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합니다(累卵之危)’만 신의 유세를 들으신다면 평안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범저는 1년여 뒤에 왕을 만나 자신의 계책을 유세했고, 그의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은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알을 겹겹이 쌓아놓으면 언젠가 무너져 깨지듯이, 누란지위는 상황이 매우 위태로움을 나타내는 말이다.범저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수가는 어떻게 됐을까. 수가는 범저가 진나라 재상에 오른 사실을 모른 채 다시 진나라에 사신으로 간다. 범저는 몰래 사신 수가의 숙소를 찾았고, 깜짝 놀라 안부를 묻는 수가에게 “날품팔이로 연명한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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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단 (壟 斷)

    ▶ 한자풀이壟: 밭두둑 농(롱)斷: 끊을 단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에 세금이 부과된 연유가 《맹자》 공손추편에 나온다. 맹자가 말했다. “누군들 부귀해지기를 원하지 않겠는가마는 ‘유독 높은 곳’에서 혼자 이익을 독차지하려는 자가 있다.” 농단은 여기서 언급된 ‘유독 높은 곳’이다. 언덕 농(壟) 끊을 단(斷), 즉 깎아지른 듯이 높은 언덕이 농단이다.맹자의 말을 더 풀어보자. 옛날 시장은 남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 모자라는 물건과 맞바꾸는 장소였다. 시장 관리는 그 교환이 바른지를 지켜보는 정도였다. 한데 한 사내, 맹자의 표현을 빌리면 한 천부(賤夫)가 시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壟斷)에 올라가 사람들의 움직임을 꿰고 시장 이익을 그물질하듯 거둬갔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겼고, 그 이후로 시장에는 세금이 생겼다. 농단은 본래 가파른 언덕 꼭대기란 뜻이었지만 높은 곳에 올라 정보를 독점하고, 그 정보를 이용해 이익을 독식한다는 뜻으로 쓰임이 옮겨갔다.인간은 누구나 높아지기를 바란다. 지위가 높아지고, 권력이 높아지고, 인기가 높아지기를 꿈꾼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려는 건 인간의 본능적 욕구다. 높은 곳에선 두루 보인다. 정보가 보이고, 이익이 보이고, 사람이 보인다. 그러니 누구나 높이 오르려 한다. 한비자의 말처럼 한 자 나무도 꼭대기에 서 있으면 천 길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건 나무가 높아서가 아니라 위치가 높기 때문이다.인간은 가장 높을 때, 그리고 가장 낮을 때 민낯을 드러낸다. 높은 곳에서는 거만하고, 낮은 곳에선 비굴해진다. 높은 곳에서 낮추는 게 진정한 인격이다. 높은 곳에서 군림하지 않고, 이익을 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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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면초가 (四 面 楚 歌)

    ▶ 한자풀이四: 넉 사面: 낯 면楚: 초나라 초歌: 노래 가천하를 다투던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싸움은 유방 쪽으로 기울었다. 항우에게 마지막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끼던 장수 범증마저 떠나가고, 한나라와 강화를 맺고 동쪽으로 돌아가던 해하에서 항우는 한의 명장 한신에게 포위당했다. 빠져나갈 길은 보이지 않고, 병사와 군량미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갔다.그러던 어느 날 밤, 사방에서 처량한 초나라 노래가 들려왔다. 한나라가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에게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한군에 포위된 초나라 병사들은 지치고 향수에 젖어 싸울 의욕을 잃었다. 항우가 외쳤다. “초나라가 이미 빼앗겼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저리 많은가.” 그는 죽음을 직감하고 ‘최후의 만찬’ 진중의 주연을 베풀었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지어 자신의 운명을 탄식했고, 그의 총애를 받던 우미인은 자결로 시에 답했다. 항우 역시 오강을 건너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천하의 꿈을 접었다. 《사기》 항우본기에 나오는 얘기다.사면초가(四面楚歌)는 사방(四面)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楚歌)다. 아무리 둘러봐도 우군 하나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다. 원인과 결과는 늘 붙어 다닌다. 애초 동네 불량배 유방은 귀족 가문 항우의 상대가 못 됐다. 한데 천하는 유방이 거머쥐었다. 유방은 나누고, 항우는 인색했다. 공신에게 땅 몇 리 내어주는 데도 옥새를 만지작거리느라 모서리가 닳을 정도였다.고립무원에 처한 사람은 흔히 세상을 탓한다. 인정의 각박함을 탓하고, 우정의 얕음을 탓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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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고초려 (三 顧 草 廬)

    ▶ 한자풀이三: 석 삼顧: 돌아볼 고草: 풀 초廬: 오두막 려위·촉·오 삼국시대 문턱 무렵, 유비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인재를 모으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서서(徐庶)다. 비범한 지혜에 탄복한 유비는 서서를 군사(軍師)로 임명했다. 어느 날 서서가 유비에게 말했다. “융중(隆中)이라는 마을에 천하에 보기 드문 선비가 있습니다. 성은 제갈(諸葛), 이름은 양(亮), 자는 공명(孔明)입니다. 세인들은 그를 ‘와룡(臥龍)’이라고 부릅니다. 주공은 왜 그분을 청해오지 않으십니까.”이튿날,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융중으로 떠났다. 초라한 초가집(草廬)이었다. 유비가 사립문 밖에서 인기척을 내자 동자가 문을 열어줬다. “선생님은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 며칠 후 제갈량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는 말을 달려 다시 융중을 찾았다. 한겨울 찬바람이 살을 에는 듯했다. 이번에도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세 번째 융중을 찾았을 때는 예를 갖추기 위해 제갈량 초가집에서 반 리나 떨어진 데서부터 말에서 내려서 걸었다.‘자신의 초가집으로 몸소 세 번이나 찾아온(三顧草廬)’ 정성에 감동한 제갈량은 그 순간부터 재능과 지혜, 마음을 다해 유비를 보좌했다. 후에 제갈량은 ‘출사표(出師表)’에 그때의 심정을 담았다. “신은 본래 밭갈이하며 구차히 목숨이나 보존하려 했을 뿐,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선제(先帝·유비)가 신을 천하다 생각지 않으시고, 황공하게도 스스로 몸을 굽히시어 세 번이나 초막으로 찾아오셔서 신에게 세상일을 물으시는지라 이에 감격해 선제를 좇아다닐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rd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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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육지탄 (脾 肉 之 嘆)

    ▶ 한자풀이脾: 넓적다리 비肉: 고기 육之: 어조사 지嘆: 탄식할 탄꿈은 뜻대로만 펼쳐지지 않는다. 유비도 큰뜻을 품었지만 처지는 녹록지 않았다. 사실 제갈량 없는 유비는 조조보다 한 수 아래였다. 조조에게 쫓기던 유비가 형주지사 유포에게 수년간 몸을 의지했다. 극진한 예로 환대하던 유포가 하루는 연회에 유비를 초대했다. 한데 연회장 화장실에서 무심코 자신의 넓적다리를 본 유비는 마음이 무거웠다. 오랜 세월 놀고먹기만 한 탓에 허벅지가 너무 굵어져 있었다. 한때 천하를 꿈꾸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났다.눈물 자국을 본 유포가 연유를 물었다. 유비가 답했다. “저는 언제나 몸이 말 안장을 떠나지 않아 넓적다리에 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한데 요즘은 말을 타는 일이 없어 허벅지가 다시 굵어졌습니다. 세월은 달려가니 머잖아 늙음이 닥쳐올 텐데 이룬 공이 없어 그것을 슬퍼한 것입니다.” ‘넓적다리에 살이 붙음을 슬퍼한다’는 비육지탄(脾肉之嘆)은 《삼국지》에 나오는 이 장면이 그 유래다. 유비에게 넓적다리 살은 ‘헛되이 보낸 세월’이다. 뜻은 여물지 못하고 몸에만 살이 붙은 허송세월이다. 영혼은 허해지고 육체는 무거워진 시간이다.모든 출발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후회와 각오, 희망과 절망은 모두 내게서 말미암는다. ‘비육(脾肉)’은 유비 자신을 돌아보게 한 자극, 스스로를 다잡게 한 촉매다. 유비는 살이 붙은 자신의 넓적다리를 보며 다시 뜻을 세우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깨닫지 못하면 늘 그 자리다. 쓰지 않으면 무거워진다.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쓰지 않으면 머리가 탁해진다. 늘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