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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손창섭의 《잉여인간》

    손창섭이 쓴 1958년 작품‘잉여.’ 인터넷상 유행어다. 요즘은 오덕, 덕후, 덕질 등의 유행어에 밀려 한물간 느낌이지만 여전히 널리 쓰이며 캐잉여, 잉여롭다, 잉여력, 잉여짓 같은 단어까지 파생해 내었다. 잉여의 사전적 의미는 ‘쓰고 난 후 남은 것’, 즉 나머지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현수의 아버지는 “너 대학 못 가면 뭔지 알아?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 잉여인간 알아? 인간 떨거지 되는 거야”라며 가혹하게 현수를 질책한다. 이때의 잉여인간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무가치한 인간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학사에는 이미 일찌감치 잉여인간이 존재했고 이는 1958년 손창섭의 발표작 《잉여인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만기 치과의원 원장인 서만기는 번듯한 용모에 뛰어난 의술, 훌륭한 인격을 갖추었다. 그리고 간호사 홍인숙은 그런 만기를 존경하고 흠모하여 성심을 다하여 만기를 돕는다. 이 병원에 아침마다 출근하는 인물로 만기와 홍인숙 외에 만기의 중학 동창인 채익준과 천봉우가 있다. 직업이 없는 이 두 잉여인간은 매일같이 병원에서 소일한다. 익준은 마음에 들지 않는 신문 기사를 보면 비분강개하며 부정적인 사회 현실을 개탄한다. 게거품을 물고 일장연설을 하는 그의 머리와 가슴은 늘 뜨겁다.봉우는 익준과 대조적인 인물이다. 잉여도 제각기 개성이 있는 법. 그는 인기척도 없이 슬그머니 병원에 들어와 대기실 구석에 깍지 낀 두 손을 얌전히 무릎에 얹고 앉는다. 신문도 기사 제목을 대강 볼 뿐이고 익준의 연설에 대꾸하는 법도 없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그림자처럼 앉아 잠을 잔다. 그것이 그의 일과의 전부다. 그의 눈이 빛날 때는 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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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상섭의 《두 파산》

    광복 직후 우리 사회상1949년 발표작이니 그야말로 광복 직후 사회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이라 하겠다. 그리고 당대의 풍경은 등장인물의 면면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됐다. 해방 공간에서 한자리 차지해볼까 정치권을 맴도는 정례의 남편, 일제시대 도지사를 지냈으니 반민족행위자로 처벌과 재산 몰수의 위기에 처한 옥임의 남편, 이런 남편들 때문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정례 모친과 옥임, 시골 보통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고는 하나 고리대금업으로 이자 독촉에 여생을 건 듯 보이는 영감 등등.작가는 인물의 삶을 소상히 스케치해 지극히 건조한 어투로 서술한다. 돈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룬 점은 이 작품의 큰 특징이다. 당시 물가와 부동산 가격까지 얼추 짐작할 수 있는 사실주의적 기록이 흥미로운데 이런 점은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의 《고리오영감》을 떠올리게 한다. 인물들의 삶의 정황은 그들의 금전 거래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므로 여기에 신경 쓰며 읽어보기를 권한다. 숫자를 따라가다 보면 인물의 처지와 감정선이 손에 잡힌다.정례 모친은 은행 빚 30만원을 내 보증금 8만원에 월세 8000원짜리 가게를 얻어 문방구를 연다. 그런데 자본금이 부족하니 물건을 충분히 들여놓을 수 없다. 여기에 학교 동창 옥임이 10만원을 동업 형식으로 투자한다. 그리고 월 2부 안팎으로 배당금을 받아간다. 월 2부면 연이자 240%다. 엄청난 고리다. 실제 옥임은 아홉 달 동안 20만원 가까이 벌어간다. 그런데 정례 모친의 남편이 벌인 자동차 사업이 시원치 않아 자꾸 문방구에서 돈을 빼 간다. 투자한 10만원을 회수하지 못할까 염려한 옥임은 8만원 보증금 영수증을 담보로 잡고 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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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의 《무정》

    최초의 근대소설비중에 경중은 있지만 음식과 요리가 등장하는 문학 작품이 꽤 많다. 한국 최초의 근대 소설인 이광수의 《무정(1917)》에도 인상적인 음식이 둘 등장한다.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경성학교 영어강사로 재직 중인 이형식은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김 장로의 딸 김선형에게 연정을 품는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된 박 진사의 딸 박영채는 형식을 사모하며 절개를 지키다가 경성학교 교주의 아들 김현수에게 겁탈당한다. 영채는 죽음을 결심하고 평양행 기차를 타지만 동경 유학생인 신여성 김병욱을 만나 봉건적 관습을 벗어버리고 자신도 당당한 신여성이 되기로 결심한다. 일본 유학을 떠나는 영채와 병욱, 미국 유학길에 오른 형식과 선형이 우연히 같은 기차에서 만나게 되고, 이들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일하는 역군이 될 것을 다짐한다.이것은 대강의 줄거리다. 영채는 자살을 결심하고 탔던 평양행 기차 안에서 병욱을 만나게 된다. 병욱은 슬픔에 잠긴 영채에게 ‘구멍이 숭숭한 떡 두 조각 사이에 엷은 날고기를 낀 것’을 권한다. 영채는 처음 보는 음식을 어떻게 먹을지 몰라서 병욱이 먹는 모양으로 따라 먹는다. 이후 영채는 병욱의 가르침을 받으며 ‘구도덕과 낡은 사상의 종’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서 자기 뜻대로 다시 살기로 한다. 이 먹거리는 영채에게 일종의 부활의 음식인 것이다. 이후 친해진 병욱은 영채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그러고 너 그때에 먹은 것이 그게 무엇인지 아니?”“나 몰라, 어떻게 먹는 겐지 몰라서 언니 잡수시는 것을 가만히 봤지요.”“내 아예 그런 줄 알았다. 그것은 서양 음식인데 샌드위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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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애의 《적빈》

    적빈(赤貧), 몹시 가난하다는 뜻매촌댁은 가난하다. 몹시 가난하다. 집 한 칸, 땅 한 뙈기 없는 이 늙은이는 남의 집 일을 거들어주고 삯을 받고, 무명베 짜는 집에 가서 일해 주고 옷감을 받는다. 부지런히 일을 하니 한 입 걱정이야 하겠냐마는 장성했음에도 제 구실을 못하는 아들이 둘이나 있다. 별명이 돼지인 큰아들은 돼지같이 둔하고 철딱서니가 없는데 결국 술 때문에 사고를 일으키고 동네에서 쫓겨나 다른 동네에 따로 살게 된다. 둘째는 그래도 착실한 편이었는데 동네 알부랑자에게 속아 노름판에서 하룻밤 새 모은 돈을 다 날리고 자신도 알부랑자로 전락한다. 아들이 돈을 날리는 바람에 논 서너 마지기 사서 제 농사를 짓겠다는 매촌댁의 꿈도 물거품이 된다. 그러나 매촌댁은 낙심하지 않는다. 아니, 낙심할 틈이 없다. 그는 쉴 틈이 없다. 당장 큰며느리가 만삭인데 해산 후 먹을 양식 한 톨이 없다. 매촌댁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또 간신히 구한 얼마 되지 않는 양식을 큰며느리와 작은며느리에게 고루 나눠주기 위해 두 집을 오가며 종종걸음 친다. 간신히 집 주인에게 얻은 약간의 양식은 큰아들이 홀랑 먹어버리고 정작 출산일에 큰며느리가 쫄쫄 굶은 채 아이를 낳자 매촌댁은 큰며느리 주려고 숨겨놓은 보리쌀을 가지러 어두운 밤길을 또 종종걸음 친다.작품을 읽다 보면 우선 일제시대 하층민의 가난을 그야말로 몸으로 인식하게 된다. 가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은 큰며느리 벙어리가 아이를 낳는 장면이다. 벙어리는 진통으로 손으로 벽을 쥐어뜯으면서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운이 진하여 몸에 힘을 줄 수 없는 것이다. 매촌댁이 장 찌꺼기를 끓인 물을 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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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의 감자

    홀아비에 팔려가는 복녀복녀는 15세에 20년 연상의 홀아비에게 80원에 팔려서 시집을 간다. 남편은 지독히 게으르고 무능하였으며 결국 그들은 평양 칠성문 밖 빈민굴 주민이 된다. 복녀는 거지 행각을 하며 간신히 연명한다. 인근 기자묘 솔밭에 송충이가 들끓자 복녀를 비롯한 빈민굴 주민들이 송충이잡이 인부로 고용된다. 일종의 빈민구제사업이다. 처음에 열심히 송충이를 잡던 복녀는 젊은 여인 몇몇이 놀면서도 더 많은 품삯을 받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자신도 그들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감독에게 일종의 매음을 하게 된 것. 그 후 복녀는 본격적으로 타락하게 된다. 남편은 복녀가 벌어온 돈을 보고 벌씬벌씬 웃는다. 가을이 되자 복녀는 빈민굴 여느 여인들처럼 칠성문 밖 중국인 채마밭에 감자 도둑질을 하러 간다. 어느 날 밤 복녀는 밭 주인 왕서방에게 들키고 그 일을 계기로 아예 왕서방의 정부로 전락하게 된다. 왕서방에게 받은 돈 덕택에 이들 부부는 빈민굴에서는 부자로 통하게 된다. 이듬해 봄 왕서방은 젊은 처녀에게 장가를 들게 된다. 질투심에 눈이 먼 복녀는 낫을 들고 신방에 뛰어들지만 낫을 뺏아 든 왕서방에게 살해된다. 이후 왕서방, 남편, 한의사는 모종의 거래를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을 받고 공동 묘지에 실려간다.1920년 사회상이 그대로···이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이 중학교 1학년 때다. 입학에 즈음하여 아버지가 한국문학전집을 사 주셨다. 그 전집 제일 앞 권에 김동인의 「감자」가 실려 있었다. 여름방학 과제로 독후감상문을 쓰기도 했다. 어떤 내용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줄거리를 요약한 후 작품 해설을 뒤적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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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첫 문장들

    최인훈 ‘광장’의 첫 문장은?첫사랑, 첫해, 첫아이, 첫인상, 첫 등교, 첫 월급. 모든 ‘첫’은 설렘과 긴장을 동반한다. 우리는 일상이 지루할 때 새로운 무엇인가를 기획하여 ‘첫’의 의미를 부여하고 크고 작은 실패를 했을 때 ‘첫’을 만드는 노력으로 삶에 기회를 다시 부여하기도 한다. 소설의 첫 문장은 어떨까? 흡인력 있는 첫 문장들을 읽어 보자.<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광장(최인훈)』의 첫 문장이다. 이 소설은 제목은 광장이지만 그 시작과 끝은 바다다. 주인공 명준이 떠난 곳이 바로 바다였다. 광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무거운 주제만큼이나 무거운 바다. 그래서 비늘도 육중하다.<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의 첫 문장이다. 1970년대 도시 개발의 이면에는 강제 철거로 보금자리를 잃고 밀려난 도시 빈민의 눈물이 있었다. 이 작품은 그들의 비참한 삶과 고통을 빼어난 문장으로 형상화하였다. 신산한 세상에 대한 비판은 화자의 이어진 문장에 담겨 있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벌써 30년이 다 돼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은 이렇게 시작한다. 30년이 지나고 이제는 중년의 가장이 된 사내가 초등학교 시절 교실에서 치렀던 ‘전쟁’을 회상한다. 지금도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한 것은 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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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동

    동동은 작은북 소리?12연이나 되는 시가는 어딘가 부담스럽지만 그게 월령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일 년은 열두 달이니 매달 대응하는 시가가 하나씩. 낱개 포장된 12개의 과일이 한 박스에 포장된 느낌이라고 할까. 독립성이 있으면서 전체로는 하나다. 읽다 보면 연과 연 사이에서도 리듬감이 느껴진다. 색다른 맛이 나는 매력적인 형식이다.고려가요 ‘동동’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월령체 노래다. 서사까지 합치면 총 13연. 동동은 북소리로 추정된다. 둥둥이 큰 북소리라면 동동은 작은 북소리다. 작은 북소리지만 그 울림은 작지 않다. 작품 속 목소리는 아무래도 여인의 것이지 싶다. 사랑을 잃은 여인. 씩씩하게 실연의 아픔을 걷어내지 못하고 연중 사랑을 앓는 여인이다.<정월 냇물은 얼었다 녹았다 하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이 몸이여 홀로 살아가는구나.> 시작인 정월령부터 고독하기 짝이 없다. 매섭고 찬 기운이 옷자락을 파고들어 그 고독감을 배가한다. 봄이 오면 좀 나아질까? 3월령은 노래한다. <3월 지나며 핀 아아 늦봄의 진달래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모습을 지니고 태어나셨구나.> 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찬양은 원래 반한 사람의 몫. 연정이 봄 아지랑이 같이 일렁인다.여인의 비애는 12월령···그러나 그뿐 작품 어디에도 임과 함께하는 순간은 찾을 수 없다. 5월 5일 수릿날에는 임의 만수무강을 비는 약을 바치고 7월 보름 백중날에는 제물을 벌여 놓고 함께 살고자 소원을 빈다. 8월 보름에는 임을 모시고 지내야만 뜻있는 한가위가 될 거라고 노래하고 9월 9일 중양절에는 노란 국화꽃이 핀 집 안에서 적막감을 견딘다. 여인을 이다지도 외롭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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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망매가

    누이의 죽음과 무력한 인간존재갑작스러운 이별은 아프다.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보낸 이들을 우리는 가슴에서 지우지 못한다. 청춘에 요절한 이 역시 안타깝다. 더 이상 나이 먹지 않는 젊은 얼굴을 늙어가는 우리가 애달파한다. 그럴진대 이 두 가지가 함께인 죽음에 대해서는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가 한 부모에서 난 동기(同氣)라면.‘제망매가’ 속 누이의 죽음이 바로 그런 죽음이다. 함께 뛰놀며 자란 형제자매가 젊은 나이에 먼저 떠나리라고 예상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남들이 범상하게 나누는 남매의 정을 나누지 못하게 된 운명에 월명사는 무상감을 느낀다. 그리고 무상감은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이런 죽음은 죄에 대한 벌도 아니고 어떤 원인에 대한 결과도 아니다. 그저 닥쳐온 것, 피할 수 없는 어떤 절대다. 생사의 길이 바로 여기 있건만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무력한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론적 깨달음 앞에서 우리는 그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누이와의 재회는 서방정토에서그럼에도 우리는 죽은 이를 다시 만나고 싶다. 행인지 불행인지 죽은 이와의 재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확신할 수 있는 자명한 사실은 우리가 죽는다는 것 하나다. 그러므로 망자와의 재회는 내세에서 가능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미타찰에서 만나기를 기원한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언제일지 모를 그때를 기다리며 도를 닦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타찰은 서방정토다. 서방정토는 서쪽으로 십만억의 국토를 지나면 있다는 아미타불의 세계다. 부처가 있고 고통은 없는 곳. 《삼국유사》에 의하면 월명사가 재를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