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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비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도 본질은 아주 다른 것 - 맹자 -

    ▶ 한자풀이似   닮을 사而   말 이을 이非   아닐 중국 고전의 사서(四書) 중 하나인 《맹자》 ‘진심’편에 맹자가 제자 만장과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 나온다. 만장이 스승 맹자에게 묻는다. “공자는 자기 고장에서 행세하는 선비인 향원(鄕原)을 덕을 해치는 자라 했습니다. 한 마을에서 칭송받으면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일 터인데 어째서 그들이 덕을 해친다 했는지요?” 맹자가 답한다. “향원은 비난하려 해도 지적할 게 없는 듯하고, 꼬집으려 해도 꼬집을 게 없는 듯하고, 행동이 청렴결백한 것 같지만 속내를 감추고 세속에 영합한다. 그러므로 덕을 해치는 자라 한 것이다. 공자는 비슷한 듯하지만 아닌 것(似而非)을 미워하셨다. 가라지를 미워하는 건 곡식의 싹을 어지럽힐까 염려하신 때문이다.”사이비는 비슷하지만(似), 그러나(而), 같지는 않은 것(非)이다. 공자는 사이비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 사람을 현혹한다고 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2500년 전에도 여전히 사이비가 사람들을 속인 모양이다.공자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을 강조한다. 문체(文)와 바탕(質)이 어긋나지 않아야 빛이 난다(彬)는 뜻이다. 문체는 언변, 외모, 포장, 디자인이다. 바탕은 인성, 자질, 콘텐츠다. 부실한 콘텐츠를 화려한 포장으로 가리는 것도 사이비고, 허접한 영혼을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가리는 것 역시 사이비다. 우리 사회는 유독 사이비가 판을 친다.맹자는 공자의 말을 빌려 사람을 네 형태로 분류했다. 중용의 도리에 부합해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사람, 품은 뜻은 크나 실행이 이에 못 미치는 사람, 나름 지조가 있어 악은 행하지 않되 소심한 인물, 위선적인 처세로 좋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뒤에 태어난 사람이 학문을 닦아 앞에 난 선배를 능가한다는 뜻 - 논어 -

    ▶ 한자풀이後   뒤 후生   날 생可   옳을 가畏   두려워할 외“뒤에 난 사람이 두렵다(後生可畏). 나중에 올 사람이 어찌 지금 사람만 못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이 40이나 50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리 두려워할 게 못 된다.”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후생(後生)은 뒤에 태어난 사람이다. 외(畏)는 단순히 두려운 게 아니라 존경의 뜻을 내포한다. 경외(敬畏)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러니 후생가외는 뒤에 오는 자의 뛰어남을 두려워하고 시기만 하는 게 아니다. 두렵지만 존중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뒤에 난 사람을 경계해 스스로 더 정진하는 것이다.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35년을 뛰어넘은 망년지우(忘年之友)다. 서원으로 찾아온 이이가 돌아간 뒤 이황은 제자 조목에게 편지를 보냈다. “율곡이 찾아왔다네. 사람됨이 명랑하고 시원스러울 뿐 아니라 견문도 넓고 우리 쪽 학문에 뜻이 있으니 ‘후배가 두렵다(後生可畏)’고 한 공자의 말씀이 참으로 옳지 않은가.” 율곡의 학문보다 퇴계의 그릇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릇이 큰 데는 다 까닭이 있다.후생가외보다 귀에 더 익은 건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맹자의 성선설에 맞서 순자는 성악설을 주창했다. 둘은 유가이면서 생각의 색깔은 다소 달랐다. 《순자》 권학편은 선(善)의 회복에 배움이 왜 중요한지를 상세히 적고 있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청출어람의 출처가 된 구절이다.인생은 미지수(未知數)다. 크고 작은 미지수가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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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단력이 둔해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음 -여씨춘추-

    ▶ 한자풀이刻   새길 각舟   배 주求   구할 구劍   칼 검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다 강 한복판에서 실수로 아끼던 칼을 물에 빠뜨렸다. 놀란 그는 재빨리 주머니칼을 꺼내 칼을 빠뜨린 부분의 뱃전에 표시를 해뒀다. 그리고 안도했다. “칼이 떨어진 자리에 표시를 해놓았으니 언제든 찾을 수 있겠지.” 배가 언덕에 닿으려 하자 그는 급한 마음에 표시가 된 뱃전 아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한데 거기에 어찌 칼이 있겠는가. 칼을 찾느라 허둥대는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여씨춘추》 찰금편에 나오는 얘기다.‘잃어버린 칼 위치를 뱃전에 표시한다’는 각주구검은 판단력이 둔하고 어리석음을 꼬집는 표현이다. 세상일에 어둡고 융통성이 없음을 나무라는 말이다. 강 한복판에 칼을 빠뜨렸으니 배가 언덕에 닿을 무렵에는 얼마나 칼과 멀어졌겠는가. 그걸 깨닫지 못하고 표시된 바로 아래에서 칼을 찾으려 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한데 모두가 비웃는 이 어리석은 자와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우리 또한 옛 표식을 들고 오늘의 길을 찾으려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옛 문구 하나 달랑 붙들고 거기에 오늘을 맞추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장자는 수레꾼의 입을 빌려 말했다. “옛 책에 쓰여 있는 성현의 말씀은 발걸음이 아니라 발자국일 뿐”이라고. ‘시대의 흐름을 꿰지 못하고 옛 생각만 고집하는 것은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다’ 식으로 사용된다.누구도 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 누구도 순간을 붙잡을 수는 없다. 누구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 수는 없다. 어리석은 자는 어제의 잣대로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석다른 사람의 사소한 언행도 나를 돌보는 데 도움이 된다 - 시경 -

    ▶ 한자풀이他 다를 타山 메 산之 갈 지石 돌 석        공자는 중국 춘추시대 시 수천 편 중 300여 편을 골라 《시경》을 편찬했다. 소아편 학명(鶴鳴)에는 이런 시 구절이 있다. ‘즐거운 저 동산에는 박달나무 심겨 있고 그 밑에는 닥나무 있네. 다른 산의 돌이라도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네(他山之石 可以攻玉).’타산지석(他山之石)은 문자 뜻 그대로 ‘다른 산의 돌’이다. 다른 산에서 나는 거칠고 하찮은 돌이라도 숫돌로 쓰면 자기의 옥을 갈아 더 빛낼 수 있다는 뜻이다. 타인의 사소한 언행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현자는 타인에게서 자신을 본다”는 톨스토이의 말과 함의가 같다.공자에 따르면 돌은 소인, 옥은 군자다. 돌은 옥을 시샘하고 흠집내려 하지만 옥은 돌을 하찮다 하지 않고, 되레 자신을 벼리는 도구로 쓴다. 그러니 소인은 군자의 스승이다. 소인의 부족한 앎은 군자의 배움에 채찍이 되고, 소인의 낮은 덕은 군자의 덕행에 반면교사가 된다. 반면교사(反面敎師)는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마오쩌둥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오는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흠을 스스로를 살피는 거울로 삼는다는 의미다. ‘지난해 규제의 부작용을 타산지석(반면교사)으로 삼아 …’ 등으로 쓰인다.배우려는 자에게는 만물이 모두 스승이다. 길가의 돌부리 하나, 바람 속의 티끌 한 점도 깨우침을 준다. 공자는 셋이 길을 가면 그 중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다. 모범은 따르고, 허물은 나를 살피는 거울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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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식이나 재주가 몰라볼 정도로 나아짐 -삼국지-

    ▶ 한자풀이刮 : 비빌 괄目 : 눈 목相 : 서로 상對 : 대할 대삼국시대 오왕 손권은 부하 장수 여몽이 무술만 연마하고 학식이 부족한 것을 염려했다. “국가의 큰 일을 맡으려는 자는 글을 읽어 지식을 쌓아야 하오.” 왕의 당부에 여몽은 그후 학문을 갈고닦았다. 어느 날, 평소 여몽을 무식하다고 경시한 재상 노숙이 그의 학식이 놀랄 만큼 깊어진 것을 보고 연유를 묻자 여몽이 답했다. “선비라면 사흘을 떨어져 있다 만났을 땐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야 하는 법입니다(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로 괄목상대(刮目相對)는 학식이나 재주가 눈을 비비고(刮) 볼 정도로 예전과 달라졌음을 뜻하는 말이다. 괄목상관(刮目相觀), 괄목상간(刮目相看)으로도 쓴다. ‘날로 달로 성장하고 진보한다’는 일취월장(日就月將)도 괄목상대와 뜻이 비슷하다. 중국 은나라 시조 탕 임금이 게으름을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대야에 새겼다는 일신일신우일신(日新日新又日新)도 하루하루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뜻이다.‘그는 우주분야 연구에서 괄목상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재기 후 괄목상대할 기량을 과시했다’ 등으로 쓰인다.누구나 내일을 꿈꾼다. 꿈꾼다는 건 오늘과 다른 내일을 소망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디딤돌을 딛고 내일로 간다. 내일은 보장된 미래가 아니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원하면 오늘을 바꿔야 한다. 그럼 내일은 절로 달라진다. 게으름에 지면 늘 그 자리다.신동열 <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