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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판단력이 둔해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음 -여씨춘추-

    ▶ 한자풀이刻   새길 각舟   배 주求   구할 구劍   칼 검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다 강 한복판에서 실수로 아끼던 칼을 물에 빠뜨렸다. 놀란 그는 재빨리 주머니칼을 꺼내 칼을 빠뜨린 부분의 뱃전에 표시를 해뒀다. 그리고 안도했다. “칼이 떨어진 자리에 표시를 해놓았으니 언제든 찾을 수 있겠지.” 배가 언덕에 닿으려 하자 그는 급한 마음에 표시가 된 뱃전 아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한데 거기에 어찌 칼이 있겠는가. 칼을 찾느라 허둥대는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여씨춘추》 찰금편에 나오는 얘기다.‘잃어버린 칼 위치를 뱃전에 표시한다’는 각주구검은 판단력이 둔하고 어리석음을 꼬집는 표현이다. 세상일에 어둡고 융통성이 없음을 나무라는 말이다. 강 한복판에 칼을 빠뜨렸으니 배가 언덕에 닿을 무렵에는 얼마나 칼과 멀어졌겠는가. 그걸 깨닫지 못하고 표시된 바로 아래에서 칼을 찾으려 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한데 모두가 비웃는 이 어리석은 자와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우리 또한 옛 표식을 들고 오늘의 길을 찾으려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옛 문구 하나 달랑 붙들고 거기에 오늘을 맞추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장자는 수레꾼의 입을 빌려 말했다. “옛 책에 쓰여 있는 성현의 말씀은 발걸음이 아니라 발자국일 뿐”이라고. ‘시대의 흐름을 꿰지 못하고 옛 생각만 고집하는 것은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다’ 식으로 사용된다.누구도 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 누구도 순간을 붙잡을 수는 없다. 누구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 수는 없다. 어리석은 자는 어제의 잣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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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다른 사람의 사소한 언행도 나를 돌보는 데 도움이 된다 - 시경 -

    ▶ 한자풀이他 다를 타山 메 산之 갈 지石 돌 석        공자는 중국 춘추시대 시 수천 편 중 300여 편을 골라 《시경》을 편찬했다. 소아편 학명(鶴鳴)에는 이런 시 구절이 있다. ‘즐거운 저 동산에는 박달나무 심겨 있고 그 밑에는 닥나무 있네. 다른 산의 돌이라도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네(他山之石 可以攻玉).’타산지석(他山之石)은 문자 뜻 그대로 ‘다른 산의 돌’이다. 다른 산에서 나는 거칠고 하찮은 돌이라도 숫돌로 쓰면 자기의 옥을 갈아 더 빛낼 수 있다는 뜻이다. 타인의 사소한 언행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현자는 타인에게서 자신을 본다”는 톨스토이의 말과 함의가 같다.공자에 따르면 돌은 소인, 옥은 군자다. 돌은 옥을 시샘하고 흠집내려 하지만 옥은 돌을 하찮다 하지 않고, 되레 자신을 벼리는 도구로 쓴다. 그러니 소인은 군자의 스승이다. 소인의 부족한 앎은 군자의 배움에 채찍이 되고, 소인의 낮은 덕은 군자의 덕행에 반면교사가 된다. 반면교사(反面敎師)는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마오쩌둥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오는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흠을 스스로를 살피는 거울로 삼는다는 의미다. ‘지난해 규제의 부작용을 타산지석(반면교사)으로 삼아 …’ 등으로 쓰인다.배우려는 자에게는 만물이 모두 스승이다. 길가의 돌부리 하나, 바람 속의 티끌 한 점도 깨우침을 준다. 공자는 셋이 길을 가면 그 중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다. 모범은 따르고, 허물은 나를 살피는 거울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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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식이나 재주가 몰라볼 정도로 나아짐 -삼국지-

    ▶ 한자풀이刮 : 비빌 괄目 : 눈 목相 : 서로 상對 : 대할 대삼국시대 오왕 손권은 부하 장수 여몽이 무술만 연마하고 학식이 부족한 것을 염려했다. “국가의 큰 일을 맡으려는 자는 글을 읽어 지식을 쌓아야 하오.” 왕의 당부에 여몽은 그후 학문을 갈고닦았다. 어느 날, 평소 여몽을 무식하다고 경시한 재상 노숙이 그의 학식이 놀랄 만큼 깊어진 것을 보고 연유를 묻자 여몽이 답했다. “선비라면 사흘을 떨어져 있다 만났을 땐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야 하는 법입니다(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로 괄목상대(刮目相對)는 학식이나 재주가 눈을 비비고(刮) 볼 정도로 예전과 달라졌음을 뜻하는 말이다. 괄목상관(刮目相觀), 괄목상간(刮目相看)으로도 쓴다. ‘날로 달로 성장하고 진보한다’는 일취월장(日就月將)도 괄목상대와 뜻이 비슷하다. 중국 은나라 시조 탕 임금이 게으름을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대야에 새겼다는 일신일신우일신(日新日新又日新)도 하루하루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뜻이다.‘그는 우주분야 연구에서 괄목상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재기 후 괄목상대할 기량을 과시했다’ 등으로 쓰인다.누구나 내일을 꿈꾼다. 꿈꾼다는 건 오늘과 다른 내일을 소망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디딤돌을 딛고 내일로 간다. 내일은 보장된 미래가 아니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원하면 오늘을 바꿔야 한다. 그럼 내일은 절로 달라진다. 게으름에 지면 늘 그 자리다.신동열 <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