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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44) 헤겔 (상): 헤겔의 변증법

    헤겔 철학은 칸트가 멈춰선 바로 그곳에서 출발한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이 ‘물자체’라고 하는 세계의 본 모습을 알 수 없으며 단지 그것이 나타난 현상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하며, 이성의 권한을 제한하는 지적 겸손을 보였다. 그런데 헤겔은 모든 것을 낳고 그 구석구석까지 꿰뚫어보는 신적 이성을 제시함으로써 칸트가 이성의 인식 능력의 한계라고 선언한 물자체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이 물자체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바로 헤겔 변증법이다.대부분의 사람은 ‘변증법’ 하면 헤겔을 떠올리고 그 내용이 ‘정(正)·반(反)·합(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헤겔은 변증법을 정·반·합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사실 정·반·합의 변증법은 독일 철학자 피히테가 말한 것으로, 헤겔은 이러한 변증법을 도식적이라고 비판한다. 헤겔은 변증법을 살아 있는 현실의 운동하는 원리 자체로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오늘 친구를 만났다. 나는 떡볶이를 먹고 싶은데, 친구는 야구장에 가자고 한다. 그럴 때 정(正)은 떡볶이를 먹는 것이고, 반(反)은 야구장을 가는 것이다. 그러면 이 둘의 합(合)은 무엇일까? ‘야구장에서 떡볶이를 먹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논리는 변증법과 전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반’은 모순적으로 ‘정’에서 도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은 모순 관계이다. 그런데 앞의 예시는 모순이 아니라 반대 관계이다. 모순은 둘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를 말한다.밀알→잎과 줄기→새 밀알이제 변증법의 예를 살펴보자. 변증법이란 밀알이 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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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공리주의(하): 밀의 자유론

    전통적으로 자유의 의미는 지배자의 권력과 피지배자의 자유의 투쟁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자유란 지배자의 폭정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했다. 이러한 자유의 개념을 밀의 《자유론》에 성급히 적용하여 그 자유를 “정치적 지배자의 횡포에 대항한 보호”, 즉 부당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하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자유론이 말하는 자유왜냐하면 밀은 이미 민주주의가 수립되어 정치권력의 횡포로부터 보호의 필요성이 없어진 시기에 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밀은 이미 민주화로 인하여 정치적 자유가 확보된 상황에서 《자유론》을 저술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밀이 《자유론》을 집필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고 그의 자유는 어떤 의미인가?밀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다수의 시민이 언제든지 소수를 억압함으로써 언제든지 자유의 침해 문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갈파하였다. 특히 여론을 통한 ‘다수의 횡포’는 일상 생활의 세부에 깊이 파고들어 인간의 정신 자체를 노예화시키므로 정치적 폭정보다 두려운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폭정으로부터의 보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사회가 여론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관습을 강요하는 경향으로부터의 보호도 필요하다는 것이다.침묵을 강요할 수 없다그렇다면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통제 사이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 밀은 《자유론》에서 문명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을 밝히려고 하였다. 그리고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강제나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경우를 최대한 엄격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기준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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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공리주의(중): 밀의 질적 공리주의

    세 살에 그리스어를 배우고 다섯 살 때 그리스 고전을 독파하다. 여섯 살 때 기하학과 대수를 익히고, 일곱 살 때 플라톤 대화편을 원서로 읽다. 여덟 살 때 라틴어를 공부하고 라틴어로 고전을 읽고, 열 살 때 뉴턴의 저서를 공부하고 로마 정부의 기본이념에 관한 책을 쓰다. 열한 살에 물리학과 화학에 관한 논문들을 두루 읽고, 열두 살 때 아리스토텔레스, 열세 살 때 애덤 스미스를 공부하다. 이것은 영국의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비범한 천재 존 스튜어트 밀밀은 비범한 천재였다. 하지만 밀은 당시 철학자였던 아버지 제임스 밀이 베푼 엄격한 ‘교육 실험’의 대상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밀을 3세부터 14세까지 개인적으로 집에서 가르쳤다. 요즘으로 말하면 조기 영재 교육인 셈이다. 이 시기에 밀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대신 아버지를 따라 분석적 사고를 훈련하고 고전을 원서로 읽었던 것이다. 밀은 그의 자서전에서 ‘나에게는 소년 시절이 없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단계를 건너뛸 수 없는 법. 스무 살에 밀은 신경 쇠약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지적으로는 그는 또래 친구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했지만, 정서적으로는 지진아였던 셈이다. 다행히도 이와 같은 밀의 지적인 측면과 정서적인 측면의 불균형은 이후 시를 비롯한 예술 등 다양한 정서적인 활동을 통해 회복되게 된다.벤담의 공리성에 푹 빠지다밀은 젊은 시절 벤담의 《도덕 및 입법의 원리》라는 책을 읽고, “그것은 나의 사상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그 책에서 밀은 벤담의 ‘공리성의 원리’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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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공리주의(상):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빠르게 산업사회로 진입했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와 개인 사이에, 또 개 인들 사이에 이해관계 갈등이 심화됐고, 이를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덕원리가 사회적으로 필요해 졌다. 이에 부응해 소수 특권층에 대항하는 다수 시민계급을 보호하는 공리주의가 등장했다. 당시 공 리주의는 소수 특권층을 공격하면서 민주주의 확장, 형법상의 개혁, 복지 등을 주장했는데, 그 이론적 체계를 확립한 철학자가 벤담이었다.18세기 발전 시대의 갈등벤담의 공리주의는 사람에게 실질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공리성(utility)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공리주의라고 하고, 쾌락이 양화돼 계산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양적 쾌락주의라고도 한다. 또한 쾌락의 공리성을 인정하는 점에서는 개인의 쾌락에만 관심을 두었던 고대 쾌락주의와 구별해 사회적 쾌락주의라고 부른다.벤담의 공리주의 철학을 일이관지(一以貫之), 즉 하나로 꿰뚫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리성의 원리’다. 공리성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벤담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려는 자연적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도덕의 출발점으로 삼는다.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은 인류를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군주의 지배 아래 두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지적하는 것도 오로지 이 두 군주에게 달려 있다.” 말하자면 인간은 모두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려는 본능을 지녔다는 것이다. 따라서 벤담은 인간 행위를 밝히는 도덕 법칙이 이런 인간의 본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공리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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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칸트의 철학(하) - 칸트의 윤리설

    우리는 거짓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거짓말이 왜 나쁜지에 대해 누군가 물으면 알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왜 인간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런데 칸트에 의하면 의외로 그 대답이 간단하다. 한마디로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칸트의 ‘의무론’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탐구다. 그렇다면 칸트는 어떻게 해서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곧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보았을까?인간답게 사는 도덕칸트가 보기에 인간이 인간다운 존재가 되는 것은 자신 안의 자연적 경향성을 극복하고 도덕법칙에 따르는 데 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연적 존재로서 생물적 본능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을 타고난 존재로서 자연적 존재인 동물과 구별된다. 인간은 이성으로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며, 의식적으로 그와 같은 행위를 자제할 수 있다. 즉, 인간만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 자유 의지는 도덕 성립의 전제가 된다. 이렇게 보면 도덕적 행동이란 자신 안에 있는 이성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는 인간을 자율적 존재라고 보았다. 여기서 자율이란 자신의 욕구나 타인의 명령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객관적인 도덕법칙을 세워 이에 따르는 것이다. 이 점이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다움의 핵심인 것이다.옳은 것을 하려는 선의지“내가 그것들을 더욱 자주,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항상 새롭고 더욱 높아지는 감탄과 경외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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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칸트의 철학(상) - 칸트의 인식론

    아리스토텔레스나 루소와 같이 유명한 철학자들이 산책을 즐긴 것을 보면 산책은 사 색하는 데 좋은 기회와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 같다. 칸트 또한 매일 일정한 시간에 쾨 니히스베르크 철학자의 길을 따라 산책을 하였는데, 그것이 너무 규칙적이어서 사람 들이 그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와 같은 산책을 통하여 칸트 는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켰을 것이다.사색을 즐겼던 칸트칸트 이전에 대부분 사람들은 우리의 감각과 이성이 우리들에게 우리 밖에 있는 세계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가정하였다. 전자는 경험론자이고 후자는 합리론자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람들은 이성과 과학의 도구를 사용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그러나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에서, 칸트는 이런 가정들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칸트의 말을 들어보자. 인간이 알 수 있는 데는 많은 한계와 제한이 있다. 우리가 이성을 사용해서 이성의 한계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성이 어떤 주장들을 판결할 수 있는가를 조사하지 않고 이성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것이 매우 독단적이다. 합리적이기 위해서, 이성은 그 자신의 영역을 검사해야 한다. 칸트는 인식 내용의 참과 거짓을 문제 삼기에 앞서 자신의 인식 능력 자체, 즉 이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 것이다. 이는 예컨대 한 사람이 안경을 끼고 주변을 살펴보면서 자신에게 보여진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다가 문득 자신이 안경을 끼고 있음을 의식하고서 안경을 주제로 그 안경 자체를 탐구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인간의 타고난 정신형식《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가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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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흄의 철학(하): 흄의 윤리설

    인간의 감정은 수시로 요동친다. 사소한 일에 상처를 받고 분을 내고 또 다른 작은 일에 금방 웃음을 터뜨리는가 하면 어떤 때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감정은 인간을 변덕쟁이로 만든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이성주의 철학 자들은 감정을 이성에 의해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인간의 행위에서 감정보 다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감정의 역할을 탐구그러나 이와 같은 이성주의자들의 입장에 대한 반박을 자신의 철학적 임무로 삼고 감정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감정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탐구한 경험주의 철학자가 바로 흄이다.이를 위해 흄은 자신의 경험주의 인식론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흄은 관념이 인상에 기초하고, 인상은 감각의 결과라는 그의 인식론적 입장을 도덕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즉, 도덕적 관념 역시 도덕적 인상의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서 도덕적 인상이란 기본적으로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하여 한 사람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이와 같은 감정을 갖는 것의 결과로 인간은 감정의 대상들을 추구하거나 회피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대상이 한 사람에게 그 대상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킬 경우 그 사람은 그 대상을 획득하려고 노력하는 동기를 지니게 된다. 여기서 그 대상에 접하였을 때 자신의 감정이 이끌리면 그 대상은 덕스러운 것이 되고, 반대로 감정이 이끌리지 않는다면 그 대상은 사악한 것이 된다.이성주의를 비판하다감정의 형성에 대한 이와 같은 흄의 논의는 도덕 영역에서 이성주의의 입장을 비판하는 근거가 된다. 흔히 사람들은 이성의 작용으로 생겨난 지식이 인간 행위의 동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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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흄의 철학(상): 회의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는 우리말로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고 의역되면서 맛깔스럽게 표현했 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이 대사의 의미는 현실이 비록 고단하더라도 긍정과 희망을 의미하는 ‘내일’ 을 기약하자라는 뜻이겠지만, 여기서는 약간 의미를 달리하여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입장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철학적 문제를 생각해보자.우리는 생활 속에서 ‘내일은 태양이 뜬다’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이 말 속에는 흄의 회의론과 관련된 문제가 들어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현실 속에서 문자 그대로 ‘내일은 태양이 뜬다’라는 사실을 의심하며 고민한다면 그는 아마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흄에 의하면 ‘내일은 태양이 뜬다’라는 것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사실이다. 우리는 그동안 매일 매일 해가 떴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경험함으로써 그 사실을 알 뿐이다. 물론 ‘내일은 태양이 뜬다’라는 사건이 예상대로 일어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 원인과 결과, 즉 인과관계 또는 귀납추리로부터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이와 같은 흄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흄의 인식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선행하는 인상 없는 관념은 허구”흄은 그동안 경험론에서 제기한 인식론적 문제, 즉 “자신이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이 무엇인가” 하는 데서부터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그의 인식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