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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기타

    <27> 환경 쿠즈네츠 곡선

    사이먼 쿠즈네츠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20대 때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에서 경제 학을 공부했다. 미국경제조사국 연구원과 하버드대 교수를 지내면서 200여 편의 논문과 저서 를 남기는 등 방대한 연구 실적으로 유명하다.소득 불평등 정도는 후진국이 더 커쿠즈네츠는 경제 현상을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길 좋아했다. 경제 성장과 소득 증가, 그에 따른 사회 변화상을 상당히 긴 시간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경제성장률이 15~20년의 주기를 갖고 순환하는 걸 밝혀낸 ‘쿠즈네츠 순환’이 특히 그렇다. 경기는 일정한 패턴을 갖고 주기적으로 오르내리길 반복하는데 그는 건축 경기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 ‘쿠즈네츠 순환’을 도출해냈다. 경제학을 통해 사회 구조의 변화상을 읽는 방법을 제시한 쿠즈네츠는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쿠즈네츠 순환 말고도 그는 오늘날 경제학 교과서 곳곳에 등장한다. 역시 그의 이름을 딴 ‘쿠즈네츠 곡선’도 그중 하나다. 쿠즈네츠 곡선은 선진국에서 경제 발전 단계에 따라 소득 격차의 정도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추적한 이론이다. 경제 성장 초기엔 어느 나라나 소득 격차가 커진다. 그러다가 일정 수준을 넘어 경제가 성장하면 점차 소득 불평등이 개선된다는 것이다. 이를 가로축을 경제 성장 정도, 세로축을 소득 불평등 정도의 그래프로 나타내면 알파벳 U자를 뒤집은 모양새가 된다.쿠즈네츠 곡선은 훗날 여러 학자의 실증 검증을 통해 이론화됐다. 특히 세계은행의 경제학자 알루왈리아가 62개국의 경제 통계를 근거로 다중 회귀 분석을 통해 쿠즈네츠 곡선을 검증한 게 유명하다. 알루왈리아의 검증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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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강왕 카네기는 쌓은 부를 인류 발전에 썼지만…

    로마 귀족의 자발적 기부는 상류층의 의무인 동시에 곧 명예였다. 공공시설 건축이나 복구를 위해 귀족들이 개인 재산을 내놓는 일도 많았다. 빈곤 퇴치나 다음 세대를 육성하기 위한 기부 도 끊이지 않았다. 로마에서 기부한다는 것은 곧 높은 지위와 명예를 상징했다. 그래서 기부는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뤄졌으며, 로마의 화려한 역사를 세우는 초석이 되었다철강사업으로 부를 쌓은 카네기로마의 기부 전통은 지금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세계 최강국의 위치에 있는 미국 역시 기부문화가 잘 형성돼 있다. 신대륙에 나라를 건설한 미국은 귀족 대신 기업가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미국의 기부문화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람으로 ‘철강왕’으로 불리는 앤드루 카네기를 꼽을 수 있다. 미국 국민들에게 ‘위대한 기부자’로 불리는 앤드루 카네기는 현재 미국에 존재하는 5만6000여 개 자선재단의 시발점이자 미국의 찬란한 기부문화를 꽃피우게 한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철강회사를 청산해 마련한 5억달러로 자선활동을 시작했으며, 죽을 때까지 자선활동을 멈추지 않았다.어린 시절 카네기는 몹시 가난했다. 1835년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수직공의 아들로 태어난 카네기는 1848년에 가족과 미국으로 건너와 살기 시작했다. 13세 때부터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일했고, 1856년에 철도 침대차 사업에 투자해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재산을 모았다. 철도회사를 거쳐 철강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앤드루 카네기는 막대한 부와 더불어 사회적 명예와 존경까지 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자수성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자선이 잘못 사용된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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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초지를 아무나 사용하면 황무지가 되는 법이죠"

    맬서스 이후로 많은 학자들이 인구 과다를 우려했다. 그런 전통을 이어받은 미국 생물학 교수 인 개릿 하딘은 “지하자원, 초원, 호수처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유지를 오 직 시장의 기능에만 맡겨두면 자원이 낭비돼 금방 고갈될 위험이 있다”며 이른바 ‘공유지의 비 극’을 경고했다.생물학자 개릿 하딘의 경고이를 방지하기 위해 공유지를 소중히 사용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공익광고나 공유지에 붙여놓는 표지 등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효과가 탁월하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공유지의 비극을 막는 확실한 방법은 공유지를 ‘내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요금을 부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요금제가 없을 때는 필요 없는 사람도 찾아와 자원을 낭비했다면 요금제를 도입한 이후에는 개개인이 ‘요금을 내고 쓸 만큼 필요한 자원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는 자원이 불필요한 사람이 공유지에 진입하는 것을 막아 공유지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주인이 없으면 공유재가 훼손꽃게잡이 해역을 생각해 보자. 누구나 꽃게잡이 해역에 들어가 원하는 만큼 꽃게를 잡는다면 너도나도 꽃게를 더 많이 잡으려 할 것이다. 남이 꽃게를 잡아가기 전에 먼저 가서 최대한 많은 꽃게를 가져가는 사람이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란 시기를 피하거나 수산 자원을 보호하려는 노력보다 어린 게까지 잡으며 꽃게잡이에 열을 올리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꽃게의 개체 수가 줄어들어 수산 자원이 파괴된다. 심한 경우에는 두 번 다시 꽃게를 잡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공유재 사용자들은 최대한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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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삼값 후려친 중국인에게 홍삼 태우며 맞서 성공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상인을 이야기할 때 누구보다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바로 ‘임상옥’이다. 임상옥에게는 ‘거상(巨商)’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다. 임상옥은 중국으로 향하는 사 신을 따라 연경(현재 중국의 북경)으로 오고갔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웃돈을 얹어주고 간신히 사신 행렬에 낄 수 있었는데, 사신들의 짐을 대신 짊어주기도 하고 잡일도 해 주어야 했 다. 물론 경비도 조달해주어야 했다.조선의 거상조선은 상인들이 활동하기에 최악의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웬만한 품목은 모두 거래가 금지돼 있는 데다 다른 나라와의 무역도 대부분 불법이었다. 다시 말해 중국에 물품을 내다파는 것은 물론 중국에서 물품을 구입해 들여오는 일 역시 대부분 불법이었다. 할 수 없이 상인들은 사신 행렬에 끼어 밀수를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임상옥이었다.조선의 홍삼은 워낙 품질과 효능이 좋아서 중국에서 인기가 높았다. 중국 사람들은 기꺼이 비싼 값을 치르고 샀다. 반대로 조선의 왕족이나 양반은 중국의 비단, 모피, 가구, 책, 도자기 등을 좋아했다. 따라서 상인들에게 중국과의 거래는 아주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임상옥의 ‘신의 한 수’중국과의 홍삼 거래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가격이었다. 중국 상인들은 조선 상인들이 가져온 홍삼을 아주 싼 가격에 사들였다. 그들은 조선 상인들의 홍삼 거래가 대부분 불법이며, 홍삼을 힘들게 들고 온 만큼 반드시 팔고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홍삼을 낮은 가격에 매입해 상당한 이익을 취하곤 했다. 이러한 중국 상인들에게 반기를 든 사람이 임상옥이다. 임상옥은 홍삼 거래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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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이 원하지 않는 맹목적인 '스펙'은 도움 안 돼요

    야구에는 ‘무관심 도루’라는 흥미로운 상황이 있다. 주자가 도루를 하는데 상대 팀 투수나 포수 가 견제하지 않는 것이다. 말 그대로 도루에 무관심한 상황인데, 대개 양 팀 간 점수 차가 많이 벌어진 경기 후반부에 일어난다. 도루를 막아 봐야 경기의 향방을 바꿀 수 없기에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는 도루는 상대 팀을 배려하지 않고 선수가 자기 기록만 관리한 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비신사적인 행위로 보기도 한다.승리 기여도 큰 안타가 중요‘무관심 도루’는 상대 팀은 물론 심판에게조차 냉대받는다. 경기 기록원이 무관심 도루로 판정하면 도루에 성공해도 해당 선수의 도루 기록에 가산되지 않는다.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타자에게는 타율, 홈런, 타점이 중요한 기록이며 투수에게는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리 횟수 등이 중요한 기록이다. 이런 기록을 야구계에서는 흔히 스탯이라고 부른다. ‘statistics’의 약자로 통계 자료를 뜻한다. 시즌이 끝난 뒤 각종 시상식에서 개인상을 노리거나 다음 시즌 구단과의 연봉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려면 선수들로선 스탯이 중요하다.신입사원 자질 평가는?‘스탯을 위한 스탯’도 있다. 안타를 치면 올라가는 타율을 생각해 보자. 한두 점 차로 아슬아슬하게 승부가 나기 직전의 상황에서 치는 안타와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 이미 승패가 갈린 상황에서 치는 안타의 가치가 같을 수 있을까? 후자는 영양가 없는 안타일 것이다.타율은 높지만 영양가 없는 안타가 많은 선수는 타율에 비해 팬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타율은 다소 낮지만 승부처에서 강한 선수가 팀과 팬에게는 더 나은 선수일 수 있다. 예컨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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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가는 자 흥하리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 칸은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가는 자 흥하리 라”라는 멋진 유언을 남겼다. 성을 쌓지 말라는 게 정확히 칭기즈 칸의 말인지에 대해서는 논란 이 있다. 당시 몽골은 문자가 없었기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 이게 정확 히 칸의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이게 칸의 말이라고 두고두고 회자되는 데는 다 이유 가 있을 것이다.“성을 쌓지 말라”원나라의 역대 황제들은 칭기즈 칸의 이 유언을 충실히 따랐고 큰 성공을 이루었다. 다만 성을 쌓고 지키며 농사를 지어 살아가는 한족 문화에 젖지 않으려는 일련의 조치가 도를 지나쳐 화를 부르기도 했다. 원나라는 몽골인들과 한족을 구분하고자 몽골인, 색목인, 화북인, 남송인 순으로 계급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저항한 남송 사람들을 천시했다.고급 관료는 몽골인 아니면 색목인뿐이었고, 화북인이나 남송인은 재주가 아주 뛰어나면 일부 특채되었을 뿐이었다. 이런 차별적인 통치가 결국 반발을 불렀고 제국의 수명이 백 년을 넘기지 못했다.칭기즈 칸의 유언을 충실히 지켰던 후예들도 실은 칸이 남긴 정신의 껍데기만 따랐을 뿐이다. 길을 만드는 건 밖으로 열린 세계로 나아가고자 함인데 원나라의 황제들은 길을 추구하면서도 자신들과 한족들을 차별하는 닫힌 세계관 속에 살았다.길을 닦았던 로마로마제국은 새로 정복하는 곳에 도로를 먼저 만들었다. 이게 그 유명한 로마의 가도다. 로마인들은 “전쟁이란 병참으로 이기는 것”이라고 자신했을 만큼 수송과 보급을 중시했다. 그렇기에 도로 건설은 정복지의 안정적인 방어를 위해서도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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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최초의 주식회사죠

    14세기, 유럽 사람들은 베니스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지은 ?동방견문록?을 읽고 깜짝 놀랐다. 마르코 폴로가 묘사한 원나라는 고도로 발달된 선진 문명국이었다. 당시 유럽 사회와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월등한 중국의 생활문화 수준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미지의 동방세계에 대한 동경에 휩싸였다.독특한 투자유치와 중국의 몰락그러나 유럽 사람에게 경이와 선망의 대상이던 중국의 위상은 180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유럽이 18세기 중반부터 폭발적인 경제성장과 근대적 변혁을 이루었다면, 중국은 전통적인 경제체제에 머물러 있느라 기술혁신과 산업화에서 뒤처졌다. 유럽과 중국의 서로 다른 경제시스템은 결국 번영과 몰락이라는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두 세계의 결정적인 차이는 기업경제에서 찾을 수 있다. 유럽은 기업이라는 조직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부와 번영을 이뤘다. 반면 중국은 관료제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민간의 상업성을 억제하였고 결국 유럽에 추월당했다.16세기는 유럽 해상무역의 중심지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가며 무역 범위와 규모가 비약적으로 확대된 시기다. 특히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조선술과 항해술의 발달에 힘입어 신항로 개척과 신대륙 발견이라는 값진 성과를 거두었다. 무역 상인들은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향신료와 차 등 기호품을 취해서 유럽지역에 되팔며 이득을 얻었고, 라틴아메리카에서 대량의 은을 조달해 부를 이뤘다.17세기에 접어들며 포르투갈은 에스파냐에 밀리며 동아시아 무역 지배권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한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동아시아 무역에 진출한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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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원 고갈 없다는 사이먼, 엘릭과 내기에서 이겼죠… "과학기술 발달로 기존 자원은 새 자원으로 대체돼요"

    1980년 미국 경제학자 줄리언 사이먼(근본자원 저자)은 자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단의 환경주의자들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자원이 고갈된다면 앞으로 천연자원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를 테니 가격 향방을 놓고 내기를 하자고 한 것이다. 당시엔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내놓는 등 암울한 미래 인식이 세간에 퍼져 있었다자원 가격이 오른다?낙관적인 경제학자이자 회의적 환경주의자인 사이먼은 자원이 고갈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천연자원 가격도 떨어진다는 쪽에 걸었다. 자신만만했던 그는 내기의 대상 품목도 상대가 마음대로 고를 수 있도록 배려했다.당시 미국 스탠퍼드대 환경학 교수이던 폴 엘릭이 사이먼의 내기를 받아들였다. 엘릭은 『인구폭탄』이란 책을 썼는데 책의 이름처럼 비관적인 미래 전망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보기에 천연자원 값이 내려갈 리 없었다.엘릭은 구리, 니켈, 주석, 크롬, 텅스텐 다섯 가지 자원을 내기 품목으로 골랐다. 두 사람은 각각의 품목에 200달러씩 걸었다. 내기의 기간은 10년이었다. 10년이 지난 1990년 일반의 예상과는 다르게 내기에서 이긴 쪽은 엘릭이 아니라 사이먼이었다. 크롬은 5% 하락하고 주석은 74%나 하락하는 등 다섯 가지 천연자원의 값은 평균 60% 가까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엘릭은 내기 당시의 기준 가격에서 10년간 내려간 만큼 사이먼에게 다섯 품목 가격의 차액에 해당하는 576달러를 지급해야 했다.이처럼 자원 고갈에 대한 우려가 현실에서 설명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자원의 유한성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새로운 과학기술로 인해 대체물질이 나오고 자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