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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문장을 비트는 '서술어 3종 세트'

    “코로나19로 인한 한국 경제의 충격이 ‘심화되고’ 있다.” “A씨는 이천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해’ 16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남구보건소에서는 희망자에게 코로나19 선별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코로나19 기사에 투영된,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들이다. ‘심화되다’ ‘진행하다’ ‘실시하다’는 서술어로 흔히 쓰인다. 하지만 잘못 쓰면 어색할 때가 많다.‘심화/실시/진행하다’ 등 어색한 표현 많아글쓰기에 왕도는 따로 없다. ‘간결하게, 일상적 언어로 쉽게 쓰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예문에서는 무거운 한자어를 가져다 썼다. 말할 때는 그리 하지 않는데 글로 쓸 때면 무의식적으로 나온다.우선 ‘심화하다(되다)’부터 보자. “반도체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 의존도가 심화된 탓이다.” “××의 ‘갑질’이 점점 심화되는 추세다.” 우리말답게 쓸 때 글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진다. 요령은 어울리는 본래 서술어를 찾아 쓰는 것이다. ‘심화’는 ‘정도가 깊어짐’이다. 그러니 반도체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게 아니라 ‘깊어지는’ 것이다. 의존도 역시 ‘심화된’ 것이라기보다 ‘높아진(또는 커진)’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바꿔 ‘스마트폰 사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식으로 쓰면 글의 리듬이 살아나 더 좋다. 갑질도 ‘심화된다’고 하면 어색하고 ‘심해진다’(정도가 지나치다는 뜻)라고 하면 그만이다.‘진행하다’는 좀 특이한 단어다. “캠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진한 안개'와 '짙은 안개'

    정부 조직에는 국립국어원 외에 우리말을 전문으로 다루는 곳이 또 한 군데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술표준원이 그곳이다. 여기서는 산업계에서 쓰이는 각종 용어를 다룬다. 이른바 ‘산업계의 표준어’인 산업표준(KS)을 정하는 곳이다. 지난해 이곳에서 그동안 써오던 색이름 몇 가지를 바꿨다.‘진하다’는 한자어…고유어로는 ‘짙다’이때 ‘진갈색’ ‘진보라’가 ‘밝은갈색’ ‘밝은보라’로 제시됐다. 색이름이 실제 색깔과 달라 문구류와 디자인업계, 교육계에 혼란을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진갈색’이라고 하면 갈색보다 짙은 색을 떠올리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런데 색칠을 해보면 오히려 ‘밝은 갈색’을 띠었다. 그래서 이를 실제 색깔에 맞게 밝은갈색, 밝은보라로 바로잡았다.고유어 같기도 하고 한자어 같기도 한 이 ‘진-’은 무엇일까? “국물이 참 진하네.” “안개가 진하게 끼었다.” 이런 말을 일상에서 흔히 쓴다. “진갈색, 진노랑, 진빨강” 같은 단어도 자주 듣는다. 이때 ‘진’은 얼핏 보면 토박이말 같다. 하지만 한자어다. ‘津’이 그 정체다. 이 한자는 통상 ‘나루 진’(서울시 노량진, 충남 당진 등에 쓰인 ‘진’이다)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기서는 ‘진액 진’, 즉 엑기스란 뜻이다. 진물, 송진 같은 데 쓰인 ‘진’이 모두 이 의미다.이런 데 쓰인 ‘진’은 의미상 순우리말로 ‘짙다’에 가깝다. 그러니 진갈색, 진보라는 곧 짙은 갈색, 짙은 보라다. 이를 그동안 밝은 갈색, 밝은 보라에 잘못 붙여 써온 것이다. 국물이나 안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회적 거리두기'에 담긴 우리말 속살

    코로나19는 우리말에도 이미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많은 외래어가 새로 유입됐고, 낯선 개념과 그에 따른 용어들도 어느새 우리 곁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 됐다. 그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말과 관련해 평소 간과해온 또는 잊혀가던 문제 몇 가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말의 핵심어인 ‘거리’를 제대로 알고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점에서 그렇다.‘공간적 간격’과 ‘차 다니는 길’ 구별해야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잡혀가는 듯하던 지난 4월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가 열렸다. “4월 말부터 5월 초 황금연휴가 예정돼 있습니다. 그동안 잘 지켜주신 사회적 거리두기의 고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정 총리는 이날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면서 ‘거리’의 발음을 [거:리]라고 장음으로 했다. 그는 요즘 수시로 입에 오르내리는 이 말을 정확하게 발음하는 몇 안 되는 이 중의 하나다. 방송 아나운서를 포함해 한국인의 대부분이 ‘거리’의 장·단음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우선 ‘거리’의 정체부터 알아보자. 한 시간 거리니, 거리가 머니 가까우니 하는 말을 흔히 쓴다. 또 “그 친구와는 왠지 거리가 느껴진다”고도 한다. 이때의 ‘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거리’와 같은 말이다. 이는 공간적·심리적으로 떨어진 간격을 말한다. 이런 걸 누가 모를까? 그런데 이게 ‘비 내리는 명동 거리’라든지, ‘거리의 풍경’이라고 할 때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때의 ‘거리’는 다른 ‘거리’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발생되다'는 잘못…'~일어났다', '~생겼다'가 더 좋죠

    집 근처 족발집은 맛이 좋아 늘 손님이 붐빈다. 어느날 가게 앞에 안내문이 붙었다. 그 문구가 좀 이상하다. ‘품절현상이 자주 발생됩니다.’ 이런 문장은 우리말을 과학적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게 쓴 게 아니다. 그저 한자어에 휩쓸려, 거기에 말을 맞춰 만든 어색한 표현일 뿐이다.‘품절됐다’보다 ‘동났다’가 자연스러워우리말을 비틀어 쓰는 사례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우선 어휘 사용이 자연스럽지 않다. ‘발생하다’는 자동사다. ‘무엇이 발생하다’가 기본형이다. 굳이 ‘-되다’를 쓸 필요없는데 습관적으로 ‘-되다’를 사용한다. ‘사건이 발생했다’ ‘화재가 발생했다’ ‘공사장에서 발생한 소음’ 식으로 쓰는 게 자연스러운 우리 어법이다.‘-되다’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말을 피동으로 만드는 접미사다. 자동사는 주어의 동작을 나타낼 뿐 객체를 필요로 하지 않아 피동형으로 쓸 이유가 없다. 서술어를 고유어로 바꿔보면 이런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건이 터졌다’ ‘화재가 일어났다’ ‘공사장에서 생긴 소음’이라 하는 게 본디의 우리말이다. ‘발생하다’란 말은 ‘터지다, 일어나다, 생기다’ 같은 토박이말을 대체한 한자어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품절현상이 자주 생깁니다’라고 하면 훨씬 자연스럽다.‘품절’도 좋은 말이 아니다. 정부에서 고시한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 자료’(문화체육부, 1997년)를 보면 품절 대신 될 수 있으면 다듬은 말 ‘물건 없음’ ‘없음’을 쓰라고 했다. ‘고쳐진 행정용어 고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차일피일'은 '이날 저날'이란 뜻이에요

    ‘까랭이 나마리 발가숭이 안질뱅이 자마리 짬자리 초리 잠드래비….’ 모두 ‘잠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 우리 땅에는 잠자리를 가리키는 말이 전국에 21개나 있었다. 일제의 우리말 말살 정책에 맞서 우리말 표준을 세움으로써 민족어의 기틀을 마련할 필요가 절실했다. 1936년 조선어학회에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내놓은 것은 그 시작점이었다. 그때 지금의 잠자리가 표준어로 자리잡았다.‘호랑이’는 한자어, ‘범’은 순우리말범과 호랑이의 운명도 이때 갈렸다. 범이 표준어로 채택됐고 호랑이는 비표준어로 밀렸다. 비표준어로 분류되면 이후 말의 세력이 약해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범과 호랑이 관계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사람들이 범보다 호랑이를 더 많이 썼다. 그 결과 1957년 한글학회에서 펴낸 최초의 국어대사전 <조선말 큰사전>에서는 범과 호랑이를 함께 표준어로 올렸다. 물론 사전 풀이는 여전히 ‘범’이 주된 말이었다. 호랑이는 쓰임새에 차이를 둬 ‘범을 특히 사납고 무서운 뜻으로 일컫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지금은 오히려 호랑이를 압도적으로 많이 쓰고 범은 잘 안 쓰는 말이 됐다.범과 호랑이는 그 연원이 다른 말이다. 범은 순우리말이고 호랑이는 한자어다. ‘虎狼이(범 호+이리 랑+이)’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사람들 입에는 호랑이가 더 익숙해 오히려 호랑이가 순우리말, 범이 한자어인 줄 아는 사람이 꽤 있다. 오랜 시일이 지나면서 한자 의식은 희박해지고 거의 토박이말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됐다.“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다”란 말을 한다. 하도 가난해서 근근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단속을 실시합니다'보다 '단속합니다'가 낫죠

    ‘세벌대기단, 굴도리집, 불발기, 오량가구….’ 이들은 겉모양만 우리말일 뿐, 일반인은 아무도 모르는 암호 같은 말일 뿐이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 도중 거론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난해한 공공언어의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이었다.공급자 중심의 말 여전히 많아극소수만 아는 전문용어가 공공언어로 포장돼 쓰이고 있는 현실은 우리말이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언어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주위에서 마주치는 ‘정체불명의 우리말’은 수없이 많다. 몇 개만 살펴봐도 그 실태가 어떤지 금세 확인할 수 있다.‘육생비오톱, 차집관거, 볼라드….’ ‘육생(陸生)’은 뭍에서 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오톱’은 그리스어로 생명을 의미하는 비오스(bios)와 땅을 의미하는 토포스(topos)가 결합해 만들어졌다.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한 곳을 뜻한다. ‘생물서식지’라고 하면 좀 알아보기 쉽다. 하지만 이보다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 또는 ‘동식물이 살고 있어요’ 식으로 나타내는 게 더 친근감 있는 표현법이다.(성제훈 농업진흥청 농업연구관, 한글학회 간 <한글 새소식> 533호)‘차집관거’는 하수나 빗물을 모아 처리장으로 보내기 위해 만든 관(管)이나 통로다. ‘차집(遮集)’이 ‘막고 모으는 것’이고, ‘관거(管渠)’는 ‘관으로 된 물길’을 뜻한다. 평생 한 번 쓰지도 않을 용어로 말을 만든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996년 ‘관거(管渠)’를 관도랑이나 관수로로 쓰도록 다듬었다. 용도에 따라 ‘빗물관길’ ‘하수관길’ 식으로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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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띄어쓰기가 중요한 이유

    한때 수원~광명 고속도로상에 야릇한 이름의 표지판이 등장해 화젯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동시흥분기점’이 그것이다. “동시흥분기점까지 6㎞ 남았다네…. 근데 이 이상한 이름은 뭐지?” 2016년 개통한 이후 운전자들에게 ‘엉뚱한 상상력’을 자극하던 이 명칭은 2017년 말께 ‘동시흥 분기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띄어쓰기로 엉뚱한 상상력 유발을 차단한 것이다.‘열쇠 받는 곳’이라 하면 금세 알아예전에 ‘키불출장소’란 말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쓰인다. 이 말도 사연을 알고 나면 “아하! 그렇구나” 하겠지만 모르고서는 희한한 말일 뿐이다. “키불 출장소? 그런 데도 있나?” 사람들은 낯선 말을 받아들일 때 대개 자신에게 익숙한 단어 단위로 인식한다. 동시흥분기점은 ‘동시 흥분 기점’으로, 키불출장소는 ‘키불 출장소’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 언어 인식체계가 그렇게 구조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소통’에 실패한 사례다.한편으론 우리말 육성과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띄어쓰기의 중요성이고, 다른 하나는 쉬운 말로 쓰기다. 우선 띄어쓰기를 하면 조금 나아진다. ‘동시흥 분기점’이라 하면 아쉬운 대로 의미 전달이 훨씬 잘 된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몸에 익어 알기 쉬운 순우리말로 풀어쓰는 것이다.분기점(分岐點)은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다. 영어 약자 ‘JC(junction)’를 다듬었다. 고속도로와 다른 고속도로를 연결해주는, 고속도로를 갈아타는 교차로를 말한다. 전에 ‘동시흥JC’라고 하던 것을 그나마 우리말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금명간'은 한자어…'이른 시일 내'로 쓰면 쉽죠

    지난 4월 26일 새벽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는 과정에서 ‘빠루’가 등장했다. 곧이어 포털사이트엔 ‘빠루’가 실시간검색(실검)에 올랐다. 이에 앞서 14일 치러진 삼성그룹 대졸공채시험 뒤에도 ‘칠칠하다’ ‘서슴다’ 같은 단어가 화제가 됐다. 신문들은 문제로 나온 낯선 낱말 앞에서 수험생들이 당혹스러워하던 분위기를 전했다.‘빠루-노루발못뽑이’ 둘 다 실패그런 사례는 많다. 지난 3월엔 ‘금명간’이 실검에 떠 주목을 받았다. 경찰에서 한 연예인의 구속 영장을 ‘금명간 신청한다’는 보도가 나온 뒤였다. ‘금명간’이 뭐지? 네티즌에게 이 말이 생소했던 모양이다.우리말을 둘러싼 이런 관심은 두 가지 상반된 화두를 던진다. 하나는 우리말을 대하는 인식이 사회적 화제가 될 만큼 커졌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니, 이런 말을 잘 모르나?’ 하는 안타까움도 묻어난다. 이런 사례는 우리말을 살찌우기 위해 필요한 언어정책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시사한다.이들은 사실 오래전부터 써오던 익숙한 말이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든 지금은 덜 쓰는 말이 됐다. 왜 그렇게 됐을까? 지렛대 원리로 못을 뽑는 도구인 ‘빠루’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영어로는 ‘크로 바(crow-bar)’다. 까마귀 발을 닮았다 해서 그런 말이 생겼다. 이걸 일본에서 뒤의 ‘바’만 따다 ‘바루(バ-ル)’라고 적었는데,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된소리 ‘빠루’가 됐다. 원어에서 멀어져 왜곡된 형태로 자리잡은 것이다.당연히 순화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국립국어원에서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