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포기하면 살려주겠다"는 법관 회유에 "음미할 수 없는 삶은 가치없다"며 독배 선택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4) 소크라테스 (하)
소크라테스는 재판 과정에서 아테네 법관들로부터 회유를 받는다. 만약 철학을 포기하면 석방해주겠다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음미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는 말로 답을 대신한다. 여기서 우리는 삶을 음미하는 것이 철학의 본질적 활동과 관련이 있다는 시사를 얻을 수 있다. 음미라는 것은 우리말에 ‘캐묻는 것’과 같은 의미다. 예컨대 내가 믿고 있는 신념이 옳은가, 또는 알고 있는 지식이 진리인가 등을 끊임없이 검증해보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인 삶의 방식으로는 ‘습관적으로’ 사는 삶의 방식이 있다.

재판정에 선 소크라테스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4) 소크라테스 (하)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대개 습관적인 것들로 이뤄져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우리는 어제 산 대로 오늘을 살고, 오늘 산 대로 내일을 살 것이다. 비단 행동뿐 아니라 생각에도 습관이 스며든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살던 대로 생각하면 골치 아플 일이 없다. 이것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우리는 습관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정도다. 그러면 왜 삶을 음미해야만 하는 것일까?

음미되지 않는 습관적인 삶은 맹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편한 데 익숙해지면 세상과 사물의 본질을 파헤치는 수고로움을 점차 꺼리게 되는 게 우리 인간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던 대로 살아가지 않으려면 우리가 당연시하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의미를 물어봐야 한다.

예컨대 ‘지붕위의 바이올린’이라는 뮤지컬을 보면 이를 잘 드러내주는 장면이 나온다. 딸의 혼사를 얘기하던 남편 테비에가 아내 골데에게 물어본다. “당신 나 사랑해?”라고. 이 질문에 아내는 “아니 별안간 웬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핀잔을 준다. 그래도 계속되는 남편의 질문에 아내는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그냥 이렇게 살아왔지 않았느냐”며 여전히 남편의 질문을 의아해한다. 하지만 아내 골데는 다시 생각하고는 그 삶의 어려움을 함께 겪은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음미하며 사는 삶의 유익이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아테네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삶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는 변론에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삶에서 음미할 것을 촉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테네를 깨우는 ‘등에’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4) 소크라테스 (하)
“그대는 위대하고 지혜와 힘으로 가장 이름난 나라인 아테네의 시민이면서, 그대에게 재물은 최대한으로 많아지도록 마음 쓰면서, 또한 명성과 명예에 대해서도 그러면서, 슬기와 진리에 대해서는 그리고 자신의 혼이 최대한 훌륭해지도록 하는 데는 마음을 쓰지도 않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까.”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아테네 사람들은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얻는 것을 최고의 삶으로 생각하고 이를 얻는 것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옳은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자신의 삶을 훌륭하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반성이 없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이처럼 아테네 시민들이 음미함 없이 세속적인 가치에 만족하는 것은 마치 무지의 잠을 자는 상태와 같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등에’로서 자신의 사명을 발견했다.

등에라는 표현보다 소크라테스의 삶을 단적으로 요약해주는 말은 없다. 등에는 말의 피를 빨아먹는 파리의 일종이다. 등에는 말이 피둥피둥 살이 쪄 게으른 상태에 있지 않도록 귀찮게 하는 존재다. 소크라테스는 이 등에의 역할을 신이 아테네에서 자신에게 맡긴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며 무지의 잠을 자는 아테네 사람들을 일깨워 진리를 향하도록 귀찮게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아테네 사회에 귀찮고 위험한 존재로 재판에 회부되고 결국 사형 판결을 받는다.

나의 사명은 질문하는 것

이제 소크라테스가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언정 철학을 포기하라는 아테네 재판관들의 요구를 왜 들어줄 수 없었는지가 자명해진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철학하는 일의 본질은 음미이고 이는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그 의미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에게 이런 삶을 포기하라는 것은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라는 말과 같다. 이는 또한 신이 부여한 자신의 사명을 저버리는 일이다. 그가 차라리 사형 선고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어쩌면 그의 철학함에 따르는 필연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서양 철학에서 음미라는 방법을 도입한 사람이고, 동시에 그 음미의 중요성을 위해 철학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된 것이다.

김홍일 < 서울국제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