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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미생지신(尾生之信)

    ▶ 한자풀이尾  꼬리 미生  날 생之  어조사 지信  믿을 신춘추시대 노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어느 날 미생은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늦지 않게 다리 아래로 나갔으나 웬일인지 여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기다렸고 갑자기 쏟아진 장대비로 개울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자리를 옮기지 않고 마냥 여자를 기다리다 교각을 끌어안은 채 익사하고 말았다. 《사기》 《장자》 《전국책》 《회남자》 등에 두루 나오는 얘기다.‘미생의 믿음’이란 뜻의 미생지신(尾生之信)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약속을 굳게 지키는 것을, 하나는 고지식해 융통성이 없음을 비유한다. 말하고자 하는 뜻에 맞춰 인용되지만 후자, 즉 ‘융통성이 없는 고지식함’을 이르는 경우가 많다.장자는 도적의 우두머리인 도척의 입을 빌려 미생의 융통성 없고 어리석음을 통박한다. “이런 인간(미생)은 제사에 쓰려고 찢어발긴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 없다. 쓸데없는 명분에 빠져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전국책》에서도 미생의 신의는 단지 사람을 속이지 않는 데 불과할 따름이라고 혹평하고, 《회남자》에서도 미생의 신의는 차라리 상대방을 속여 순간의 위험을 피하고 후일을 꾀하는 것만 못하다고 꼬집었다.믿음은 껍질보다 알맹이가 중요하다. 알맹이는 무엇을, 왜 믿느냐에 관한 거다. 자신의 이익에만 맞춤한 믿음은 이기심의 우아한 포장일 뿐이다.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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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순(矛盾)

    ▶ 한자풀이矛  창 모盾  방패 순전국시대 초나라에서 무기를 파는 상인이 시장에서 방패를 흔들며 외쳤다. “이 방패는 아주 단단해 어떤 창이라도 막아냅니다.” 이번에는 창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이 창은 아주 예리해 어떤 방패도 단번에 뚫어버립니다.” 그러자 상인을 지켜보던 한 구경꾼이 물었다. “그럼 그 예리한 창으로 그 단단한 방패를 찌르면 어찌 되는 거요?” 말문이 막힌 상인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어긋남을 비유하는 모순(矛盾)은 《한비자》에 나오는 창(矛)과 방패(盾) 파는 상인 얘기가 유래다.‘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에 관한 일화 하나. 어느 날 한 청년이 돈이 없어도 논법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프로타고라스가 말했다. “좋네, 공부가 끝난 뒤 치른 첫 재판에서 이기면 그 돈으로 수업료를 내게.” 한데 외상(?)으로 논리 공부를 마친 청년은 수업료를 낼 마음이 전혀 없는 듯했다. 재판에도 관심이 없고 놀기만 했다.참다 못한 프로타고라스가 청년을 고소했다. 재판정에서 마주친 청년에게 그가 넌지시 말했다. “어차피 자네는 수업료를 내야 할 걸세. 자네가 재판에서 이기면 나와의 계약대로, 지면 재판장의 판결대로 수업료를 내야 하지 않겠나.” 청년이 바로 응수했다. “어차피 스승님은 수업료를 받지 못합니다. 스승님 말씀처럼 재판장이 수업료를 내라 하면 제가 재판에 진 것이니 안 내도 되고, 내지 마라 하면 재판장의 판결이니 그 또한 낼 이유가 없습니다.”모순이나 이율배반(二律背反)은 논리적·사실적으로는 근거가 대등하면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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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득어망전(得魚忘筌)

    ▶ 한자풀이得  얻을 득魚  물고기 어忘  잊을 망筌  통발 전중국의 전설적인 성군 요 임금이 허유라는 은자(隱者)에게 천하를 물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허유는 사양했다. “뱁새는 넓은 숲에 살지만 나뭇가지 몇 개면 충분하고,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셔도 배가 차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허유는 이 말을 남기고 기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요 임금이 기산으로 찾아가 작은 땅이라도 맡아달라고 청했지만 허유는 단호히 거절했다. 요 임금의 말로 자신의 귀가 더러워졌다고 여긴 그는 흐르는 물에 귀를 씻었다.“왜 그리 귀를 씻고 계시오?” 소 한 마리를 앞세우고 가던 소부(巢夫)가 그 까닭을 물었다. 허유가 자초지종을 말하니 소부가 껄껄 웃었다. “그건 당신이 지혜로운 은자라는 소문을 은근히 퍼뜨린 탓이 아니오.” 그가 물을 따라 올라가자 허유가 물었다. “어디를 가시오.” 소부가 답했다. “당신 귀 씻은 물을 내 소에게 먹일 순 없지 않소.”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 추적이 금언·명구를 모아 놓은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전해오는 얘기다.장자는 《장자》 외편에서 허유 등 권력을 거부한 자들을 소개한 뒤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린다(得魚忘筌)’. 덫은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덫을 잊어버린다. 말은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인데 ‘뜻을 얻었으면 말은 잊어버린다(得意忘言)’.”득어망전(得魚忘筌)은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는다는 의미로 목적을 이루면 목적의 수단으로 쓰인 도구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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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겨 동정하고 도움 - 오월춘추

    ▶ 한자풀이同  한가지 동病  병 병相  서로 상, 빌 양憐  불쌍히 여길 련(연)춘추시대에 자주 회자되는 오자서(伍子胥)는 원래 초나라 사람이다. 초나라 태자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와 맏형이 처형당하자 복수를 위해 오나라로 망명했다. 그는 오나라 공자 광에게 자객 전저를 천거했고, 광은 전저를 시켜 사촌동생인 왕요를 시해하고 스스로 왕에 올랐다. 그리고 자신을 합려라고 이름했다. 월나라 구천에게 죽임을 당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단초가 된 그 인물이다.오자서는 자객을 천거한 공로로 권세 막강한 대부가 되었다. 그해 역시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를 잃은 백비가 초나라에서 망명해 오자 그를 천거해 함께 정치를 했다. 대부 피리가 오자서에게 물었다. “백비의 눈매는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호랑이 같으니 필시 사람을 죽일 상이오. 공은 어떤 까닭으로 그런 자를 천거했소?” 오자서가 답했다. “그가 나와 같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오. 하상가(河上歌)에 ‘같은 병은 서로 불쌍히 여겨(同病相憐) 한 가지로 걱정하고 서로 구하네(同憂相救)’라고 했소.”그로부터 9년 후, 합려는 초나라에 대승을 거뒀고 오자서와 백비는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았다. 한데 오자서는 월나라에 매수된 백비의 모함에 빠졌고, 분을 참지 못한 그는 스스로를 태워 목숨을 끊었다. 남방의 앙숙 오나라와 월나라의 흥망성쇠를 다룬 《오월춘추》에 나오는 얘기다.“네 맘 알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네 글자다. ‘네 맘을 안다’는 건 너의 마음에 내 마음이 섞여 있다는 거다. 소통은 내 마음에 네 마음을 담으려는 심적 투쟁이다. 머리로만 하는 이해는 늘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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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식 싹을 뽑아올린다는 뜻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더 부추김 -장자

    ▶ 한자풀이助  도울 조長  긴 장맹자가 제자 공손추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하면서 송나라 농부 얘기를 들려줬다. 송나라의 한 농부가 자기가 심은 곡식의 싹이 이웃집 곡식보다 빨리 자라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겨 그 싹들을 일일이 뽑아올렸다. 그가 집으로 돌아와 말했다. “오늘은 피곤하다. 싹 올라오는 게 더뎌 하나하나 빨리 자라도록 도와줬다.” 아들이 놀라 이튿날 밭으로 달려가 보니 싹들은 이미 말라죽어 있었다.맹자가 농부 이야기 말미에 한마디 덧붙였다. “호연지기를 억지로 조장하는 것은 싹을 뽑아 올려주는 것과 같다. 조장하면 무익할 뿐 아니라 해까지 끼친다.”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긴다는 뜻의 조장(助長)은 《장자》 공손추편이 출처다.무르익기를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이 어디 송나라 농부만의 증상이겠는가.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농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나그네, 부팅 몇 초 늦다고 모니터 노려보는 사람들…. 모두 조급증 환자다. 씨앗의 법칙은 단순하다. 씨앗을 심어야 싹이 트고, 싹이 자라야 꽃을 피우고,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다. 열매 늦게 맺는다고 꽃을 흔들어 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물은 익혀야 한다. 와인은 익혀야 명품이 되고, 자식도 익혀야 제구실을 한다. 익힌다는 건 때를 아는 지혜, 참고 견디는 인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다.조금 더 여유로워지자. 조금 더 기다리자. 몇 초에 안달하지 말고, 몇 년에 한숨짓지 말자. 오늘 작은 상처가 내일 큰 병을 막아준다. 중턱을 밟지 않고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없다. 알이 클수록 오래 품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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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분수를 잊고 남을 흉내내다 이것저것 다 잃음을 비유하는 말 -장자-

    ▶ 한자풀이邯  조나라 서울 한鄲  조나라 서울 단之  갈 지步  걸음 보전국시대 조나라 사상가 공손룡(公孫龍)은 언변이 뛰어났다. 자신을 천하제일의 논객으로 자처한 그에게 장자는 눈엣가시였다. 사람들의 입에 장자가 오르내리는 게 영 불편했다. 어느 날 위나라 공자 모(牟)를 찾아가 속마음을 털어놨다.모가 우물 안 개구리 등의 비유로 그를 나무란 뒤 얘기 하나를 들려줬다. “자네는 조나라 수도 한단(邯鄲)에서 그곳 걸음걸이를 배우려던 시골 사람 얘기를 들어봤는가. 한단 걸음걸이를 채 익히기도 전에 고향 걸음걸이를 잊어버려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얘기 말일세. 자네가 이곳을 바로 떠나지 않으면 장자의 큰 지혜도 배우지 못하고 자네의 지혜마저 잊어버릴 걸세.” 공손룡은 모의 말을 듣고 황급히 조나라로 돌아왔다.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얘기다.한단의 걸음걸이, 한단지보(邯鄲之步)는 자신의 분수를 잊고 남만 따라하는 어리석음을 뜻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우리 속담과 뜻이 같다. “들보로 성벽을 부수지만 구멍을 막을 수는 없다. 크기가 다른 까닭이다. 천리마는 하루 천길을 달리지만 쥐를 잡는 데는 고양이만 못하다. 재주가 다른 까닭이다.” 역시 추수편에 나오는 이 구절은 ‘닮지 말고 너로 살라’는 장자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는다.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분주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처지가 딱하다. 그중 남의 걸음걸이에 자기 보조를 맞추는 자의 처지가 가장 딱하다”고 했다. 미국의 재즈피아노 연주자 델로니어스 몽크는 “천재는 가장 자기 자신다운 사람”이라고 했다.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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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힘든 일도 노력과 끈기로 이뤄낸다는 의미 -당서-

    ▶ 한자풀이磨  갈 마斧  도끼 부爲  할 위針  바늘 침중국의 시선(詩仙) 이백(李白)도 ‘타고난 시인’은 아니었다. 그도 여느 아이들처럼 배움보다 노는 데 마음을 뒀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이백을 상의산으로 보내 공부를 시켰다. ‘산중 과외선생’을 붙여준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아 싫증이 난 이백은 공부를 포기하고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하산 도중 산 입구 물가에서 도끼 가는 노파를 만났는데, 가는 모양새가 이상했다.이백이 물었다. “도끼날을 세우려면 날 쪽만 갈아야지 왜 이렇게 전부를 가는 겁니까.” 노파가 답했다. “이렇게 다 갈아야 바늘을 만들지.” 엉뚱하다 싶어 이백이 웃었지만 노파는 진지했다. “이리 갈다 보면 도끼도 언젠가는 바늘이 되겠지. 시간이 걸려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노파의 말이 이백 가슴에 꽂혔다. 그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산에 들어가 배움에 정진했다. 중국 당나라 역사책 《당서(唐書)》에 나오는 얘기다.마부위침(磨斧爲針),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아무리 힘든 일도 노력하고 버티면 결국은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마부작침(磨斧作針)으로 바꿔 쓰기도 한다. 《시경》에 나오는 시 구절 절차탁마(切嗟琢磨·자르고 쓸고 쪼고 간다)도 뜻이 같다. 시는 학문과 인격을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비로소 군자에 가까워진다고 깨우친다.세상에 ‘타고난 천재’로 성공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성공한 사람의 99%는 남달리 노력한 자다. 처음에 앞서가다 ‘노력하는 자’에게 밀린 천재들은 역사에 무수하다. 세상에 노력만 한 재능은 없고, 인내만 한 용기는 없다. 세상 이치는 단순하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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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뤄진다 -열자

    ▶한자풀이愚  어리석을 우公  공평할 공移  옮길 이山  메 산먼 옛날 중국의 한 작은 마을에 우공(愚公)이라는 90세 노인이 살았다. 한데 사방 700리에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두 산이 집 앞뒤를 가로막아 왕래가 너무 불편했다. 우공이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물었다. “나는 태행산과 왕옥산을 깎아 없애고, 예주와 한수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싶다.”이튿날 새벽부터 우공은 산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세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에 갖다 버렸다. 한 번 버리고 오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우공은 태연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은 또 손자를 낳고, 손자는 또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은 또 아들을 낳겠지요. 산은 그대로이니 언젠가는 두 산이 평평해지겠지요.”우공의 얘기를 전해들은 옥황상제는 그 뜻에 감동해 명했다. “두 산을 업어 태행산은 삭동 땅에, 왕옥산은 옹남 땅에 옮겨놔라.” 우공 집을 가로막은 두 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금은 작은 언덕조차 없다고 한다. 《열자》 탕문편에 나오는 얘기다. 우공이산(愚公移山). 90세 노인이 믿음 하나로 태산을 옮겼다는 뜻으로, 큰일도 믿음이 굳으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의미다.세상에 단박에 이뤄지는 것은 없다. 태산은 티끌이 쌓이고 쌓여 저리 높아졌고, 바다는 물 한 방물이 모이고 모여 저리 깊어졌다. 낮다고 버리면 높아지기 어렵고, 작다고 버리면 커지기 어렵다. 큰 꿈을 꾸려면 작은 실천에 마음을 쏟고, 먼 미래를 내다보려면 오늘에 충실해야 한다. 믿음에는 묘한 힘이 있다. 그 힘은 생각보다 훨씬 세다. 믿음은 세상 최고의 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