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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落花流水 (낙화유수)

    ▶한자풀이 落: 떨어질 낙 花: 꽃 화 流: 흐를 유 水: 물 수힘이나 세력이 쇠퇴해 간다는 의미남녀 간의 애틋한 그리움도 비유           - 고변의 시 《방은자불우》하나의 고사성어가 여러 뜻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낙화유수(落花流水)가 그 사례다. 뜻 그대로는 ‘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라는 의미로 가는 봄의 경치를 나타내거나 힘과 세력이 약해져 보잘것없이 쇠해 가는 것을 비유한다. 이는 당나라 시인 고변이 지은 시(詩) 〈방은자불우(訪隱者不遇)〉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유래한다.‘떨어지는 꽃이 강물 위로 흐르는 데서 넓은 세상을 알고(落花流水認天台) 술에 반쯤 취하여 한가하게 읊으며 혼자서 왔다(半醉閑吟獨自來)’늦봄의 풍경을 묘사한 시로 쇠잔영락(衰殘零落)하며 흐르는 세월을 읊고 있지만 쇠락해져 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뜻도 담고 있다. 또한 낙화유수는 떨어지는 꽃에 정(情)이 있으면 물에도 정이 있어 떨어지는 꽃은 물이 흐르는 대로 흐르기를 바라고 물은 떨어지는 꽃을 띄워 흐르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남녀가 서로 그리워함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구곡간장(九曲肝腸)도 아홉 번 구부러진 간과 창자라는 뜻으로 굽굽이 사무친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전전반측(轉轉反側)은 이리저리 뒤척인다는 의미로,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지만 원래는 사모하는 마음에 잠이 들지 못한다는 뜻이다.백구과득(白駒過隙)은 ‘흰 망아지가 문틈으로 지나가는 순간을 본다는 뜻으로,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것 또는 덧없는 인생을 이르는 고사성어로 《장자》 지북유에 나오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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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風樹之歎 (풍수지탄)

    ▶한자풀이 風: 바람 풍 樹: 나무 수 之: 갈 지 歎: 탄식할 탄바람이 그치지 않음을 나무가 탄식함부모가 돌아가셔 효를 할 수 없음          -《한시외전(韓詩外傳)》공자가 슬피 우는 고어(皐魚)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고어가 답했다.“제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습니다. 첫째는 집을 떠났다가 고향에 돌아와 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뜬 것이고, 둘째는 저를 알아줄 군주를 어디서도 만나지 못한 것이며, 셋째는 서로 속마음을 터놓던 친구와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을 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주지를 않습니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시경(詩經)》의 해설서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구절로, 풍수지탄(風樹之歎)은 문구만으로는 ‘바람이 그치지 않음을 나무가 탄식한다’는 뜻이지만 돌아가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의미로 쓰이는 고사성어다.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가 이미 돌아가셔 효양할 길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풍목지비(風木之悲)도 뜻이 같다. 풍수지비(風樹之悲), 풍수지감(風樹之感)으로도 쓴다.“어버이 살아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에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조선 시대 문인으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낸 송강 정철(鄭澈)의 시조는 풍수지탄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세상사에는 때가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효를 할 수 없고, 세월이 너무 지나면 배움도 버겁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라는 말도 있지만 때를 놓치면 후회가 되고 적기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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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肝膽相照 (간담상조)

    ▶한자풀이肝: 간 간  膽: 쓸개 담  相: 서로 상  照: 비칠 조간과 쓸개를 서로에게 내보이다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귐     - 《유종원의 묘비명》당나라 헌종 때의 일이다. 유종원은 유주를 관할하는 자사로 좌천된 뒤 내직으로 복직하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그와 절친인 유우석이 파주지사로 좌천됐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파주 땅은 몹시 궁벽한 변방이라 사람 살 만한 곳이 못 된다. 더구나 팔십이 넘은 노모까지 계시니,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도, 홀로 두고 갈 수도 없는 딱한 처지다. 조정에 상소를 올려 유주지사와 파주지사를 서로 바꿔달라고 간청해야겠다. 이 일로 다시 죄를 물어 내가 죽는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다.”헌종이 유종원의 청원을 받아들여 유우석은 형편이 조금 나은 유주지사로 가게 되었다. 유종원이 죽은 후 당나라의 대표적 문장가이자 사상가 한유(韓愈)가 그 우정을 세태에 빗대 유종원의 묘지명에 새겼다.“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참된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에는 서로 그리워하고 같이 술을 마시며 놀고 즐겁게 웃는데 마치 ‘간담을 내보이는 것처럼 하고(肝膽相照)’ 죽는 한이 있어도 우정만은 변치 말자고 맹세한다. 하지만 털끝만큼의 이해 관계가 생기면 눈을 돌려 모르는 듯한 얼굴을 한다. 더욱이 위험에 빠지면 손을 내밀어 구해주기는커녕 더 깊게 빠뜨리고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세상에 널려 있다.”간담상조는 간과 쓸개를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귀는 것을 이른다.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을 의미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도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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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敎學相長 (교학상장)

    ▶한자풀이敎: 가르칠 교  學: 배울 학  相: 서로 상  長: 성장할 장가르치고 배우면서서로가 성장한다는 뜻   -《예기(禮記)》중국의 오경(五經)은 유교의 대표적 다섯 개 경서로, 공자가 편찬 및 저술에 관계했다고 해 존중되는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예기(禮記)》 《춘추(春秋)》를 가리킨다. 전통적인 중국 정신문화의 바탕을 보여주며 사서(四書: 논어·맹자·대학·중용)와 함께 한국의 사상과 학문에 미친 영향도 크다.《예기(禮記)》의 학기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좋은 안주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 없고, 참된 진리도 배우지 않으면 그 장점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배운 뒤에야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후에야 비로소 어려움을 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스스로 반성하고, 어려움을 알아야 스스로 보강할 수 있다. 그러니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敎學相長).”교학상장(敎學相長)은 배우고 가르치면서 서로가 성장한다는 뜻이다. 가르침에도 배움이 있으니 교만하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우리 속담을 연상시킨다. 학문이 아무리 깊어도 가르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배우는 것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후생가외(後生可畏)도 함의가 비슷하다. 뒤에 오는 자는 젊고 기력이 왕성해 쉬지 않고 배우니 먼저 태어난 사람이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효학반(斅學半)도 교학상장과 뜻이 같다. 효반학은 은(殷)나라 고종(高宗) 때의 명재상 부열(傅說)이 한 말로 남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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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群鷄一鶴 (군계일학)

    ▶한자풀이群: 무리 군  鷄: 닭 계  一: 하나 일  鶴: 학 학닭의 무리 중에 있는 한 마리 학많은 사람 중에 뛰어난 사람          -《진서(晋書)》역사적으로 시대가 혼란스러우면 속세를 떠나 산으로 숨는 선비가 많았다. 중국 위진(魏晉)시대에도 그런 선비들이 있었는데 죽림칠현(竹林七賢)이 대표적이다. 죽림칠현은 위진의 정권교체기에 부패한 권력에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노자 장자의 무위자연 사상에 심취한 일곱 명의 지식인을 일컫는다. 완적(阮籍)·혜강(康)·산도(山濤)·향수(向秀)·유영(劉伶)·완함(阮咸)·왕융(王戎)이 그들이다.그중 혜강은 특히 문학 재능이 뛰어났다. 그는 끝까지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하다가 왕의 미움을 사 죽임을 당했는데, 당시 그에게는 열 살배기 아들 혜소가 있었다. 혜소는 자라면서 아버지를 닮아 갔다. 세상으로 나와 벼슬살이를 하던 산도가 진나라 무제 사마염에게 혜소를 추천했다.“《서경》에 이르기를 ‘아버지의 죄는 아들에게 묻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비 혜강이 처형당했지만 그 일은 아들 혜소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혜소의 재능이 뛰어나니 그를 비서랑에 임명하십시오.” 무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대가 말하는 사람이라면 비서랑으로 되겠소? 더 높은 벼슬에 앉혀야겠소.”혜소가 무제에게 부름을 받아 가던 날, 그를 지켜보던 어떤 사람이 왕융에게 말했다. “어제, 구름처럼 많은 사람 틈에서 혜소를 처음 보았습니다. 의젓하고 늠름한 모습은 마치 학이 닭 무리에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 혜강을 잘 알던 왕융이 말했다. “자네는 혜소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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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結草報恩 (결초보은)

    ▶ 한자풀이結: 맺을 결  草: 풀 초  報: 갚을 보  恩: 은혜 은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죽어서도 은혜를 잊지 않음           - 《춘추좌씨전》춘추시대 진나라(晉)의 대부 위무(魏武)에게는 첩이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병으로 몸져누웠는데, 아들 위과(魏顆)에게 당부했다.“내가 죽으면 저 여자를 다른 사람에게 개가(改嫁)시켜라.”하지만 병이 더 심해져 죽기 직전에는 “내가 죽으면 저 여자를 순장(殉葬)시켜라”고 유언했다. 위과는 아버지가 정신이 있을 때 한 당부가 진심이라고 생각해 서모(庶母)를 개가시켜 순사(殉死)를 면하게 했다.후에 진나라(晉)와 진나라(秦)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위과는 전쟁에 나갔다. 위과가 진(秦)의 두회(杜回)와 싸우다 위태로운 상황에 몰렸는데, 바로 그 급박한 순간에 두회가 풀에 걸려 넘어져 위과는 그를 사로잡아 뜻밖에도 큰 공을 세웠다. 그날 밤, 위과의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말했다.“나는 그대가 출가(出家)시켜 준 여인의 아비요. 그대는 아버님이 제정신일 때의 유언을 받들어 내 딸을 출가시켜 주었소. 그때 이후로 나는 그대에게 보답할 길을 찾았는데 이제야 그 은혜를 갚은 것이오.”첩의 아버지 혼령이 풀을 엮어 두회를 넘어지게 함으로써 딸의 은혜를 갚은 것이다.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얘기로, 결초보은(結草報恩)은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죽어서라도 은혜를 잊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은혜를 입은 마음이 뼈에 깊이 새겨져 잊히지 않는다는 각골난망(刻骨難忘)도 뜻이 같다. 백골난망(白骨難忘) 난망지은(難忘之恩) 난망지택(難忘之澤)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베푼 마음은 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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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麥秀之嘆 (맥수지탄)

    ▶ 한자풀이麥: 보리 맥秀: 빼어날 수之: 어조사 지嘆: 탄식할 탄보리가 무성하게 자란 것을 탄식함나라가 망한 것을 슬퍼한다는 의미      -《사기》중국 은(殷)나라의 임금 주왕(紂王)은 정치는 팽개친 채 술과 여자에 빠져 산 폭군이었다. 당시 주왕에게 극구 간한 충신이 있었는데,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이 그들이었다. 주왕의 서형(庶兄·배 다른 형)이기도 했던 미자는 자신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그러자 태사(太師) 기자와 소사(小師) 비간이 적극 만류했다.“자결로 임금이 바른 정치를 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한낱 헛된 죽음이 될 것이오. 차라리 다른 나라로 피신하시지요.”미자도 그 말이 옳다 싶어 망명을 택했다. 기자 역시 왕족으로 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낙담했다. 주위에서 그에게도 망명을 종용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신하된 자로서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멀리 떠나면 그건 임금의 잘못을 부추길 뿐이오.”그는 거듭 주왕에게 간했고, 결국 왕의 분노를 사 노예가 되었다. 후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함으로써 겨우 풀려나 숨어 살면서 거문고로 시름을 달랬다. 비간은 미자와 기자의 처지와 폭정을 참을 수 없어 연거푸 간했다. 주왕이 말했다.“말하는 것으로 봐서 그대는 성인이로군. 성인의 가슴 속에는 구멍이 일곱 개 있다 하니 진짜인지 확인해 봐야겠군.” 그리고는 가슴을 갈라 죽였다.폭정은 그 끝이 처참한 법. 결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서쪽의 제후들을 규합해 쳐들어갔고, 주왕의 자살로 은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훗날 기자가 은나라의 옛 도성을 지나다 &ls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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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鷄鳴狗盜 (계명구도)

    ▶ 한자풀이鷄: 닭 계    鳴: 울 명    狗: 개 구    盜: 훔칠 도닭의 울음소리와 개 도둑이란 뜻으로하찮은 재주도 쓸모가 있음을 의미    - 《사기(史記》전국시대 귀족들은 저마다 세력을 키우려고 인재를 모았다. 특히 임금에 버금가는 권력과 부(富)를 쥐고 수많은 유세객과 선비를 모아 영향력을 행사한 공자(公子·귀한 집안의 자제) 넷을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라고 부른다. 제(齊)나라 맹상군, 초(楚)나라 춘신군, 위(魏)나라 신릉군, 조(趙)나라 평원군이 그들이다.어느 날, 맹상군 집에 행색이 남루한 사람들이 들어왔다.“그대들은 무슨 재주가 있는가?”맹상군이 묻자 두 사람이 대답했다.“저는 개 흉내를 잘 냅니다.” “저는 닭 울음소리를 잘 냅니다.”다른 식객들이 비웃었지만 맹상군은 둘을 받아들였다. 얼마 후, 맹상군은 왕의 명령으로 진나라에 갔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의 인품에 반해 재상으로 삼으려 했지만 신하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맹상군은 어질지만 제나라 사람입니다. 이참에 그를 아예 없애 버리시지요.”솔깃한 소왕은 맹상군을 옥에 가뒀다. 맹상군은 소왕이 아끼는 후궁에게 사람을 보내 구해달라고 했다. 후궁이 조건을 걸었다. “호백구(여우의 흰 겨드랑이 털로 만든 옷)를 내게 준다면 구해 드리지.” 맹상군은 이미 호백구를 소왕에게 선물로 바친 터였다. 개 흉내를 잘 내던 사내가 나섰다. “제가 다시 가져오겠습니다.”그날 밤, 사내는 개를 흉내 내면서 궁중 창고로 숨어 들어가 호백구를 훔쳐 나왔다. 후궁의 간청으로 풀려난 맹상군이 서둘러 도성을 빠져나오려는데 이른 새벽이라 관문이 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