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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무용지용 (無 用 之 用)

    ▶ 한자풀이無: 없을 무用: 쓸 용之: 갈 지用: 쓸 용세상 만물은 모두 각자의 쓰임이 있다. 다만 제자리에 있지 못한 따름이다. 성을 부수는 데는 들보가 제격이지만 조그만 구멍을 막는 데는 조약돌이 더 요긴하다. 하루 천길을 달리는 천리마도 고양이를 잡는 데는 쥐만 못하다. 쓰임이 모두 다른 까닭이다. 쓰임 역시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이다.장자(莊子)의 무위(無爲)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거다. 인위적으로 가르지 않고 전체를 두루 보는 거다. 장자는 쓰임 또한 가르지 말라 한다. 닷섬들이 박이 너무 커서 쓸모가 없다는 친구 혜자의 말에 장자는 “호수에 띄워 배로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 크기만 하고 가지들이 굽은 나무를 보고는 “광막한 들판에 옮겨심고 그 아래 그늘을 노닐면 좋지 않겠느냐”고 한다.“당신의 말은 아무 데도 소용이 닿지 않는 것뿐이오.”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우화와 비유의 달인(?) 장자가 반박했다. “쓸모없는 것을 아는 자라야 무엇이 참으로 쓸모 있는지 말할 수 있소. 광야가 아무리 넓어도 그곳을 걷는 자에게는 두 발 둘 곳만 있으면 되오. 그렇다고 발 둘 곳만 남기고 주위를 천길 낭떠러지로 파 버린다면 사람이 그 길을 갈 수 있겠소?” “그건 안 되지요.” 장자가 속뜻을 꺼냈다. “그렇소. 주변의 쓸모없는 땅이 있기에 발 둘 땅이 쓸모 있게 되는 것이오.” <장자> 외물편에 나오는 얘기로, 쓸모없는 것이 되레 크게 쓰인다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이 유래한 고사다.장자는 쓰임에만 매이는 인간을 꼬집는다. “기름불의 기름은 제 스스로를 태운다. 계피는 먹을 수 있기에 그 나무가 베어지고, 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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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경지수 (明 鏡 止 水)

    ▶ 한자풀이明:밝을 명鏡:거울 경止:그칠 지水:물 수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에 왕태(王)라는 학덕이 높은 사람이 있었다. 노나라에는 그를 따라 배우는 사람이 공자의 제자만큼이나 많았다. 공자의 제자인 상계가 불만 섞인 투로 물었다. “스승님, 많은 사람이 왕태를 따르는 까닭은 무엇이옵니까?” 공자가 답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흘러가는 물에는 비춰 볼 수가 없고 고요한 물에 비춰 보아야 한다. 오직 고요한 것만이 고요하기를 바라는 모든 것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能止衆止).” <장자> 덕충부 편에 나오는 얘기로, 명경지수(明鏡止水)는 맑은 거울과 조용한 물이라는 뜻으로 티 없이 맑고 고요한 심경을 뜻한다.‘맑은 거울’을 뜻하는 명경(明鏡)은 <장자>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온다. 같은 스승을 모시고 있는 정자산이라는 사람이 위세를 과시하려는 신도가를 나무라는 대목이다. “자네는 지위를 내세워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네. 듣건대 거울이 맑으면 먼지가 끼지 못하고, 먼지가 끼면 거울이 맑지 못하네. 어진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하네(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 則無過). 세상에는 잘못을 변명하는 사람은 많으나 제 잘못을 인정하면서 그로 인해 받는 죄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네”라며 정자산을 꾸짖었다. 이처럼 명경지수는 본래 도가(道家)에서 주창하는 무위(無爲)의 경지를 가리켰으나 후일 그 뜻이 변하여 순진무구한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게 되었다.사람은 수시로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성찰은 고요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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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가일몽 (南 柯 一 夢)

    ▶ 한자풀이南:남녘 남柯:자루 가一:한 일夢:꿈 몽당나라 때 강남 양주 땅에 순우분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집 남쪽에는 몇 아름이나 되는 큰 괴화나무가 수십 평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그는 여름철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그 나무 밑에서 술을 마시곤 했다. 하루는 술에 취해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는데 남색 관복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나 절을 올렸다. “괴안국 국왕의 어명을 받잡고 대인을 모시러 온 사신입니다.” 순우분이 사신을 따라 괴화나무 구멍으로 들어가자 국왕이 반갑게 맞았다. 그는 괴안국의 부마가 되어 영화를 누리다 남가(南柯) 태수로 부임해 20년간 남가군을 태평하게 다스리고 다섯 아들은 모두 높은 벼슬에 오르고 딸은 왕가에 시집보냈다.하지만 20년이 되던 해 단라국 군대에 크게 패하고 아내까지 병으로 죽자 벼슬을 내놓고 돌아왔다. 한데 그의 명성 때문에 찾아오는 이가 많아 역적 음모를 꾸민다고 조정에 투서가 들어오자 왕은 그에게 근신을 명령했다. 순우분의 세력이 만만치 않은 것을 알게 된 왕은 그를 달래 고향에 다녀오라 했다. 순우분이 놀라서, “저의 집이 여긴데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하고 반문하자, “그대는 본시 속세 사람으로, 여기는 그대의 집이 아닐세” 하며 웃었다. 그는 놀라며 꿈에서 깨어났다.‘남쪽 나뭇가지의 꿈’이란 뜻으로 덧없는 한때의 꿈이나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은 중국 당나라 이공좌의 소설 <南柯記(남가기)>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그의 10년 노력은 결국 남가일몽이었다’ 식으로 쓰인다. ‘한바탕의 봄 날 꿈’을 뜻하는 일장춘몽(一場春夢), <장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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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형난제 (難 兄 難 弟)

    ▶ 한자풀이難:어려울 난兄:형 형難:어려울 난弟:아우 제후한 말의 학자 진식(陳寔)은 태구의 현령으로 적은 녹봉을 받으면서도 덕망이 매우 높았다. 그의 아들 진기(陳紀)와 진심(陳諶) 또한 학식과 덕망이 높아 당대 사람들은 그들 부자를 세 군자(君子)로 불렀다. 어느날 손님이 진식의 집에 머물러, 진식이 두 아들에게 밥을 지으라 했는데 어른들의 토론에 귀를 기울이다 밥이 죽이 되고 말았다. 진식이 그 연유를 알고 물었다. “그래, 우리가 나눈 얘기를 조금이라도 외우고 있느냐?” “네,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진기와 진심은 요점을 잡아 들은 얘기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진식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됐다. 죽이면 어떠냐.”진기의 아들 진군(陳群)도 역시 뛰어난 수재로 재상까지 올랐다. 진군이 어렸을 때 진심의 아들 진충(陳忠)과 놀다가 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적과 덕행을 논했는데 서로 자기 아버지가 낫다고 하여 결말을 짓지 못했다. 그래서 할아버지인 진식에게 여쭸다. 진식이 답했다. “형이 낫다고 하기도 어렵고 아우가 낫다고 하기도 어렵구나(難兄難弟).”난형난제는 원래 ‘형이라 하기도 어렵고, 동생이라 하기도 어렵다’는 뜻이지만 현재는 사람이나 사물이 그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함을 일컫는다. ‘최근 몇 년 새 축구에서 한국과 일본은 난형난제다’ 등으로 쓰인다.누가 맏형이고 누가 둘째 형인지 모른다는 난백난중(難伯難仲), 어느 것이 위이고 어느 것이 아래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막상막하(莫上莫下), 서로 형세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움을 일컫는 백중세(伯仲勢)나 백중지세(伯仲之勢), 역량이 우열을 가리기 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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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지교 (刎頸之交)

    ▶ 한자풀이刎:벨 문頸:목 경之:어조사 지交:사귈 교전국시대 조나라의 인상여는 진나라 소양왕에게 빼앗길 뻔했던 천하의 명옥인 화씨의 구슬을 무사히 보전해 돌아온 공으로 상대부직에 올랐다. 그리고 3년 뒤 상경(上卿) 자리까지 꿰찼다. 상경은 조나라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친 염파의 직위보다 높은 벼슬이었다.염파가 화를 냈다. “나는 목숨을 걸고 싸움터를 누볐는데 입만 놀린 인상여 따위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는 게 말이 되는가.” 그는 인상여를 만나면 크게 모욕을 줄 거라고 떠벌렸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늘 조심했다. 병을 핑계로 조정에도 나가지 않고, 길에서도 염파가 보이면 멀찌감치 피해가곤 했다.인상여를 따르는 자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나리는 염파가 두려워 피해만 다니십니다. 이것은 범부에게조차 부끄러운 일입니다.” 인상여가 말했다. “내가 어찌 염 장군을 두려워 하겠소. 막강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파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지금 두 호랑이가 다투면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내가 그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감정을 뒤로 하기 때문이오.”인상여의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맨몸에 가시채찍을 짊어지고 인상여의 문 앞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했다. “비천한 제가 상경의 넓은 도량을 미처 몰랐습니다. 앞으로는 ‘목숨도 내어줄 벗(刎頸之交)’이 되고자 합니다.”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사귐을 나타내는 문경지우(刎頸之交)는 <사기>의 이 고사에서 유래한다.미국 역사가이자 작가인 헨리 애덤스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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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지십 (聞 一 知 十)

    ▶ 한자풀이聞:들을 문一:한 일知:알 지十:열 십세계 4대 성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공자는 인(仁)을 강조한 유가(儒家)의 창시자다. 그의 유가적 사상은 동양적 사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음악 주역 시(詩) 등에도 두루 조예가 깊었다. 제자만도 3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제자들의 재주도 각자 달랐다. 누구는 학문에 뛰어나고, 누구는 장사에 밝았다.자공(子貢)은 재산을 모으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어 공자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유세하는 자금의 대부분을 뒷받침했다. 안회(顔回)는 가난했지만 총명하고 영리할 뿐만 아니라 효심이 깊어 공자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하루는 공자가 자공에게 물었다. “자공아, 너는 안회와 비교해 누가 낫다고 생각하느냐?” 자공이 답했다. “저를 어찌 안회와 비교하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치는(聞一知十)’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깨칠 뿐입니다.” 겸손한 듯하지만 실은 자기도 꽤 안다는 의미의 답변이었다. 자공은 스스로의 재주를 믿고 자만심이 강해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는 지적을 듣기도 했다. 자공의 속내를 떠본 공자가 말했다. “그래, 어림없느니라. 너만이 아니라 나도 한참 미치지 못 하느니라.”‘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으로 매우 영특함을 의미하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은 <논어> 공야장 편에 나온다. ‘그는 문일지십의 영재다’ 등으로 쓰인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책을 통해 스스로 익히는 것은 하나를 들으면 둘 셋을 깨치려는 ‘지적 내공’을 강화하는 훈련인 것이다.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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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삼모사 (朝三暮四)

    ▶ 한자풀이朝:아침 조三:석 삼暮:저녁 모四:넉 사중국 전국시대 송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원숭이를 너무 좋아해 집에서 수십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는 가족의 양식까지 퍼다 먹일 정도로 원숭이를 아꼈다. 원숭이들 역시 저공을 따랐고 사람과 원숭이 사이에는 의사소통까지 가능해졌다.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이처럼 많은 원숭이를 기르다 보니 먹이는 게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저공은 원숭이의 먹이를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먹이를 줄이면 원숭이들이 자기를 싫어할 것 같아 머리를 썼다. “앞으로는 너희들에게 나눠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씩 줄 생각인데 어떠냐?” 그러자 원숭이들은 펄쩍 뛰며 “아침에 하나 덜 먹으면 배가 고프다”며 화를 냈다. 그러자 저공이 슬쩍 말을 바꿨다.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는 건 어떠냐?” 그 말에 원숭이들은 모두 좋다고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라는 뜻의 조삼모사는 당장 눈앞의 차별만을 따지고 그 결과가 같음은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간사한 잔꾀로 남을 속이고 희롱함을 일컫기도 하다. <열자> <장자>에 함께 나오는 얘기다. ‘무분별한 복지정책은 조삼모사로 국민을 현혹한다’ 식으로 활용된다. 스스로가 어리석으면 조삼모사에 넘어가기 쉽고, 때로는 정치인들이 조삼모사식 정책으로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아침에 명령을 내리고 저녁에 고친다’는 조령모개(朝令暮改)와는 뜻이 다르다. 조삼모사는 ‘간사한 잔꾀’에, 조령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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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출어람 (靑 出 於 藍)

    ▶ 한자풀이靑: 푸를 청出: 날 출於: 어조사 어藍: 쪽 람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순자(荀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창했다.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순수함에서 멀어지니 예(禮)로 선함을 바로세워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인간이 선(善)의 씨앗을 품고 태어났다는 맹자의 ‘사단지심(四端之心)’과 대비되는 주장이다.순자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순자> 권학편에는 학문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글이 나온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學不可以已). 푸른색은 쪽(藍·한해살이 풀로 잎은 염료로 쓰임)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靑取之於藍而靑於藍), 얼음은 물에서 비롯됐지만 물보다도 더 차다(氷水爲之而寒於水).’ 학문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중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푸른색이 쪽빛보다 푸르듯이, 얼음이 물보다 차듯이 면학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여기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뜻인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나왔다. 원래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라고 해야 ‘쪽빛보다 더 푸르다(靑於藍)’는 의미가 갖춰지지만 일반적으로 줄여서 청출어람으로 쓴다. 또 이런 재주 있는 사람을 ‘출람지재(出藍之才)’라고 한다. ‘뒤에 오는 사람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후생가외(後生可畏)도 의미가 같다.청출어람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 하나. 북위(北魏)의 이밀은 어려서 공번을 스승으로 삼아 학문을 닦았다. 그의 학문은 몇 년이 지나자 스승을 능가하게 됐다. 공번은 이제 그에게 더 이상 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