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포기하면 살려주겠다"는 법관 회유에 "음미할 수 없는 삶은 가치없다"며 독배 선택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4) 소크라테스 (하)](https://img.hankyung.com/photo/201705/AA.13977987.1.jpg)
재판정에 선 소크라테스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4) 소크라테스 (하)](https://img.hankyung.com/photo/201705/AA.13976604.1.jpg)
음미되지 않는 습관적인 삶은 맹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편한 데 익숙해지면 세상과 사물의 본질을 파헤치는 수고로움을 점차 꺼리게 되는 게 우리 인간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던 대로 살아가지 않으려면 우리가 당연시하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의미를 물어봐야 한다.
예컨대 ‘지붕위의 바이올린’이라는 뮤지컬을 보면 이를 잘 드러내주는 장면이 나온다. 딸의 혼사를 얘기하던 남편 테비에가 아내 골데에게 물어본다. “당신 나 사랑해?”라고. 이 질문에 아내는 “아니 별안간 웬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핀잔을 준다. 그래도 계속되는 남편의 질문에 아내는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그냥 이렇게 살아왔지 않았느냐”며 여전히 남편의 질문을 의아해한다. 하지만 아내 골데는 다시 생각하고는 그 삶의 어려움을 함께 겪은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음미하며 사는 삶의 유익이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아테네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삶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는 변론에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삶에서 음미할 것을 촉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테네를 깨우는 ‘등에’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4) 소크라테스 (하)](https://img.hankyung.com/photo/201705/01.13987544.1.jpg)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아테네 사람들은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얻는 것을 최고의 삶으로 생각하고 이를 얻는 것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옳은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자신의 삶을 훌륭하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반성이 없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이처럼 아테네 시민들이 음미함 없이 세속적인 가치에 만족하는 것은 마치 무지의 잠을 자는 상태와 같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등에’로서 자신의 사명을 발견했다.
등에라는 표현보다 소크라테스의 삶을 단적으로 요약해주는 말은 없다. 등에는 말의 피를 빨아먹는 파리의 일종이다. 등에는 말이 피둥피둥 살이 쪄 게으른 상태에 있지 않도록 귀찮게 하는 존재다. 소크라테스는 이 등에의 역할을 신이 아테네에서 자신에게 맡긴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며 무지의 잠을 자는 아테네 사람들을 일깨워 진리를 향하도록 귀찮게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아테네 사회에 귀찮고 위험한 존재로 재판에 회부되고 결국 사형 판결을 받는다.
나의 사명은 질문하는 것
이제 소크라테스가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언정 철학을 포기하라는 아테네 재판관들의 요구를 왜 들어줄 수 없었는지가 자명해진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철학하는 일의 본질은 음미이고 이는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그 의미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에게 이런 삶을 포기하라는 것은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라는 말과 같다. 이는 또한 신이 부여한 자신의 사명을 저버리는 일이다. 그가 차라리 사형 선고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어쩌면 그의 철학함에 따르는 필연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서양 철학에서 음미라는 방법을 도입한 사람이고, 동시에 그 음미의 중요성을 위해 철학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된 것이다.
김홍일 < 서울국제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