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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여럿이 한목소리를 내면 거짓도 진실인 듯 보인다 - 한비자 -

    ▶ 한자풀이三   석 삼人   사람 인成   이룰 성虎   호랑이 호전국시대 위나라 대신 방총이 인질로 조나라 수도 한단에 가는 태자를 수행하게 됐다. 자신이 위나라에 없는 동안 신하들의 음해를 우려한 방총이 출발을 며칠 앞두고 혜왕에게 물었다.“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않을 것이오.” 방총이 재차 물었다. “하오면, 두 사람이 똑같이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 또한 믿지 않을 것이요.” 방총이 다시 물었다. “만약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땐 믿을 것이오.”방총이 말했다.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명확한 사실입니다. 하오나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뢰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 신이 가게 되는 한단은 저잣거리보다 억만 배나 먼 곳입니다. 더구나 신이 떠나면 신 뒤에서 참언하는 자가 세 사람만은 아닐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그들의 헛된 말을 귀담아듣지 마십시오.”아니나 다를까. 방총이 떠나자 신하 여럿이 왕 앞에서 그를 헐뜯었다. 수년 뒤 태자는 볼모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혜왕이 의심을 깊이 품은 방총은 끝내 고국땅을 밟지 못했다. 의심은 독보다 빨리 퍼지는 법이다. 《한비자》 내저설편에 나오는 얘기다.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 여럿이 하는 거짓은 참으로 믿기 쉽다. 니체는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말이 많다”고 했다. 속이는 자는 잡다한 수다로 주의를 다른 데로 쏠리게 한다는 거다. 민주주의의 가늠자라는 여론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남의 권세나 위세를 자기 것인양 과시하다 - 전국책 -

    ▶ 한자풀이狐 여우 호假 거짓 가 虎 호랑이 호威 위엄 위전국시대 초나라에 소해휼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북방 나라들이 그를 몹시 두려워했다. 초나라 선왕은 이웃 나라들이 그를 그렇게 두려워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어느 날 강을(江乙)이라는 신하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북방 국가들이 어찌 소해휼을 그리 두려워하는가?”강을이 말했다. “전하,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호랑이가 여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잡아 먹히려는 순간 여우가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리게나. 천제(天帝)가 나를 모든 짐승의 왕으로 임명하셨네. 거짓이다 싶으면 나를 따라와 보게. 모두 내가 두려워 달아날 테니.’ 호랑이는 여우 뒤를 따라갔습니다. 여우의 말대로 모든 짐승이 놀라 달아났습니다. 사실 짐승들은 여우 뒤의 자신을 보고 달아난 것이지만 호랑이는 그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북방 국가들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실은 소해휼의 뒤에 있는 초나라의 막강한 군세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전한의 유향이 전국시대 책략가를 엮은 《전국책》에 나오는 얘기로, 여우(狐)가 호랑이(虎)의 위세(威)를 빌려(假)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한다는 호가호위(狐假虎威)는 여기에서 유래했다. 남의 위세를 마치 자기 것인 양 훔쳐다 쓰는 게 어디 여우뿐이겠는가. 입만 열면 인맥 과시로 이야기를 채우는 사람, 틈만 나면 자기 자랑을 촘촘히 끼어넣는 사람…. 모두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으로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자들이다.재물 권력 명예 지식, 그게 뭐든 자랑삼아 내보이지 마라. 자긍과 자존은 안으로 품을 때 더 빛이 나는 법이다. “공작은 사람들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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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한다 - 회남자 -

    ▶ 한자풀이塞   변방 새翁   늙은이 옹之   갈 지馬   말 마중국 국경 지역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다. “이를 어찌합니까.” 동네 사람들이 노인을 위로했다. 노인은 의외로 태연했다.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도망친 말이 오랑캐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다. “참으로 어르신이 말씀하신 그대로 입니다.” 이웃들의 축하에도 노인은 여전히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게 화가 될지 누가 압니까.”며칠 뒤 노인의 아들은 그 말을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노인을 위로했다. 노인은 이번에도 무표정이었다. “이게 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 아들이 다리가 부러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북방 오랑캐가 침략했다. 나라에서는 징집령을 내려 젊은이들을 모두 싸움터로 내몰았다. 하지만 다리가 부러진 노인의 아들은 전장에 불려나가지 않았다. 중국 전한의 회남왕 유안이 쓴 『회남자』에 나오는 얘기다.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다. 변방 노인(塞翁)의 말(馬)은 인간의 길흉화복이다. 오늘의 길(吉)이 내일은 흉(凶)이 되고, 오늘의 화가 내일은 복이 되는 게 인생이다. 알 수 없는 게 내일이고,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삶은 단색이 아니다. 길도 아니고 흉도 아닌 길흉이고, 복도 아니고 화도 아닌 화복이다. 복 속에 화가 있고, 화 속에 복이 있다.위기(危機)는 위태로움(危)과 기회(機)가 붙어 있다. 위태로움을 뒤집으면 기회가 보이고, 기회에서 방심하면 위태로워진다. 그러니 위태로움에 처하면 기회를 보고, 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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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하자니 이익이 작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 - 후한서 -

    ▶ 한자풀이鷄 닭 계 肋 갈비 륵계륵(鷄肋)은 누구나 아는 고사성어다. 말 그대로 닭(鷄)의 갈비(肋)니,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왠지 좀 아까운 거다. 큰 쓸모나 이익은 없으나 그렇다고 팽개치기는 아까운 거다.중국 후한시대가 저물어 가고 삼국시대에 접어들 무렵, 한중(漢中)은 위나라 조조와 촉나라 유비의 각축장이었다. 토지가 비옥하고 생산물이 풍부해 향후 ‘땅 싸움’을 가늠할 전략적 요충지였다. 유비가 한중을 공략해 조조가 아끼던 장수 하후연을 죽이고 성을 차지했다. 격노한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한중 수복작전에 나섰다. 한데 유비 측 방어는 철벽이었다. 식량은 줄어가고, 병사를 마냥 한중에만 배치할 수도 없고…. 조조의 고민은 깊어갔다.그러던 어느날 조조의 저녁으로 닭국이 올라왔다. 조조는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기는 아까운 닭 갈비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때 하후연의 형 하후돈이 암호를 물으러 왔다. “계륵으로 하게.” 조조가 툭 던졌다. 군의 행정 실무를 보던 양수(楊修)가 그 말을 전해듣고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챘다. “조만간 한중에서 철수할 터이니 미리 짐들을 챙겨놔라.” 병사들이 그 까닭을 물었다. “닭 갈비는 먹을 게 없지만 버리기도 아깝다. 주군께서는 돌아가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조조는 자신의 심중을 귀신처럼 꿴 양수를 ‘군심 교란죄’로 처형하고 태연히 철수했다. 《후한서》 ‘양수전’에 나오는 얘기다.계륵은 몸이 마르고 허약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명인 유영(劉怜)이 술에 취해 시비를 걸었다. 화가 난 상대가 주먹을 휘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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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도 본질은 아주 다른 것 - 맹자 -

    ▶ 한자풀이似   닮을 사而   말 이을 이非   아닐 중국 고전의 사서(四書) 중 하나인 《맹자》 ‘진심’편에 맹자가 제자 만장과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 나온다. 만장이 스승 맹자에게 묻는다. “공자는 자기 고장에서 행세하는 선비인 향원(鄕原)을 덕을 해치는 자라 했습니다. 한 마을에서 칭송받으면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일 터인데 어째서 그들이 덕을 해친다 했는지요?” 맹자가 답한다. “향원은 비난하려 해도 지적할 게 없는 듯하고, 꼬집으려 해도 꼬집을 게 없는 듯하고, 행동이 청렴결백한 것 같지만 속내를 감추고 세속에 영합한다. 그러므로 덕을 해치는 자라 한 것이다. 공자는 비슷한 듯하지만 아닌 것(似而非)을 미워하셨다. 가라지를 미워하는 건 곡식의 싹을 어지럽힐까 염려하신 때문이다.”사이비는 비슷하지만(似), 그러나(而), 같지는 않은 것(非)이다. 공자는 사이비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 사람을 현혹한다고 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2500년 전에도 여전히 사이비가 사람들을 속인 모양이다.공자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을 강조한다. 문체(文)와 바탕(質)이 어긋나지 않아야 빛이 난다(彬)는 뜻이다. 문체는 언변, 외모, 포장, 디자인이다. 바탕은 인성, 자질, 콘텐츠다. 부실한 콘텐츠를 화려한 포장으로 가리는 것도 사이비고, 허접한 영혼을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가리는 것 역시 사이비다. 우리 사회는 유독 사이비가 판을 친다.맹자는 공자의 말을 빌려 사람을 네 형태로 분류했다. 중용의 도리에 부합해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사람, 품은 뜻은 크나 실행이 이에 못 미치는 사람, 나름 지조가 있어 악은 행하지 않되 소심한 인물, 위선적인 처세로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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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 태어난 사람이 학문을 닦아 앞에 난 선배를 능가한다는 뜻 - 논어 -

    ▶ 한자풀이後   뒤 후生   날 생可   옳을 가畏   두려워할 외“뒤에 난 사람이 두렵다(後生可畏). 나중에 올 사람이 어찌 지금 사람만 못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이 40이나 50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리 두려워할 게 못 된다.”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후생(後生)은 뒤에 태어난 사람이다. 외(畏)는 단순히 두려운 게 아니라 존경의 뜻을 내포한다. 경외(敬畏)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러니 후생가외는 뒤에 오는 자의 뛰어남을 두려워하고 시기만 하는 게 아니다. 두렵지만 존중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뒤에 난 사람을 경계해 스스로 더 정진하는 것이다.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35년을 뛰어넘은 망년지우(忘年之友)다. 서원으로 찾아온 이이가 돌아간 뒤 이황은 제자 조목에게 편지를 보냈다. “율곡이 찾아왔다네. 사람됨이 명랑하고 시원스러울 뿐 아니라 견문도 넓고 우리 쪽 학문에 뜻이 있으니 ‘후배가 두렵다(後生可畏)’고 한 공자의 말씀이 참으로 옳지 않은가.” 율곡의 학문보다 퇴계의 그릇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릇이 큰 데는 다 까닭이 있다.후생가외보다 귀에 더 익은 건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맹자의 성선설에 맞서 순자는 성악설을 주창했다. 둘은 유가이면서 생각의 색깔은 다소 달랐다. 《순자》 권학편은 선(善)의 회복에 배움이 왜 중요한지를 상세히 적고 있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청출어람의 출처가 된 구절이다.인생은 미지수(未知數)다. 크고 작은 미지수가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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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단력이 둔해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음 -여씨춘추-

    ▶ 한자풀이刻   새길 각舟   배 주求   구할 구劍   칼 검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다 강 한복판에서 실수로 아끼던 칼을 물에 빠뜨렸다. 놀란 그는 재빨리 주머니칼을 꺼내 칼을 빠뜨린 부분의 뱃전에 표시를 해뒀다. 그리고 안도했다. “칼이 떨어진 자리에 표시를 해놓았으니 언제든 찾을 수 있겠지.” 배가 언덕에 닿으려 하자 그는 급한 마음에 표시가 된 뱃전 아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한데 거기에 어찌 칼이 있겠는가. 칼을 찾느라 허둥대는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여씨춘추》 찰금편에 나오는 얘기다.‘잃어버린 칼 위치를 뱃전에 표시한다’는 각주구검은 판단력이 둔하고 어리석음을 꼬집는 표현이다. 세상일에 어둡고 융통성이 없음을 나무라는 말이다. 강 한복판에 칼을 빠뜨렸으니 배가 언덕에 닿을 무렵에는 얼마나 칼과 멀어졌겠는가. 그걸 깨닫지 못하고 표시된 바로 아래에서 칼을 찾으려 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한데 모두가 비웃는 이 어리석은 자와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우리 또한 옛 표식을 들고 오늘의 길을 찾으려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옛 문구 하나 달랑 붙들고 거기에 오늘을 맞추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장자는 수레꾼의 입을 빌려 말했다. “옛 책에 쓰여 있는 성현의 말씀은 발걸음이 아니라 발자국일 뿐”이라고. ‘시대의 흐름을 꿰지 못하고 옛 생각만 고집하는 것은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다’ 식으로 사용된다.누구도 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 누구도 순간을 붙잡을 수는 없다. 누구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 수는 없다. 어리석은 자는 어제의 잣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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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다른 사람의 사소한 언행도 나를 돌보는 데 도움이 된다 - 시경 -

    ▶ 한자풀이他 다를 타山 메 산之 갈 지石 돌 석        공자는 중국 춘추시대 시 수천 편 중 300여 편을 골라 《시경》을 편찬했다. 소아편 학명(鶴鳴)에는 이런 시 구절이 있다. ‘즐거운 저 동산에는 박달나무 심겨 있고 그 밑에는 닥나무 있네. 다른 산의 돌이라도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네(他山之石 可以攻玉).’타산지석(他山之石)은 문자 뜻 그대로 ‘다른 산의 돌’이다. 다른 산에서 나는 거칠고 하찮은 돌이라도 숫돌로 쓰면 자기의 옥을 갈아 더 빛낼 수 있다는 뜻이다. 타인의 사소한 언행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현자는 타인에게서 자신을 본다”는 톨스토이의 말과 함의가 같다.공자에 따르면 돌은 소인, 옥은 군자다. 돌은 옥을 시샘하고 흠집내려 하지만 옥은 돌을 하찮다 하지 않고, 되레 자신을 벼리는 도구로 쓴다. 그러니 소인은 군자의 스승이다. 소인의 부족한 앎은 군자의 배움에 채찍이 되고, 소인의 낮은 덕은 군자의 덕행에 반면교사가 된다. 반면교사(反面敎師)는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마오쩌둥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오는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흠을 스스로를 살피는 거울로 삼는다는 의미다. ‘지난해 규제의 부작용을 타산지석(반면교사)으로 삼아 …’ 등으로 쓰인다.배우려는 자에게는 만물이 모두 스승이다. 길가의 돌부리 하나, 바람 속의 티끌 한 점도 깨우침을 준다. 공자는 셋이 길을 가면 그 중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다. 모범은 따르고, 허물은 나를 살피는 거울로 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