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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개과천선(改過遷善)

    ▶ 한자풀이改:고칠 개過:허물 과遷:옮길 천善:착할 선지난 허물을 고치고 선한 사람이 됨-보서(普書)중국 남북조시대 진나라에 주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몸가짐이 좋지 않아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처음부터 망나니는 아니었다. 그는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이었는데 열 살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조금씩 삐뚤어져 온갖 나쁜 짓을 다했다.다행히 주처는 자라면서 철이 들기 시작했다. 하루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다. “지금 세상이 태평한데 왜 그리 얼굴을 찡그리십니까?” 한 사람이 답했다. “우리 마을에 세 가지 해로움이 있는데 어찌 태평한 세상이라 하겠는가?” “세 가지 해로움이라뇨?” 주처가 되묻자 그가 답했다. “하나는 남산에 있는 사나운 호랑이요, 또 하나는 다리 아래 사는 교룡이요, 마지막은 바로 주처 자네일세. 이 세 가지 해로움 때문에 우리는 얼굴을 펴고 살 수 없다네.”주처는 그 말을 듣고 새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두고 보십시오. 제가 그 세 가지 해로움을 반드시 없애겠습니다.” 이튿날 주처는 남산에 올라가 호랑이를 잡아 없애고, 사흘 밤낮을 교룡과 싸워 죽이고 돌아왔다. 하지만 주처를 본 마을 사람들은 별로 반갑게 여기지 않았다.‘아직도 나를 미워하는구나.’ 주처는 새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잡고, 당시 대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육기와 육운 형제를 찾아갔다. “이제 뜻을 세워 새사람이 되려 하는데 너무 늦은 듯해 두렵습니다.” 주처의 말에 형제는 이렇게 격려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나? 자넨 아직 젊네. 굳은 의지를 가지고 개과천선(改過遷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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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고(推敲)

    ▶ 한자풀이推:밀 퇴敲:두드릴 고원래는 미는 것과 두드리는 것이란 뜻으로글을 지을 때 문장을 가다듬는 것을 이름-당나라 가도의 시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한유(768~824)가 경조윤이란 벼슬을 지낼 때의 일이다. 가도(779~843)라는 시인이 장안 거리를 거닐면서 한참 시 짓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초안의 내용은 이랬다.이웃이 드물어 한적한 집(閑居隣竝少)풀이 자란 좁은 길은 거친 뜰로 이어져 있다(草徑入荒園)새는 연못가 나무 위에서 잠들고(鳥宿池邊樹)스님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리네(僧敲月下門)그런데 결구(結句)를 밀다(推)로 해야 할지, 두드리다(敲)로 해야 할지 고민하다 자신을 향해 오는 고관의 행차와 부딪쳤다. 바로 한유의 행차였다. 하인들의 호통에 깜짝 놀란 가도가 고개를 들어 사죄하자 한유가 물었다. “어찌된 연유인고?” 가도가 길을 막게 된 자초지종을 말했다. 한유는 그를 나무라기는커녕 시를 다시 한번 읊어보라고 한 뒤 말했다. “내 생각에는 ‘두드리네(敲)’가 좋을 듯하군” 하며 그를 불러 시를 논한 뒤 둘은 더없는 시우(詩友)가 됐다.이 고사에서 연유해 퇴고(推敲)는 문장을 다듬는다는, 원문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개고(改稿) 고퇴(敲推) 윤문(潤文)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농단(壟斷)도 원문과 뜻이 다른 의미로 쓰이는 고사성어다. 원래는 ‘깎아지르듯이(斷) 높이 솟은 언덕(壟)’이란 뜻이지만 지위를 이용해 정보를 독점, 어떤 이익 등을 독차지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옛날 한 남자가 시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올라 시장 움직임을 두루 살핀 뒤 물건이 가장 잘 팔리는 좋은 자리를 잡아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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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隨珠彈雀(수주탄작)

    ▶ 한자풀이隨:따를 수珠:구슬 주彈:쏠 탄雀:참새 작수후(隨侯)의 구슬로 참새를 쏜다는 뜻 작은 것을 얻기 위해 귀한 것을 버림-<장자>수주(隨珠)는 수후의 구슬이라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 수나라 제후가 큰 상처를 입은 뱀을 구해준 보답으로 받은 야광주를 일컫는다. 화씨지벽(和氏之璧)과 함께 수주화벽(隨珠和璧)으로 불리며, 천하제일의 보물로 비유된다.노나라 군주 애공은 구슬을 가진 안합이 도(道)를 터득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보물을 빼앗을 요량으로 사신을 시켜 예물을 들고 가서 모셔오게 했다. 안합은 누추한 집에서 삼베 옷을 입고, 소에게 여물을 먹이고 있었다. 사신들이 안합의 집에 이르자 안합이 몸소 맞이했다. 사신들이 예물을 바치자 안합은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것인지도 모르니 돌아가서 다시 한번 확인해 보라고 했다. 사신들이 돌아가 확인한 뒤 다시 와서 안합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장자> 양왕편에 실린 고사다.이 고사를 소개한 장자는 몸을 위태롭게 하고 생명까지 버리면서 부귀공명을 좇는 자들이 많은 세상을 한탄한다. “무릇 성인은 마음이 향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미리 잘 살핀다. 지금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수나라의 매우 귀중한 구슬로 천 길 벼랑 위를 날고 있는 참새를 쐈다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비웃을 것이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건 그가 사용한 것은 귀중하고 그가 취하려는 것은 하찮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 생명의 귀중함을 어찌 수주의 구슬에 비하겠는가.” ‘수주의 구슬로 참새를 쏜다’는 의미의 수주탄작(隨珠彈雀)은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로, 작은 것을 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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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두구육(羊頭狗肉)

    ▶ 한자풀이羊:양 양頭:머리 두狗:개 구肉:고기 육양 머리에 개고기라는 뜻으로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음을 의미-<오등회원> <양자법언>춘추시대 제나라 영공(靈公)은 여인들이 남장하는 것을 보기 좋아했다. 그의 특이한 취미가 온 나라에 전해지자 제나라 여인들이 온통 남자 복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전해들은 영공은 남장을 금지시켰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당대 명성 있는 사상가인 안자(晏子)를 우연히 만나 금지령이 지켜지지 않는 까닭을 물었다. 안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군주께서는 궁궐 안에서는 여인들의 남장을 허하면서 궁 밖에서는 못하게 하십니다. 이는 곧 문에는 소머리를 걸어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懸牛首於門, 而賣馬肉於 也). 어찌하여 궁 안에서는 금지하지 않으십니까? 궁중에서 못하게 하면 밖에서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이 말을 듣고 영공은 궁중에서도 남장을 금하게 했고 한 달이 지나 제나라에 남장하는 여인이 없게 되었다. 송나라 때 지어진 <오등회원(五燈會元)> 등에 전해지는 얘기다.이후 여러 문헌과 구전에 의해 원문의 소머리는 양머리로, 말고기는 개고기로 바뀌어 쓰이고 있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은 이처럼 겉으로는 좋은 명분을 내걸고 있으나 알고 보면 실속 없이 졸렬한 것을 말한다. 양두마육(羊頭馬肉) 표리부동(表裏不同) 명불부실(名不副實)은 비슷한 의미의 사자성어이고, 명실상부(名實相符) 명불허전(名不虛傳)은 반대 뜻의 사자성어다.세상에는 속과 겉, 명분과 실제가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애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집단의 이익만을 위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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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자우환(識字憂患)

    ▶ 한자풀이識: 알 식字: 글자 자憂: 근심 우患: 근심 환서서(徐庶)는 유비에게 제갈량을 소개한 인물이다. 유비가 제갈량은 얻기 전에는 유비의 군사로 있으면서 조조를 많이 괴롭혔다. 위나라 조조에 비해 세력이 크게 약했던 촉나라 유비가 ‘삼국’이라는 입지를 강화한 것은 제갈량의 공이 컸고, 그를 소개한 서서 역시 삼국의 지형을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조조는 모사꾼인 정욱의 계락에 따라 서서가 효자라는 것을 알고, 그의 어머니를 이용해 서서를 어머니에게 돌아가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학식이 깊고 명필인 데다 의리가 있는 서서의 어머니 위부인은 아들을 불러들이기는커녕 어머니 걱정은 말고 현군인 유비를 끝까지 한 임금으로 섬기라고 격려했다.조조가 꾀를 냈다. 중간에 사람을 넣어 교묘한 수법으로 위부인의 필체를 알아낸 뒤, 서서에게 어머니의 위조 편지를 전달하게 했다. 필체에 속아 서서가 집에 돌아오자 위부인은 어찌된 영문인지를 몰라 의아해했다. 아들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들은 뒤 이 모든 것이 서서의 효심과 거짓편지 때문이란 것을 안 위부인은 “여자가 글씨를 안다는 것부터가 걱정을 낳게 한 근본 원인이다(女子識字憂患)”라고 한탄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다.소동파의 시에도 “인생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이 시작된다(人生識字憂患始)”는 구절이 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은 말 그대로 ‘아는 글자가 되레 근심이 된다’는 뜻으로 너무 많이 알면 쓸데없는 걱정도 그만큼 많이 하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또는 어쭙잖은 지식 때문에 일을 망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한국 속담에 ‘아는 것이 병이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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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곤일척 (乾坤一擲)

    ▶ 한자풀이乾: 하늘 건坤: 땅 곤一: 한 일擲: 던질 척건곤(乾坤)은 ‘주역(周易)’에 나오는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를 이르는 것으로 천하 천지를 뜻한다. 건곤일척은 곧 천하를 걸고 한번 던져 승패를 겨룬다는 말이다. 중국 당나라 제일의 문장가 한유(韓愈)는 옛날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천하를 양분하는 경계로 두고 싸움을 한 홍구를 지나다가 ‘과홍구(過鴻溝)’라는 시를 지었다. 시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용은 지치고 호랑이도 피곤하여 강과 들을 나누어 가지니(龍疲虎困割川原)이로 인해 억만창생의 목숨이 살아남게 되었네(億萬蒼生性命存)누가 임금에게 권하여 말머리를 돌리게 했는가(誰勸君王回馬首)참으로 한번 겨룸에 천하를 걸었구나(眞成一擲賭乾坤).’천하를 차지하기 위한 두 사람의 싸움은 수년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승부가 나지 않았고 홍구 지역을 기준으로 서쪽은 유방이, 동쪽은 항우가 갖기로 하면서 싸움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유방이 철군하려 하자 참모인 장량과 진평이 간곡히 요청했다. “한나라는 천하의 태반을 차지하고 제후들도 따르고 있습니다. 반면 초나라 항우의 군사는 몹시 지쳐있고 군량마저 바닥이 났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초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뜻이오니 당장 쳐부숴야 합니다.” 유방은 말머리를 돌려 천하를 걸고 단판 승부를 벌였고, 항우는 대패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나라는 이렇게 중국 천하를 다시 통일했다.여기서 유래한 건곤일척(乾坤一擲)은 승패와 흥망을 걸고 마지막으로 결행하는 단판승부, 또는 운명을 걸고 어떤 일에 나서는 대범한 용기를 가리키기도 한다.‘레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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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양지귀 (洛陽紙貴)

    ▶ 한자풀이洛: 서울이름 낙陽: 양기 양紙: 종이 지貴: 귀할 귀좌사(左思)는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유명한 시인이었다. 제나라 수도 임치 출신으로, 가난하고 생김새도 추했지만 문장 하나는 탁월했다. 그는 집필 1년 만에 <제도부(齊都賦)>를 썼는데, 임치의 사물에 관한 글이었다. 자신의 작품에 흡족해한 그는 <삼도부(三都賦)>를 쓰기로 작정했다. ‘삼도’란 삼국시대 위나라 수도 업(), 촉(蜀)나라 수도 성도(成都), 그리고 오나라 수도 건업(建業)을 뜻한다.그가 작품 구상에 한창일 때 누이가 갑자기 궁중으로 불려 올라가게 됐고, 뛰어난 문사가 몰려 있는 중앙 무대의 분위기에 자극받았지만 집필은 지지부진했다. 자신의 공부가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한 좌사는 비서랑이 돼 궁중에 보관돼 있는 각종 문헌을 읽으며 학문적 시야를 넓혔다. 그런 노력 끝에 10년 만에 <삼도부>를 완성했지만, 처음에는 작품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일품 벼슬인 사공(司空)이라는 직에 있는 장화가 좌사의 집에 찾아와 그의 작품을 한 번 보여달라고 했다.좌사는 선뜻 내키지 않는데도 <삼도부>를 장화한테 보여줬다. 중앙 문단에서 이름을 날리는 시인이기도 한 장화는 <삼도부>를 읽은 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아니, 이런 훌륭한 작품을 가지고 무슨 당찮은 겸양이오. 내가 보기엔 반고(班固)나 장형(張衡)을 능가하고 있소이다.” 반고와 장형은 한나라 때 사람으로,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었다. 장화의 극찬은 금방 화제가 됐고, 글을 읽는다는 사람들은 앞다퉈 <삼도부>를 베껴 읽었다. 그 바람에 ‘낙양의 종이가 갑자기 동이 나서 종이값이 폭등(洛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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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사유피 (虎死留皮)

    ▶ 한자풀이虎: 범 호死: 죽을 사留: 머무를 유皮: 가죽 피누구도 어딘가를 완전히 떠나지 못한다. 떠나도 그곳에 흔적이 남는다. 그러니 떠나도 머무는 셈이다. 누구나 삶의 곳곳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바로 ‘나’이고, 바로 ‘당신’이다.5대10국(五代十國) 시대는 중국 역사의 큰 혼란기다. 907년에 당나라가 멸망한 뒤 979년 조광윤이 중국을 통일해 송나라를 세우기까지 불과 70년 동안에 수많은 나라가 흥하고 망했다. 5대(五代)는 화북의 중심을 지배한 나라로 양(梁)·당(唐)·진(晉)·한(漢)·주(周)의 다섯 왕조를 말한다. 10국(十國)은 화남과 지방에서 흥망한 지방정권을 뜻한다.5대 왕조 중 하나인 양나라에 왕언장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성격이 우직하고 전쟁에선 누구보다 용감했다. 싸움에는 항상 쇠창을 들고 나가 별명이 ‘양철창(王鐵槍)’이었다. 산서에 있던 진나라가 국호를 후당(後唐)으로 바꾸고 양나라로 쳐들어왔다. 왕언장은 크게 패해 파면까지 당했다. 얼마 후 후당이 양나라를 재침공했고, 다시 군사를 맡은 왕언장은 포로가 되고 말았다.왕언장의 용맹을 높이 산 후당 왕이 귀순을 회유했다. “당신은 두 번이나 지고 이리 붙잡힌 신세까지 되었소. 돌아가도 좋은 대접은 없을 터이니 나와 같이 일해 보는 게 어떻소.” 왕언장은 단호했다. “아침에는 양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진나라를 섬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오.” 분노한 왕은 그의 목을 치라고 했다. 형장으로 가는 그는 참으로 의연하고 태연했다. 그는 평소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虎死留皮),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人死留名)”는 말을 자주 했다. 실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