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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기타

    정화의 해외원정

    대항해 시대 바닷길을 통한 해외 개척은 흔히 유럽의 전유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서 쪽 끝자락에 있어 비단길은커녕 지중해 무역에서 소외돼 있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 새로운 바닷길 개척에 나섰기 때문이다. 바르톨로메우 디아스의 아프리카 희망봉 발견,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 마젤란의 세계 일주가 그것이다.일곱 차례 대원정 떠난 정화하지만 이는 완전한 사실은 아니다. 동양에서도 바다를 통한 해외 원정에 나선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명나라 대도독 정화의 원정이었다. 정화는 영락제의 명을 받아 1405년부터 1431년까지 총 일곱 차례에 걸쳐 대원정을 떠난 것으로 유명하다. 서양 방문 해상사절단의 총사령관으로서 그는 수십 척의 배에 수만 명의 인원을 거느리고 원정에 나섰다. 그의 선단은 동남아시아, 인도, 페르시아만,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아프리카 동부 해안까지 나아갔다. 이때 각국의 외교사절단을 중국으로 데려와 경제, 문화적 교류를 촉진했다고 한다. 정화의 원정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탐험보다 70여 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정화의 원정에서 사용된 배도 콜럼버스의 것보다 무려 30배나 큰 것이었다고 한다.하지만 정화의 원정은 콜럼버스에 비해 거의 아무런 역사적 반향을 남기지 못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정화의 원정은 중화사상과 명나라 황제의 위신을 세계만방에 떨치기 위해 기획된 고도의 정치적 행사였던 것이다. 정화의 원정대는 서유럽의 탐험가들처럼 이윤을 목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공무원 정화·사업가 콜럼버스정화가 수행한 교역은 국가 주도의 조공 무역이 대부분이어서 원정 참여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먼 곳으로 나아갈 동

  • 경제 기타

    북한의 발전전략

    자본주의 서독이 공산주의 동독을 흡수해 통일 독일이 된 것은 1990년 10월이다. 통일 당시 서독은 통일 비용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독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를 유지할 만큼 재정건전성이 우수했고, 유럽 국가들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통일 비용으로 사용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서독 국민이 실질적으로 부담해야 할 통일 비용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다.통일 독일의 비용과 효과당시 서독의 총리였던 헬무트 콜은 세금 증세가 없으리라고 호언장담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은 안일한 생각이었다. 막상 통일한 다음 통일 비용 부담은 서독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솟았다.우리나라 역시 통일을 하면 서독과 동독의 전철을 밟게 될까봐 염려하는 국민이 많다. 동독은 그나마 공산권 내에서 상대적으로 우량 국가였지만 북한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이므로 우리가 통일했을 때 받는 경제적 충격은 서독의 그것과 비교할 수도 없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따라서 막대한 통일 비용 부담으로 국가 경제가 흔들릴 바에야 차라리 통일을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과연 우리는 통일 후 맞닥뜨리게 될 경제 폭탄을 감안하고도 굳이 북한과 통일해야만 하는가? 이대로 통일하지 않고 분단된 채 독립 국가로 각각 발전하는 편이 오히려 우리 경제에 이로운 것은 아닌가?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말이 있다. 어느 정도 방해물이 있더라도 해야 할 일은 마땅히 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소한 부작용이 생길지 몰라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우리가 통일해 발전시켜야우리가 통일을 대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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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이유

    산업혁명은 ‘혁명’이라는 표현 그대로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실로 엄청난 변화 를 불러일으켰다. 산업혁명기인 1780~1860년 동안 영국의 인구는 750만에서 2313만 명으로 무려 세 배 이상 늘어났고, 부의 증가 속도는 연간 1%로 괄목할 만한 수준을 자 랑했다.1780~1860년이라는 기간이렇듯 엄청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다양한 요인이 제기되었는데, 그중 기술혁신이 가장 커다란 요인으로 인정되고 있다. 기술 혁신을 통해 종래의 가내수공업을 공장제 기계공업 시스템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노동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늘려 대규모 생산을 가능하게 한 것이 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에서 기술 혁신을 일으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까닭도 함께 밝혀낼 수 있다.일반적으로 기술 혁신이라고 하면 과학의 발전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18세기 전후의 과학 정책을 비교하면 영국은 과학연구기관에 대해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반면 프랑스는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자금을 투입할 만큼 과학 연구를 적극 지원했다. 그런데도 영국에서 기술혁신이 먼저 일어났던 데에는, 과학의 육성과는 별도로 뭔가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기술보다 제도마련이 중요사실 산업혁명기의 과학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해 기술 발전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오히려 19세기에는 영국에서도 기술이 먼저 발전하고, 이에 자극을 받은 과학자들이 기술공들의 뒤를 좇아 연구를 시작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영국의 기술혁신을 선도한 와트나 트레비식, 스티븐슨 등도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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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센티브제도의 명암

    과거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의 일이다. 당시 영국의 인도 식민지 총독부는 들끓는 코 브라를 제거하기 위해 대책을 강구했다. 고민 끝에, 잡아온 코브라 수에 따라 보상금 을 지급하는 인센티브 정책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이 정책의 효과를 톡톡 히 보는 듯했다. 인도 사람들은 너도나도 보상금을 받기 위해 코브라를 잡으러 다녔 다. 인도 사람들이 앞다투어 코브라를 잡아오는 통에 영국의 인도 식민지 총독부는 코브라를 금세 퇴치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인도에서 있었던 일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도 코브라는 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코브라가 잡혀 들어오는 게 아닌가.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코브라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영국의 인도 식민지 총독부는 원인 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인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보상금을 받고자 집집마다 우리를 만들어 코브라를 사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보상금을 받으려고 사육하는 코브라 수를 지속적으로 불리고 있으니 코브라가 줄어들려야 줄어들 수 없었다.보상금 타려 코브라를 키우더라영국의 인도 식민지 총독부는 이 사실을 알고 코브라 제거 정책을 포기하고, 코브라를 잡아오는 사람에게 더는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그러자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코브라를 사육할 이유가 사라져 버린 인도 사람들이 너도나도 밖에 내다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인도의 코브라 개체 수는 코브라 제거 정책 시행 이전보다 수십 배나 증가해 버렸다. 효과적으로 코브라를 없애려다가 오히려 코브라가 득시글득시글하게 된 셈이다.결과적으로 영국의 인도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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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디킨스와 영국 산업혁명

    찰스 디킨스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언론인이자 소설가다.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 이 개과천선하는, 매년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이 그의 대표작이 다. 『올리버 트위스트』나 『두 도시 이야기』 등 그의 작품들은 많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 고 연극이나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디킨스를 가리켜 유럽 소설의 전성기를 상징하 는 작가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디킨스 눈에 비친 환경디킨스가 살았던 19세기는 영국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산업혁명이 절정에 달했고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시대를 구가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엔 산업혁명 시기 영국 사회를 묘사하는 부분이 자주 나온다. 디킨스는 초기 산업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들, 예컨대 빈부격차나 환경오염으로 고통받는 도시와 사람들을 냉정하고 사실적인 시선으로 묘사했다. 1854년에 발표한 소설 『어려운 시절』에서 디킨스는 ‘코크타운’이라는 소설 속 가상의 도시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코크타운은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어쩌면 붉은색이 아니었을 그 벽돌들은 연기와 재로 붉게 변했는지도 모른다. 도시엔 기계와 높은 굴뚝만이 있었고 거기에서 나오는 연기는 뱀처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뻗어 있었다. 그 도시엔 검은 운하가 흘렀다. 그리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자줏빛으로 염색된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한창 산업화가 진행되는 사회일수록 대개 환경은 깨끗하지 못하다. 공장이 세워지고 건물이 올라가고 여러 공산품이 만들어지면서 소득 수준은 올라간다. 하지만 그 대가로 과거엔 볼 수 없었던 별별 산업 폐기물이 생겨난다. 아직 산업화 초기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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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전과 모험

    농장에서 일하는 두 남자가 있다. 두 남자는 농장일이 지겨웠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농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보스턴으로 가겠어. 보스턴에서 새 출발할 테야.”“난 뉴욕! 뉴욕은 잘사는 도시니까 여기보다 훨씬 살기 좋을 거야.”두 남자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한 명은 보스턴행 기차표, 다른 한 명은 뉴욕행 기차표를 산 다음, 함께 기차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다 두 남자는 우연히 옆 사람 이야기를 듣게 됐다농장에서 일하던 두 남자의 선택“뉴욕 사람들은 인심이 사납기로 소문이 자자하더군. 글쎄, 길을 가르쳐주고도 돈을 받는다지 뭐야. 너무하지 않나? 쯧쯧, 그러고 보면 보스턴 사람들이 참 인정이 많아. 길거리 거지들도 굶지 않게 친절을 베풀어주니 말이야.”그 순간, 두 남자는 생각이 바뀌었다.‘뉴욕이 그렇게 인심 사나운 곳이라고? 안 되겠다. 보스턴으로 가야겠어. 보스턴으로 가면 설령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굶어 죽지는 않겠지.’‘길을 알려주는 일로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와, 정말 뉴욕은 대단한 도시야! 안 되겠다. 뉴욕으로 가야겠어. 뉴욕에 가면 무궁무진한 기회를 접할 수 있을 테니까!’결국 두 남자는 서로 표를 맞바꿨다. 보스턴으로 가려던 남자는 뉴욕으로, 뉴욕으로 가려던 남자는 보스턴으로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났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동냥으로도 살아간 보스턴보스턴으로 간 남자는 금방 보스턴 생활에 적응했다. 비록 일자리를 쉽게 구하지는 못했지만, 보스턴 사람들이 워낙 적선을 잘해준 덕분에 동냥만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다.반면 뉴욕으로 간 남자는 꽤나 고생했다. 무궁무진한 기회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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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베스피에르와 우유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자 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이 말은 로마 시대 부터 전해져 오는 유명한 서양 격언이다. 설령 좋은 의도로 시작했을지라도 그 일의 결 과는 의도와 반대로 나쁠 수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역사상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 가 더 큰 비극을 불러온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특히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 관된 경제에서 근시안적인 ‘선의’는 심각한 폐해를 입히기 일쑤이다.로베스피에르의 좋은 의도18세기 프랑스 혁명 직후에도 선의의 피해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로베스피에르는 “모든 프랑스 아이는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실제로 우유 가격을 내리도록 지시했다. 프랑스 국민을 위해 물가를 안정시키고, 성장기 아이들이 영양이 풍부한 우유를 양껏 먹을 수 있게 하려는 뜻이었다. 로베스피에르의 우유 가격 인하는 순수한 선의에서 나왔고, 그것에 대해서 누구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선의와 정반대로 나타났다.물론 단기적인 효과는 있었다. 공포정치로 악명이 높았던 로베스피에르의 명령을 어길 만큼 간이 큰 우유 상인은 없었고, 우유 가격이 하락하면서 서민 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우유 가격 하락의 효과는 얼마 가지 못했다. 진짜 문제는 우유 가격보다 소고기 가격이 하락하면서 시작됐다. 혹자는 소고기 가격이 내리면 소고기를 싸게 먹을 수 있으니 좋은 게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가격 하락의 주인공은 육우가 아니라 젖소였고,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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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벅스의 진화와 기업의 성장

    세계적인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 1호점은 1971년 미국 시애틀의 파이크플레 이스마켓이라는 지역 시장에 오픈한 아주 작은 아라비카 원두 전문점이었다. 스 타벅스 창립 멤버는 대학 동기이자 커피 애호가인 제럴드 볼드윈, 고든 보커, 지 브 시글이라는 세 친구로, 이들은 1만달러씩 3만달러를 투자하여 ‘스타벅스커 피, 티&스파이스’를 열었다.‘모비딕’과 스타벅스 이름가게 이름은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서 따왔다. 일등항해사 스타벅이 3명이라는 뜻의 스타벅스는 커피와 차와 향신료를 판매한다는 뜻으로 커피, 티 그리고 스파이스가 붙어 스타벅스커피, 티&스파이스가 된 것이다.세 친구가 의기투합하여 스타벅스 1호점을 오픈할 때만 해도 시애틀에는 아라비카 원두 전문점이 없었다. 북미 전체에서도 아라비카 원두를 즐기는 사람이 드문 편이었다. 세 친구는 평소 맛이 부드럽고 향이 좋은 아라비카 원두를 즐긴 데다 직접 아라비카 원두를 구매하거나 우편으로 배송받을 정도로 열성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질 좋은 아라비카 원두의 시장 경쟁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것이 곧 스타벅스 1호점 오픈으로 이어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결과는 누구나 잘 알다시피 대박이었다. 세 친구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고, 스타벅스는 하루가 다르게 매출이 수직 상승했다. 아라비카 원두를 찾는 수요도 그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1972년에는 스타벅스 2호점을 오픈했다. 그 뒤로 스타벅스는 매장을 계속 확장해 나갔다.하워드 슐츠가 인수한 뒤…하지만 여기까지였다면 스타벅스는 일개 원두커피 전문점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스타벅스가 오늘날과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