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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不恥下問 (불치하문)

    ▶한자풀이不 : 아닐 불恥 : 부끄러울 치下 : 아래 하問 : 물을 문아랫사람에게 묻는 게 부끄럽지 않다모르면 누구에게도 물어야 한다는 뜻   -<논어(論語)>자공(子貢)이 스승 공자에게 위(衛)나라 대부인 공문자(孔文子)의 시호(諡號)가 어떻게 해서 ‘문(文)’이 되었는지를 물었다.공자가 답했다. “공문자는 민첩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시호를 문이라 한 것이다(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文也).” 공자의 학문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논어(論語)> 공야장편에 나오는 얘기다.불치하문(不恥下問)은 글자 그대로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지위가 낮거나 못난 사람일지라도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묻는 것을 주저하고 수치스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공자가 관직에 있을 때 종묘(宗廟)에서 제사를 모시는 일이 있었다. 공자는 제사를 지내면서 제물의 위치 등을 두루두루 종묘지기에게 물었다. 집에 돌아온 공자에게 제자들이 물었다.“예(禮)로 말하면 스승님을 따를 사람이 없는데 어찌 종묘지기에게 그리 물으셨는지요.”공자가 답했다. “종묘에서는 그게 예니라.” 공자가 왜 대인(大人)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공자천주(孔子穿珠)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공자가 실에 구슬 꿰는 법을 몰라 바느질하는 아낙네에게 물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공자는 아낙네의 말을 듣고 개미 허리에 실을 맨 뒤 구슬 구멍 반대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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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寸陰是競 (촌음시경)

    ▶ 한자풀이 寸 : 마디 촌陰 : 그늘 음是 : 이 시競 : 다툴 경아주 짧은 시간이라도다투어 귀히 쓰라는 뜻  - 《천자문(千字文)》<천자문(千字文)>은 4언절구의 한시(漢詩)이자 한문 습자의 대표적 교본이다. 전해오는 최초의 <천자문>은 남북조시대 양무제 때 학자 주흥사(周興嗣)가 쓴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서예가 석봉 한호(韓濩)가 쓴 <천자문> 등이 있다. 이 책에 이런 글귀가 있다. “한 자의 벽옥이 보배가 아니요, 한 치의 시간이야말로 보배니, 분초를 다투며 공부하고 수양해야 한다. 이것은 성현에게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은 늘 시간을 아꼈다.”이에 해당하는 한자가 척벽비보 촌음시경(尺璧非寶 寸陰是競)이다. 한 자짜리 구슬이라도 보배가 아니니, 촌각(寸刻)을 다투어 아껴 쓰라는 뜻이다. 세상 최고로 귀한 게 시간이라는 거다. 이 글귀 뒤에는 <진서(晋書)>와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말이 이어진다. “도간이 항상 말하기를, 대우(大禹)는 성인이면서도 촌음(寸陰)을 아꼈으니, 보통사람으로서는 한 푼의 짧은 시간도 마땅히 아껴야 한다. 우임금은 햇빛이 한 치쯤 옮겨가는 것도 아낄 정도였으니 참으로 부지런히 살았다. 해도 돌고 달도 돌아 시간은 사람과 같이 있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성인은 한 자나 되는 보배는 귀히 여기지 않으면서도 한 치의 시간은 중히 여긴다.”촌(寸)은 아주 짧거나 날카롭다는 뜻이다. 짧으면서도 날카롭게 상대의 허를 찌르는 문장을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고 한다.미국 시인 칼 샌드버그는 시간을 동전에 비유한다. “시간은 인생의 동전이다. 시간은 네가 가진 유일한 동전이고, 그 동전을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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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走馬加鞭 (주마가편)

    ▶한자풀이 走 : 달릴 주馬 : 말 마加 : 더할 가鞭 : 채찍 편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잘되는 일을 더 몰아침을 비유   - 《순오지(旬五志)》《순오지(旬五志)》는 조선후기 학자 홍만종이 저술학 잡록(雜錄)이다. 잡록은 소설·가사·제문 등 여러 종류의 글을 모아 수록한 책을 말한다. 《난후잡록(亂後雜錄)》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이자 정치인 류성룡이 임진왜란 후 보고 들을 것을 쓴 글이다. 《순오지》에는 우리나라의 역사·고사(故事)·일화(逸話)·전기(傳記)·가사(歌辭)·속요(俗謠) 등이 두루 수록돼 있다.주마가편(走馬加鞭)은 《순오지》에 나온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한다는 것은 그 말로 인해 더 힘을 내도록 한다는 뜻이다(走馬加鞭 言因其勢而加之力).’ 주마가편은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는 말로, 형편이나 힘이 한창 좋을 때 더욱 힘을 더한다는 의미다. 힘껏 하는 데도 더 잘하라고 격려함을 이르는 뜻으로도 쓰인다.한자성어에는 말(馬)이 포함된 것이 많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은 달리는 말 위에서 산천을 구경한다는 말이다. 일이 바빠서 이것저것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대강 훑어보고 지나치는 것을 비유한다. 주마등(走馬燈)은 안팎 두 겹으로 된 틀의 안쪽에 갖가지 그림을 붙여 그 틀이 돌아가면 안에 켜놓은 등불로 인해 다양한 그림이 종이나 천으로 바른 바깥쪽에 비치게 만든 등이다. 사물이 덧없이 빨리 변해 돌아가는 것을 이른다.마이동풍(馬耳東風)은 ‘말의 귀에 동풍’이란 뜻으로, 남의 비평이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고 흘려버리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사마난추(駟馬難追)는 네 마리 말로도 따라잡지 못한다는 말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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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仁者不憂 (인자불우)

    ▶한자풀이仁 : 어질 인  者 : 사람 자  不 : 아닐 불  憂 : 근심 우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인한 사람은 양심에 꺼릴 게 없다는 뜻 - 《논어(論語)》유가(儒家)와 도가(道家)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유가는 높이 오르라 하고, 도가는 넓게 품으라 한다. 유가는 군자와 소인을 가르지만, 도가는 선을 긋는 건 피아(彼我)만 구별지을 뿐이라고 한다. 《도덕경》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로 시작한다. 도(道)를 도라고 부르면 이미 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모든 것은 변하며 고정된 것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논어》는 학(學)으로 시작된다. 성현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유가 최고의 덕목이다. 두 사상 다 나름의 뜻이 깊다. 상반된다고 서로 어긋난 게 아니다. 뜻이 서로 다를 뿐이다.유가는 인(仁)을 중시한다. 그러다 보니 인이 포함된 한자성어가 많다. 인자불우(仁者不憂)는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진 사람은 도리(道理)에 따라 행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므로 근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지혜로운 사람은 미혹하는 일이 없고, 어진 사람은 근심할 일이나 걱정할 일이 없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할 일이 없다(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공자는 이를 군자의 세 가지 도(道)라고 불렀지만, 자신은 이 가운데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공자가 성인인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이다.인자무적(仁者無敵)은 어진 사람은 널리 사람을 사랑하므로 적이 없다는 말로, 《맹자》에 나온다. 《논어》에 나오는 인자요산(仁者樂山)은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어진 사람은 모든 일을 도의(道義)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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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서양단 (首鼠兩端)

    ▶한자풀이 首 : 머리 수鼠 : 쥐 서兩 : 두 량端 : 끝 단구멍에서 쥐가 목을 내밀까 말까 한다결정을 못하고 망설이는 것을 비유        - 《사기(史記)》전한(前漢) 경제(景帝) 때, 두영(竇)과 전분(田) 두 신하가 서로 왕의 인정을 받으려다 사소한 일로 시비가 벌어졌다. 왕이 시비를 가리게 되었다.경제가 어사대부 한안국에게 그 시비를 묻자 한안국이 대답을 주저했다. “전하, 이번 다툼은 시비를 가리기가 좀 곤란합니다.” 경제는 다시 궁내대신 정에게 시비를 물었지만 그 역시 대답을 피했다. 왕이 진노했다. “그래 가지고서 어찌 궁내대신을 감당하겠소. 일족(一族)을 멸(滅)하든지 해야지.”전분은 왕의 심기를 건드린 게 송구해 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대답을 주저한 한안국을 불러 쏘아보며 말했다. “그대는 구멍에서 머리만 내민 쥐처럼 엿보기만 하고, 시비곡직(是非曲直)이 분명한 일을 어찌 얼버무리는가.”《사기(史記)》에 전해지는 얘기로, 수서양단(首鼠兩端)은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 수서양단은 구멍 속에서 목을 내민 쥐가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는 뜻으로, 결정을 못하고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을 이른다. 어느 쪽으로도 붙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한다는 좌고우면(左顧右眄)도 뜻이 같다. 좌고우면은 위나라 조식이 오질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온 말로, 원래는 ‘좌우를 바라보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의미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뜻이 바뀌었다. 좌고우시(左顧右眄)로도 쓴다.공자의 제자 계문자는 세 번을 생각한 뒤에야 실행했다. 공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두 번이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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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의려 (倚門倚閭)

    ▶한자풀이倚 : 기댈 의門 : 문 문倚 : 기댈 의閭 : 이문려'문에 기대어 기다린다'는 뜻으로자식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 《전국책(戰國策)》춘추시대 왕손가(王孫賈)는 열다섯에 제(齊)나라 민왕을 모시는 신하가 되었다. 왕손가의 어머니는 그가 입조(入朝)해 집에 늦게 돌아올 때면 문 앞에 기대 서서 아들을 기다리곤 했다.연(燕)나라가 제나라의 도성 임치(臨淄)를 급습해 민왕이 피신했다. 왕손가는 이 소식을 듣고 황급히 뒤쫓았으나 왕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꾸짖듯 물었다. “연나라 군대가 쳐들어왔는데, 너는 어찌하여 왕을 보호하지 않느냐?” “저는 왕이 어디 계신지 모르겠습니다.”어머니가 버럭 화를 냈다. “네가 아침에 나가 늦게 돌아올 때면 나는 대문에 기대 네가 돌아오는지 바라보았고, 네가 저녁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마을 문 앞에 기대어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女朝出而晩來 則吾倚門而望 女暮出而不還 則吾倚閭而望). 너는 지금 왕을 섬기는 몸으로 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냐.”어머니 말에 왕손가가 다시 민왕의 행방을 알아보니, 이미 초(楚)나라 장군 요치에게 살해당한 뒤였다. 왕손가는 사람들을 규합해 요치를 주살했다. 전한 시대 유향이 전국 시대 전략가들의 책략을 모은 《전국책》에 나오는 고사다. 참고로 주(周)나라 때 행정구역으로 스물다섯 집을 리(里)라 했는데, 리마다 세운 문 곧 이문(里門)을 려(閭)라고 한다.의문의려(倚門倚閭)는 ‘문대 기대어 기다린다’는 뜻으로, 밖에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간절한 심정을 비유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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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마태수 (三馬太守)

    ▶한자풀이 三 : 석 삼馬 : 말 마太 : 클 태守 : 지킬 수세 마리의 말만 타고 오는 수령재물을 탐하지 않는 청백리를 이름   -조선시대 송흠(宋欽)의 고사송흠(宋欽)은 조선 성종 때 외교문서를 담당한 승문원에서 일하다 연산군의 폭정을 비판해 관직에서 쫓겨났다. 중종반정으로 복직해 홍문관 박사 등의 관직에 올랐다. 특히 그는 1528년 담양부사가 된 뒤 장흥부사, 전주부윤, 전라도 관찰사 등 지방의 외직(外職)에 여러 해 있었다.당시 조선은 지방관이 사용할 수 있는 역마(驛馬)의 수를 관직에 따라 법으로 정해 놓았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부사(府使: 지방 장관직)는 부임이나 전임 시 짐을 운반하는 태마(駄馬) 한 필을 포함해 세 필의 말을 쓰고, 수행원을 위해 네 필의 말을 쓸 수 있었다. 때문에 대다수 지방관은 7~8필의 말을 데리고 떠들썩하게 부임하고 전임했다.하지만 송흠은 늘 세 필의 말만으로 검소하게 행차하고 짐도 단출했다. 지극한 효성과 청렴으로 이름이 높아지면서 백성들은 그를 삼마태수(三馬太守)라고 불렀다. 삼마태수는 ‘세 마리의 말만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을 탐하지 않는 청렴한 관리를 이른다. 맑고 흰 벼슬아치를 이르는 청백리(淸白吏)도 뜻이 같다.《고려사(高麗史)》에도 비슷한 고사가 전해진다. 고려 충렬왕 때 승평부(현재의 순천)의 부사로 있던 최석(崔碩)이 비서랑이 되어 그곳을 떠나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말을 바치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 청했다. 최석이 웃으며 사양했다. “말은 경도(京都)에만 이를 수 있으면 될 것을 골라서 무엇하겠느냐” 하고는 모두 되돌려 보냈다. 마을 사람들이 말을 받지 않자 망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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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張三李四 (장삼이사)

    ▶한자풀이 張 : 베풀 장三 : 석 삼李 : 성씨 이四 : 넉 사장씨의 셋째 아들과 이씨의 넷째 아들이름과 신분이 분명치 않은 평범한 사람  - 《항언록(恒言錄)》장삼이사(張三李四)는 장씨의 셋째 아들과 이씨의 넷째 아들이란 뜻으로 이름이나 신분이 분명하지 못한, 평범한 사람을 이른다.청나라 시대의 속어를 모은 《항언록(恒言錄)》에는 ‘장삼이사(張三李四)라는 말은 갑(甲) 아무개, 을(乙) 아무개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이는 송나라 때부터 전해오는 속어(俗語)다’라는 구절이 있다. 송나라 고승 도언이 쓴 불교 서적 《전등록(傳燈錄)》은 장삼이사를 ‘사람에게 성리(性理)가 있음은 아나, 그 모양이나 이름을 지어 말할 수 없음을 비유한다’고 풀이하고 있다.갑남을녀(甲男乙女)도 갑이라는 남자와 을이라는 여자라는 뜻으로, 신분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을 이른다. 필부필부(匹夫匹婦) 역시 이름 없는 남편과 아내를 이르지만 평범한 사람들을 가리킬 때 흔히 쓴다. 초동급부(樵童汲婦) 또한 땔나무를 하는 아이와 물을 긷는 여자라는 뜻으로, 보통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범부(凡夫)는 평범한 사내를 지칭하지만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절구질하는 사람이란 뜻의 과구중인(科臼中人), 흔하게 나오는 물고기와 조개라는 뜻의 상린범개(常鱗凡介) 역시 평범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뜻은 조금 다르지만 사공견관(司空見慣)은 흔히 보는 물건이라 신기하지 않음을, 가담항설(街談巷說)은 길거리에 떠도는 그저 그런 이야기를 의미한다.누구나 세상에 이름 석 자 새기길 원한다. 대리석에 새겨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이름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