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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기타

    미국 GM의 위기와 노사 화합

    GM은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업체다. 포드, 크라이슬러와 함께 한때 미국 자동차 ‘빅3’를 형성하기도 했다. 대우자동차를 인수해 우리에게는 ‘한국GM’으로 친숙하다. GM의 출발은 거의 한 세기 전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利器)가 시작된 역사와 함께한다. GM의 역사가 곧 자동차의 역사인 것이다. ‘GM에 좋은 건 미국에도 좋다’GM, 즉 ‘General Motors’란 이름이 붙은 유래도 재미있다. 20세기 초 미국은 여러 자동차 회사가 난립하는 중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컨베이어 벨트로 무장한 포디즘의 포드가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 포드에 맞서 여러 자동차 회사가 연합한 회사가 바로 GM이다.포드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긴 GM은 1950년대부터 미국을 넘어 세계 자동차 시장을 쥐락펴락했다. “GM에 좋은 건 미국에도 좋은 것”이란 말도 이때 나왔다. 발언 당사자는 GM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미국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찰스 윌슨이다. 윌슨은 장관에 지명된 뒤 의회 인사청문회에서 “GM과 미국 정부 간에 이해가 충돌하면 어찌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는 미국 정부의 이익에 맞는 결정을 내리겠다고 답하면서도 ‘GM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GM의 이익이 곧 미국의 이익이라는 것을 확신한 것이다. 이 사건은 GM이 미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했다.견고하게 보였던 GM도 흥망성쇠의 운명까지 피할 순 없었다. 오랜 매출 부진과 재무 구조 악화에 시달리던 GM은 2000년대 초 사브, 새턴, 폰티악 등 중복 브랜드를 정리하는 등 재기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2009년 서

  • 경제 기타

    노동의 사회적 의미

    로빈슨 크루소는 1719년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 『로빈슨 크루소』 속 주인공이다. 로빈슨은 남미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중개무역을 하는 잘나가던 국제 상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폭풍우에 표류해 망망대해의 한 무인도에서 27년간이나 홀로 살게 된 것이다. 무인도에서 사는 동안 로빈슨은 혼자서 집도 짓고 작물도 재배하고 가축도 기르고 카누도 만드는 등 모든 일을 혼자서 해냈다. 농기구, 옷, 그릇 같은 생필품도 모두 스스로 만들어 썼다.‘1인 경제 모델’로 자주 거론그래서 로빈슨은 비록 소설 속 가상의 인물이지만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낸 인물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반세기가량 홀로 고독을 안고 지냈지만 소설 속에서 외로움을 호소하는 장면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런 로빈슨의 표류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작가 대니얼 디포는 어느 스코틀랜드 선원이 4년간 칠레 해안의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남은 생존담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고 한다. 오늘날 칠레 정부는 이 섬의 이름을 ‘로빈슨 크루소 섬’으로 바꾸고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로빈슨은 퍽 인기 있는 인물이다. 그가 전형적인 1인 경제 모델이기 때문이다. 로빈슨은 무인도에서 1인 생산, 1인 소비를 실행하는 가장 단순화된 경제를 만들었다. 그래서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가 난무하는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들을 단순화해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인 사례다. 경제학 교과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생산가능곡선이나 비교우위론을 설명할 때 이따금 로빈슨과 그의 흑인 친구 프라이데이가 등장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로빈슨은 혼자서도 잘살았다지만, 본디 인간은

  • 경제 기타

    평등주의 정책의 함정

    경제가 발전하면서 절대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소득의 상대적 격차는 커졌다. 절대 빈곤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고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누구는 상대적으 부자고 누구는 상대적으로 가난하다고 느낀다. 상대적 빈곤감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논란을 일으켜왔다.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을 해결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상대적 격차를 정부가 나서서 해소하려는 평등주의 정책은 복지병과 사회 혼란을 불렀다.상대적 격차와 복지 정책한 사회에서 누구나 다 평등한 부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에게 어느 대학 교수가 이런 제안을 했다. 수강생 전원이 수업 평가를 평균 점수로 똑같이 받으면 어떻겠냐고.학생들은 모두 교수의 제안에 동의하였고 그 학기 수업이 진행되었다. 얼마 후 첫 번째 시험을 보았는데, 전체 평균이 B학점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첫 시험 점수로 B를 받았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학생들은 불만을 토로했고 놀기만 했던 학생들은 좋아했다. 그리고 얼마 후 두 번째 시험을 쳤다. 공부를 안 하던 학생들은 계속 하지 않았고 전에는 열심히 하던 학생들도 이제는 무임승차를 할 생각으로 시험 공부를 하지 않았다. 결국 전체 평균이 D학점이 나왔고 모든 학생은 이 점수를 받았다.아무도 공부 안 해 전체가 F학점이번에는 모든 학생이 학점에 대해 불평했지만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학생은 없었다. 그 결과 다음 세 번째 시험은 모두 F를 받았으며 그 후 학기 말까지 모든 시험에서 F학점을 받게 되었다. 학생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기까지 했지만 아무도 공부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결국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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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쇄국정책

    『하멜 표류기』는 헨드릭 하멜이라는 네덜란드 한 선원이 제주도에 난파해 13년간 조선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원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대만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고 일본 나가사키는 일본이 쇄국정책을 쓸 때에도 네덜란드와의 교역으로 유명했던 도시다.하멜이 네덜란드 선단에서 맡은 역할은 서기로, 항해 중 겪은 모든 일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글을 알고 기록을 남기는 데 익숙했기에 다른 선원과 달리 귀국한 뒤 표류기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더구나 조선에 대해 글을 쓴 목적은 서양 사회에 조선을 알리는 차원이 아니라 조선에 억류된 기간 못 받은 임금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청구하기 위한 일종의 자료 성격에 가까웠다고 한다. 뼛속까지 장사꾼 기질을 타고났다는 네덜란드인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제주도는 네덜란드의 지원을 받아 하멜 일행이 표류해온 용머리 해안 일대에 큰 범선 형태의 건물을 지어 기념하고 있다.세계와 격리돼 지낸 조선하멜의 기록에 묘사된 당시 조선의 상황은 지금 우리가 상상한 이상으로 세계와 격리돼 지내는 나라였다. 큰 키의 벽안의 남자들이 대거 상륙했으니 놀랄 법한데도 하멜 일행이 어디에서 왔는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중국의 남쪽 남만에서 왔다고 치부했을 뿐이었다.남만은 특정 지역을 의미하기보단 중국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의 이민족을 각각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 부르는 의례적 표현이었으니 하멜 일행이 그저 중국인이 아니라는 의미 이상은 없었다. 하멜 일행은 그렇게 남만 출신이 돼 조선에서 모두 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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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와 고무줄 잣대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리스 아티카의 강도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붙 잡아 자기 집으로 끌고 간 다음 철로 만든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남는 부분 을 잘라내 죽였다. 반대로 침대보다 키가 작은 사람은 침대 길이에 맞게 억지로 키를 늘려 죽였 다. 심지어 침대와 키가 딱 맞는 사람조차 죽어야 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는 길이를 조 절하는 장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침대에 오르면 살아날 수 없었다.그리스 신화의 강도물론 침대와 키가 같으면 살 수 있다는 조건이 있지만, 침대 길이는 프로크루스테스 마음대로다. 따라서 세상 그 누구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제멋대로 기준에 맞출 수는 없었다.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뚜렷한 기준이 없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기 기준에 억지로 맞추려고 하는 것을 뜻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함께 비판의 대상이 되는 주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부다. 정부가 막강한 정치권력을 앞세워 자의적인 기준, 즉 규제를 들이댈 때 시장은 혼란에 빠진다. 정치 실패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부의 막무가내 규제를 제지하고 명확한 기준에 따라 시장의 자율성을 보호하고 성장을 이끌 수 있을까.그 해법은 자유와 시장원리를 지키는 법치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11조 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돼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자의적 기준이 많으면?법은 행동의 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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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 경제는 왜 망했나

    “나는 똑같은 민중을 보았다. 그러나 같은 소련 민중인데 내가 받은 인상은 완전히 달랐다. 그때의 민중은 오히려 제정시대 러시아 민중과 어딘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앙드레 지드가 한 말이다. 지드는 1936년에 절친한 문우인 작가 막심 고리키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소련으로 갔다가 상상과 다른 소련의 실상에 경악하고 말았다.“평등한 삶은 없었다”“어느 집이나 모두 똑같이 초라한 가구들이 놓여 있었고, 스탈린의 초상이 걸려 있었으며,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주 조그만 물건조차 없었고 사소한 기념품도 없었으니 각자의 주택은 얼마든지 맞바꿀 수 있을 것이다.”지드는 숨막히리만치 획일적으로 통제된 소련 사회의 모습에 질겁했다. 적어도 소련은 그가 생각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가 아니었고, 민중의 삶도 예전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그저 우두머리만 바뀌었을 뿐이지, 사회주의가 외치는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삶은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국가가 통제하는 경제는 망한다지드는 소련의 부자연스럽고도 인위적 평등에 몹시 실망했다. 직접 소련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열렬한 사회주의 지지자였던 터라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지드는 “인간성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인간을 외부적인 힘으로 단순화하거나 획일화 또는 축소화하려고 시도한다면 그 일은 언제나 파괴적이고 처참한 희극이 될 것이다”라며 소련, 아니 사회주의와의 영원한 결별을 선언했다.1920∼1930년대 유럽은 지드뿐만 아니라 수많은 지성인이 사회주의에 매혹돼 있었다. 그들은 사회주의가 노동자 스스로 자본가의 착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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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집 주인은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좋은 빵 만들죠"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국부론』에서 시장경제의 원리 ‘보이지 않는 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의 돈벌이에 대한 관심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박애심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만을 그들에게 이야기할 뿐이다.”애덤 스미스가 본 ‘보이지 않는 손’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 찾고자 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타고난 이기심이다. 애덤 스미스는 모든 사람은 경제 활동을 할 때,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게 ‘이기심’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이기심이란 ‘자신만 살겠다고 다른 사람을 짓밟거나 해치는 몹쓸 심보’가 아니다. 자신을 위하는 마음, 다시 말해 지금보다 더 잘살고 싶어하는 무한한 욕망을 뜻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만족하고 안주하기보다는 더 나은 삶, 더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기를 원하는, 즉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이 곧 이기심이다. 경제 활동을 할 때 이기심은 인간을 더욱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이끌어준다. 강한 동기 부여를 심어주는 셈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이익을 추구하고 성취해나갈 때 더욱더 열심히, 꾸준히, 성실히 노력하면서 살게 되기 때문이다.이기심이 경제 활동을 원활히 한다이를테면 어떤 빵집 주인이 있다. 빵집 주인은 돈을 많이 벌어서 큰 집과 값비싼 가구, 멋진 옷을 사고 싶어 한다. 빵집 주인이 그것들을 사려면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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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소말리아 해적과 정부

    아프리카 해안에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해적들이 오늘날에도 기승을 부리며 외국 선박들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소말리아 인근의 아덴만을 비롯한 동아프리카 해역은 해적이 자주 출몰 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해상 교통의 요충지인데도 해당 국가들의 해안 치안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말리아는 대표적인 치안 부재 국가로, 동아프리카 해적 가운데 소말 리아 해적들이 극렬한 활동을 부리는 이유가 되고 있다.먹고 살게 없어 해적 됐다소말리아는 치안력뿐 아니라 오랜 내전으로 인해 경제도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이로 인해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실업률도 극에 달하면서 소말리아 국민은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게다가 가뭄까지 겹쳐 농업기반도 무너지고, 어선들의 싹쓸이 조업으로 어장마저 황폐화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생계를 해결해야 했던 소말리아 국민들이 해적질에 나선 된 것이다.그런데 해적들의 수입이 생각보다 쏠쏠해지면서 군벌과 외국의 사업가들까지 해적 활동에 적극 가담하게 됐다. 이에 따라 점차 전문성을 갖추게 된 해적들은 선박 승선이나 납치, 교전은 물론 인질 폭행과 살해 등 대담하고 흉포한 형태로 그 활동을 넓혀나가게 됐다. 한동안 주요 해운국의 해적 소탕작전으로 동아프리카 해적 활동이 감소하는 추세였다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소말리아는 무정부 상태소말리아 같은 무정부 사회나 무법 사회에서는 국민의 안전과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약탈과 폭력이 만연할 수밖에 없고, 분명한 도적임에도 불구하고 영웅으로 칭송받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안전과 권리를 정당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