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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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7) 플라톤(하) 도덕론
플라톤에게 ‘도덕’은 …인간의 상실된 내적 조화의 회복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성이 욕망에 대하여 제 기능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악을 낳았던 것이 무지와 잘못된 지식이었기 때문에 지식만이 덕을 다시 낳을 수 있는 것이다.도덕은 훌륭한 또는 올바른 삶을 위한 기준에 대한 답을 주고자 한다. 이러한 물음에 제대로 된 답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나는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는 과연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나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무엇이 나에게 좋고, 나쁜 것인지 그 기준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컨대 먼저 자신의 몸과 체질에 대해 잘 알아야 무엇이 자신의 몸에 좋고, 나쁜 것인지에 관한 기준을 정할 수 있는 것과 같다.자신의 몸과 체질을 알아야 한다이것이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지에 대한 자각을 요구하고 있는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아테네 사람들은 소피스트의 영향으로 상대주의적 지식에 안주하여 무지의 잠을 자고 있었다. 여기서 아테네 사람들의 ‘등에’로서 이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살펴보자.“오 훌륭한 사람이여, 그대는 지혜와 힘에 있어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명성이 높은 나라인 아테네의 시민이면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까 하는 데에만 머리를 쓰고 또 평판이나 지위에 마음을 쓰고, 사려나 진리에 대해서 또 영혼을 가장 훌륭하게 하는 데에는 생각도 않고 염려도 하지 않으니 부끄럽지 않은가?”<소크라테스의 변명>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아테네 사람들은 무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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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플라톤(중) 동굴의 비유
플라톤 철학의 핵심은 이데아론이다. 그의 이데아론에 의하면 세계는 현상의 세계와 이데아의 세계로 구분된다. 현상의 세계는 감각으로 지각되는 불완전한 세계로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반면 이데아의 세계는 이성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는 완전하고 불변하는 세계이다. 예컨대 현실에 있는 삼각형이나 아름다운 꽃들은 모두 불완전하지만, 이데아의 세계에는 완전한 삼각형의 이데아와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불완전한 세계와 완전한 세계이 세상의 모든 사물마다 그 본질인 이데아가 있으며, 그 가운데 최고의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이다. 그러나 이데아에 대한 그의 사상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플라톤도 이데아를 말로 적절하게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유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에 제시된 유명한 ‘동굴의 비유’이다.동굴 안에 죄수들이 갇혀 있다. 이들은 오직 맞은편 동굴 벽에 있는 그림자만 볼 수 있도록 온몸과 목이 사슬에 묶여 고정된 상태이다. 죄수들의 뒤에 있는 장벽 위에서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앞에서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다. 죄수들이 보고 있는 그림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평생 벽만 보고 살아온 죄수들은 등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들이 묶여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고 있는 그림자들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다. 그런데 한 죄수가 사슬에서 풀려나 동굴 밖으로 끌려 나간다. 그 죄수는 지금까지 보아온 그림자들이 모두 실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동굴 밖 세상을 보고, 모닥불이 아닌 진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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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플라톤 (상)
잘 알려진 대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다. 그는 20세에 소크라테스를 만나 그의 철학에 매료되었다. 플라톤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소크라테스 시대에 태어난 것을 신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평민 출신인 소크라테스와 달리 플라톤은 아테네 유력한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플라톤도 처음에는 당시 아테네의 여느 귀족 출신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정치가가 되고 싶어 했다.아테네 귀족가문 출신그러나 플라톤을 평생 철학의 길로 인도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바로 스승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과 사형이었다. 이로 인하여 플라톤은 아테네의 현실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거둔다. 가장 지혜롭고 정의로운 사람인 소크라테스를 터무니없는 죄목으로 죽인 아테네의 민주 정치에 대하여 실망하였기 때문이다.현실 정치에서 떠난 플라톤은 철학과 교육에 관심을 두고 최초의 대학이라 할 수 있는 아카데미아를 세웠다. 이곳에서 그는 철학과 저술 및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계승하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플라톤이 저술한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대화편이라는 표현에 나타나 있듯이 그것은 등장 인물들 간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소크라테스를 기록하다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철학함이란 대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 정신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플라톤도 철두철미하게 스승의 철학적 방법인 산파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비록 그의 대화편은 글이긴 하지만 소크라테스와 함께 토론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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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크라테스 (하)
소크라테스는 재판 과정에서 아테네 법관들로부터 회유를 받는다. 만약 철학을 포기하면 석방해주겠다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음미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는 말로 답을 대신한다. 여기서 우리는 삶을 음미하는 것이 철학의 본질적 활동과 관련이 있다는 시사를 얻을 수 있다. 음미라는 것은 우리말에 ‘캐묻는 것’과 같은 의미다. 예컨대 내가 믿고 있는 신념이 옳은가, 또는 알고 있는 지식이 진리인가 등을 끊임없이 검증해보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인 삶의 방식으로는 ‘습관적으로’ 사는 삶의 방식이 있다.재판정에 선 소크라테스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대개 습관적인 것들로 이뤄져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우리는 어제 산 대로 오늘을 살고, 오늘 산 대로 내일을 살 것이다. 비단 행동뿐 아니라 생각에도 습관이 스며든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살던 대로 생각하면 골치 아플 일이 없다. 이것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우리는 습관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정도다. 그러면 왜 삶을 음미해야만 하는 것일까?음미되지 않는 습관적인 삶은 맹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편한 데 익숙해지면 세상과 사물의 본질을 파헤치는 수고로움을 점차 꺼리게 되는 게 우리 인간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던 대로 살아가지 않으려면 우리가 당연시하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의미를 물어봐야 한다.예컨대 ‘지붕위의 바이올린’이라는 뮤지컬을 보면 이를 잘 드러내주는 장면이 나온다. 딸의 혼사를 얘기하던 남편 테비에가 아내 골데에게 물어본다. “당신 나 사랑해?”라고. 이 질문에 아내는 “아니 별안간 웬 뚱딴지같은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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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크라테스 (상)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철학자이다. 소크라테스가 아고라 광장에서 아테네 청년들을 가르치며 대화한 점에서는 소피스트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소피스트가 젊은이들에게 논쟁에서 승리하고 세속적으로 출세하는 방법을 가르친 반면,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대화의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도록 했다.소피스트들이 유행하던 시절게다가 소피스트가 비싼 수업료를 받은 반면, 그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그 자신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없고 따라서 돈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삶을 산 것은 그의 진리 탐구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소크라테스의 진리 탐구의 출발은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상대주의 입장을 취한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의문을 제기했다. “돼지나 개가 아니고 왜 하필 인간이 만물의 척도인가?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면 우둔한 자들과 현자인 당신의 차이는 무엇인가? 설령 그 말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인 당신의 척도 아닌가?” 사실 아무리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하더라도 정작 그 인간이 누구인지를 모른다면 그 말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논쟁에서 승리하고 출세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도 객관적인 진리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갈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지식은 행동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질문으로 진리 찾아가는 ‘산파술’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외쳤던 것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 진리를 알고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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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로타고라스
TV 토론에서 어떤 토론자를 보면 말은 맞는 것 같은데, 소위 ‘말발’이 좋지 않아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말발 센 상대에게 밀리는 안타까운 광경을 목격할 때가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에서 말의 능력과 관련하여 두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이 옳다고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고, 다음으로 말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2500여 년 전 직접 민주주의를 실시했던 아테네에서도 동일했다.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민주주의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는 위대한 통치자로 알려진 페리클레스에 의해 귀족 정치가 민주정치로 바뀌었다. 민주정으로의 변화는 시민들에게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불러일으켰다. 시민들은 여자와 노예를 제외한 아테네의 성년 남자로 제한되었다. 법을 만들거나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시민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투표로 결정했다. 이러한 사회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아테네에서 명문 귀족 출신은 별 의미가 없게 되고 오히려 말을 잘하는 능력이 출세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 민주적 방식에서는 더 많은 지지자를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힘이 되기 때문이다.아테네에서 출세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제압할 수 있는 웅변술과 수사학이라는 스펙을 갖추어야 했다. 이러한 스펙은 비단 정치 권력을 얻는 데만 유용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누군가에게 소송을 당하게 되면 당사자가 배심원들 앞에서 자신을 직접 변호해야 했다. 법정에서 배심원 설득 여부에 따라 똑같은 행위가 불법도 되고 합법도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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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탈레스 “만물의 근원은 물”
최초의 철학자로서 탈레스의 사상을 탐색해보자. 이는 단지 과거에 존재하였던 한 철학자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철학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최초의 철학자일진데 그가 철학하는 일과 그 이후 2700여년 동안 철학자들이 하는 일의 성격은 비록 주제는 다를지라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항구도시 밀레토스의 토양탈레스는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해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 밀레토스 출신이다. 밀레토스는 중계 무역을 하던 무역항으로서 지중해 여러 국가에서 상인들이 드나드는 가운데 이질적인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며 공존하는 지역이었다. 타 문화를 접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자연히 개방적이고 합리적 사고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해상 무역과 같은 경제 활동을 통해 얻은 부는 지적 호기심을 펼칠 수 있는 여유를 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건들은 왜 밀레토스에서 철학이라는 학문이 성립할 수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지적 호기심의 추구가 철학대부분 서양 철학사 책에서 탈레스는 최초의 철학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일화에 의하면 그는 일식을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삼각형의 닮음의 비를 활용하여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높이를 측정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철학자로서 탈레스의 진면목은 다음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어느 날 탈레스가 별을 탐구하기 위해서 밤하늘을 보면서 걸어가다가 우물에 빠졌다. 그러자 동행하던 하녀가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기 위해서 정신이 팔려 발 아래 놓여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