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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29) 스피노자의 범신론

    철학자 스피노자는 법칙이나 관습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모든 예속을 부정적으로 보 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자 했다. 심지어 그는 유대인 전통의 인격신을 부정하고 모든 것이 신이며 신은 곧 자연이라는 범신론을 주장하였다. 이런 이유로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유대 인 사회에서 파문 결정을 받은 뒤, 저주받고 추방되어 가족과 친지들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서신 왕래조차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다.범신론 주장···유대사회에서 파문당해하지만 이런 사건은 오히려 스피노자가 자초한 셈이다. 그는 유대교의 억압 아래 고독한 운명 속에서 철학적 자유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을 표명함으로써 그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고 이를 선택한 것이다. 그는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법의 체계하의 상황에서보다 자신에게만 오직 복종하는 고독의 상태에서 더욱 자유롭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이성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전통적인 관습이나 개념들을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든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이는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 과제이다.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뜻은?스피노자는 “내일 비록 세계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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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데카르트 (하) 이원론

    지난 편에서 살펴본 대로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지금까지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것에 대해 치열하게 의심했으며 이 과정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찾게 됐다. 그런데 데카르트가 이 명제를 찾은 것은 비유로 말하자면 의심이라는 망망대해로부터 자아를 건져냄으로써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어떻게 보면 그가 건져 낸 자아는 의심이라는 바닷속의 외로운 섬과 같은 상황이다.자아 확인 뒤 외부세계 진리 찾아이제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 과정에서 자신이 의심의 바다에 밀어넣었던 다른 지식을 건져내야 하는 철학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 과제는 확실히 존재하는 자아를 대전제로 해서 그로부터 외부 세계의 다른 진리를 연역적으로 도출하는 것이다.데카르트가 자신이 의심한 것들의 존재를 증명해 내는 데 있어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방법적 회의 과정에서 상정한 악마라는 존재였다. 왜냐하면 그 악마는 절대적으로 자명한 수학의 진리마저도 속일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선한 신이 존재한다고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신의 존재를 증명하다신이 존재한다고 증명하는 그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자아의 경험에 입각한 증명이다. 자아 안에 내재해 있는 완전하고 무한한 관념은 유한한 자아에서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신의 관념은 자아 밖에 존재하는 신에게서 온 것이다. 다음으로 신 관념 자체를 분석해 신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즉 신의 관념은 지고하고 완전한 존재를 의미한다. 신의 관념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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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데카르트 (상) 방법적 회의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는 그가 대담하게도 철학의 기초를 새롭게 놓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가 새롭게 확립한 철학의 기초는 바로 ‘나 는 생각하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다. 그렇다면 이 명제는 어떻게 데카르트 철 학의 새로운 기초가 될 수 있었을까?“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진리데카르트는 수학의 정확한 방법을 철학에 도입해 철학을 기하학과 같이 확실하고 명증한 학문으로 확립하고자 했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나는 수학을 특히 좋아했는데 이것은 그 추리의 확실함과 명증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참된 용도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학이 기계적 기술에만 응용되고 있음을 생각하고서 그 기초가 아주 확고하고 견실한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위에 더 높은 건물을 세우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그렇다면 수학을 모델로 해서 새롭게 얻은 철학의 방법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의 것인가? 수학이 확실한 학문인 까닭은 공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는 직선이다’ 같은 명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성이 있는 공리다. 수학은 이런 공리에서 출발해 구성된 체계다. 수학 시간에 도형의 어떤 성질을 나타내는 ‘정리’가 참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증명을 할 때가 있다. 바로 이 증명에서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공리다. 그러나 공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리는 스스로 명백히 참인 것이고 따라서 최초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철학도 기하학처럼 자명한 공리를 발견하고 그 위에 연역적인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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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프란시스 베이컨(하) 우상론

    영국의 철학자 러셀은 17세기 초 거의 모든 중대한 지식의 발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공격하는 것으로 시 작됐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근대 초기 학문 연구에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철학을 설명하는 데 꼭 들어맞는다. 베이컨이 쓴 《신기관》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방법론에 문제를 제기하며 등장한 책이 기 때문이다. 사실 《신기관》이라는 책 제목 자체가 이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기관》이라는 제목은 아 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책인 《기관》에 맞서 새로운 철학적 방법론을 세우겠다는 도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 깨기《신기관》이라는 책은 ‘자연의 해석과 인간의 자연 지배에 관한 잠언’이라는 부제에도 함축돼 있듯이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하면 이 자연을 잘 알 수 있을지 그 방법을 탐구한 책이다. 이 책에서 베이컨은 자연을 알고 지배하는 힘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부수는 작업’과 ‘세우는 작업’을 했다. 그렇다면 베이컨은 무엇을 부수고 무엇을 세우고자 했는가? 베이컨은 ‘우상’ 비유와 ‘개미-거미-꿀벌’의 비유를 통해 이를 각각 설명하고 있는데, 비유는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득력 또한 크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당시 지식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권위를 누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을 비판하는 데 비유만큼 효과적인 방식도 없었으리라.우상들 때문에 왜곡된 이미지 갖는다우선 베이컨은 부숴야 할 대상을 ‘우상’에 비유했다. 우상은 영어로 ‘아이돌(idol)’이다.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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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베이컨의 철학사상(상)

    프랜시스 베이컨이 살던 16~17세기 유럽은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도기였다. 르네상스가 유럽 전역에 확산되어 휴머니즘의 풍토가 조성되었고, 종교 개혁으로 중세 교회의 권위가 떨어지고 개개 인에 대한 존중과 함께 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으며, 지리상의 발견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 등이 알려지면서 유럽인들은 더 넓은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근대 사회가 형성되는 격동의 시 대에 철학에서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는 커다란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다.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을 거부근대 초기에 철학에서 인식론이 대두된 것은 이와 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근대 철학자들은 중세의 기독교적 세계관이나 인간 이해를 거부하고 외적 힘이나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자유스러운 정신으로 진리를 찾고자 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올바른 방법만 안다면 누구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인간 정신을 해방하고 정신의 인식 능력을 증대하는 방법론을 모색한 대표적 철학자가 베이컨이었다. 그는 자연의 원리를 깨우침으로써 인간은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기 위해 올바른 인식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점에서 베이컨의 철학적 업적은 근대 철학의 특징을 대표하고 있다.과거에 갇혀 있다고 지적베이컨이 보기에 당시 영국과 유럽을 지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스콜라 철학의 학문 방법이 결코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즉 삼단논법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나 내용을 설명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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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하)

    사회 풍자 소설로서 《유토피아》는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거기에는 저자인 토머스 모어의 진솔한 생 각이나 주장이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유토피아》는 곳곳에 현실에 대한 풍자와 역설적 표 현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에 풍자와 역설적 표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책이 재 미는 있지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책이라는 것을 반증한다.‘유토피아’의 원래 제목은?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처음 출간될 당시 그 책의 원래 제목은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한, 그리고 유토피아라고 불리는 새로운 섬에 대한 유익하고 즐거운 저작’이었다. 어느 책이든 책의 제목을 보면 당연히 그 안의 내용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 마련이듯이, 《유토피아》도 원래 책 제목만 보면, 거기에는 유토피아라는 완벽한 사회의 유익하면서도 즐거운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된다.그러나 이런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한 글이 유익하고도 즐거울 것이라는 예상은 절반만 타당하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그리고 있는 이상사회는 모든 인간이 소유와 생산에 있어서 평등하고, 경제적으로 풍요하며,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은 사회로서 여러 분야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즐거울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우회적 비판을 알아차리라‘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한 즐거운 저작’이라는 표현에서 ‘즐겁다’라는 말은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역설적이다. 우선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를 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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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유토피아(Utopia)는 현실에는 없고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향을 가리킨다. 유토피아란 말은 다 소 역설적이다. ‘없는(ou) 장소(topos)’, 곧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들은 늘 이 세상에 ‘없는 곳’을 꿈꿔 왔다. 그래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나 누구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하는 곳이 유토피아인 것이다.현실에 없는 세상유토피아라는 말은 16세기 초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라는 책을 쓰면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지만, 워낙 많이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유토피아’라는 말이 ‘이상향’을 지칭하는 보통 명사가 되다시피 했다. 그래서 요즘 유토피아라는 말과 연관된 신조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의미로 쓰이는 가상 사회를 디스토피아(dystopia)라고 부른다거나 과학기술에 의한 이상향을 일컬어 테크노피아(technology utopia)라고 하는 것들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바람을 반영하는 듯하다.산업혁명 비판을 위하여“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와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이상향을 꿈꾸는 것은 필요하다. 개인이든 사회든 보다 나은 상태를 바라는 꿈이 있어야 발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없는 곳’을 꿈꾼다는 점에서 유토피아는 어쩌면 허망한 꿈일 수도 있다. 그래서 유토피아에 대한 논의가 터무니없는 것이 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한 가지 전제가 요구된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다. 그럴 때 유토피아는 비로소 현실을 비판하는 준거로 작용하게 된다. 비유로 말하자면 유토피아는 현실 사회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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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마키아벨리(하) 마키아벨리의 수수께끼

    고전(古典)을 가리켜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하는 데는 그것이 오랜 기간 마르지 않는 생명력을 유지할 뿐 아니 라 늘 새롭게 재해석되기 때문이리라. 고전에 대한 이러한 비유는 마키아벨리의 대표적 저작인《군주론》과 《로마사 논고》가 왜 고전인가를 설명하는 데 꼭 들어맞는다.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는 지난 500여 년 동안 혹독한 비판과 검증을 견디고 사람들에게 지혜와 통찰력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근대정치철학을 여는 데 기여한 저작이라는 중요성 때문에 지금까지 이를 둘러싸고 수많은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두고 해결이 쉽지 않다는 의미에서 ‘마키아벨리의 수수께끼’라고 부른다.고전은 마르지 않는 샘마키아벨리에 대한 뜨거운 논쟁 중 하나는 그가 ‘군주론자인가 아니면 공화주의자인가’라는 문제다. 이 문제는 마키아벨리의 주저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 사이에서 보이는 상반된 입장에 기인한다. 물론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 두 저서 모두 현실 정치를 중시하는 마키아벨리의 시각이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군주론》만을 볼 때 마키아벨리는 정치 체제로서 군주정을 옹호하고 있는 반면, 그보다 뒤에 쓴 《로마사 논고》에서 그는 공화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보면 이 두 권의 책을 같은 사람이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둘 사이에는 의견 차이가 크다.이제 마키아벨리가 진정으로 군주정을 옹호하는 군주론자이냐 아니면 공화정을 지지하는 공화주의자이냐는 수수께끼에 대한 해석을 두고 철학자들이 제시한 몇 가지 해석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