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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에크 "사회주의는 국민을 노예로 이끄는 길"

    “자유주의의 자유보다 더 큰 자유에 대한 약속이 사회주의 선전 선동의 효과적인 무기가 됐다. 사람들은 이런 자유가 실제로 실현된다고 믿는다. (중략) 하지만 그들이 유토피아로 여기는 것이 자유로 가는 길이 아닌 예속(隷屬)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단지 비극의 수위를 높일 뿐이다. (중략) 개인의 자유를 지지하는 정책이 유일한 진보적 정책이라는 핵심 원리는 19세기에 진리였고 지금도 여전히 진리다.”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가 1944년 3월 출간한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은 자유주의 철학을 제대로 담아낸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부제인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이 말하듯 사회주의 허구를 파헤친다. 사회주의가 그럴싸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지만 결국 전체주의로 이끌어 국민을 노예로 만든다는 것이다.사람들은 ‘평등한 사회’ ‘삶의 질이 보장되는 복지’와 같은 사회주의적 구호에 쉽게 열광하곤 한다. 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마치 이기주의나 자기중심주의로 평가절하한다. 반면 사회주의는 자유주의가 갖고 있지 못한 빠른 정책적 진보, 계획을 통한 합리적 목표 달성, 경제적 고통에서의 해방 등을 지닌 유토피아적 사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개인 자유 옹호하는 게 진짜 진보”《노예의 길》의 출간 당시 상황도 비슷했다. 2차 대전 승전을 앞둔 영국에서조차 사회주의 바람이 거셌다. 수많은 지식인이 사회주의 노선의 정당성을 외쳤고, 사회주의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으로 여겼다. 하이에크는 이런 현상을 ‘영국의 독일화(化) 과정’이라고 진단했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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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는 서사시와 비극으로 대중을 교육시켜…이야기 전달 방식의 비극은 기원전 5세기에 등장했죠

    인간은 오감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자신의 삶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을 ‘깨닫는다’라고 표현한다. ‘깨달음’이란 자신도 모르게 옹고집처럼 감싸고 있는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깨는 활동이다. 내가 스스로 의도적이고 정기적으로 깨침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나는 점점 더 ‘자기’라는 수렁에 빠져 나도 모르게 이기적이며 무식한 인간으로 변할 것이다.이야기인간은 특히 눈을 통한 보기와 귀를 통한 듣기로 배운다. 눈을 통해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장면을 경험할 때 배운다. 동서고금의 고전이나 경전들은 주위에서 언제나 우리의 눈을 기다린다. 우리의 눈은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 중독과 충성을 요구하는 게임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유혹의 특징은 끝과 만족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백 수천 년 동안 우주에서 가장 혹독한 심판자인 시간이란 괴물의 검증을 받은 고전과 경전은 소중한 것을 선물한다. 이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깨달음의 수단으로 여기려는 사람들에겐 중독이 아니라 만족을 선사한다. 만족은 나의 충성을 애타게 요구하지 않지만 나의 의식을 확장해 취미를 선물한다. 고상한 취미를 지닌 자가 문명인이며 문화인이다.인류는 아마도 기원전 3만2000년께부터 다른 동물들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인간만의 취미를 가졌다. 이 취미가 인간을 유인원과 구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다. 인류의 조상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태곳적 천지가 요동치면서 만들어진 지하 동굴로 내려가 자신들의 오감을 자극해 오래된 자신을 깨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의례(儀禮)를 거행했다. 그들 중 가장 용맹한 사냥꾼이 사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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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등부터 앞세우는 사회는 자유마저도 잃는다"

    “자유(freedom)보다 평등(equality)을 앞세우는 사회는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다양성과 역동성을 의미하는 자유는 오늘의 약자층이 내일의 특권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자유(freedom)보다 평등(equality)을 앞세우는 사회는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 평등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힘이 자유를 파괴할 것이며, 당초의 목적과 상관없이 그 힘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중략) 자유는 다양성과 역동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늘의 약자층이 내일의 특권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위에서 아래까지 모든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1980년 펴낸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에서 자유보다 평등을 우선시하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고, 정부 주도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정부개입주의는 잘못된 환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제약 없는 경제 활동 등을 포함하는 개인의 자유,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을 의미한다.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자유보다 평등을 앞세우면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는 문구는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가 프리드먼 사후(死後)에 발간한 《자유에 관한 밀턴 프리드먼 선집(Milton Friedman on Freedom)》에도 실려 있다.‘정부 만능 시대’에 자유의 가치 강조프리드먼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1970년대까지 정부 역할을 강조하며 승승장구하던 케인스경제학에 맞서 줄기차게 시장경제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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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소한 조각으로 현대인의 고독 표현한 자코메티…스마트폰 중독은 소외감 달래려는 몸짓일 수도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는 자신의 예술, 특히 조각 작품들로 19세기 근대사회가 20세기 현대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유럽 한 복판에서 세계 1,2차 대전을 경험하면서 유럽 지식인들이 주도한 다양한 철학적인 시도들을 조각 작품이라는 가시적인 물질에 담아 대담하면서도 선명하게 제시하였다. 그의 관심은 시간이 인간의 시선을 왜곡하는 환영 안에서 인간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그는 1940년대 후반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실제 장소에서 재현하는 방법을 두 가지 사상을 통해 발견하였다. ‘현상학’과 ‘실존주의 철학’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자의식’, ‘타인’, ‘허무’와 같은 철학적인 담론을 현대인들의 우울, 소외, 고독으로 표현하였다.‘외로움’현대인들은 외롭다. 손안의 핸드폰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우리의 관심을 유발할 만한 뉴스로 우리의 눈과 귀를 엄습한다. 우리는 왼손으로 핸드폰을 잘 볼 수 있도록 눈 가까이 올리고, 오른 손가락으로 그 매력적인 뉴스에 탐닉하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스크롤을 내린다. 그러면 우리는 한 순간에 그 화면 속으로 들어가 한 참 동안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러나 나는 외롭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나의 모습을 찾지 못할 때, 그리고 그것을 향해 지금 이 순간을 직시하고 장악하지 못할 때, 나는 외롭다. ‘외롭다’는 감정은 누군가의 존재를 갈망하지만, 그것이 나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생긴다. 핸드폰은 현대인의 빈 공간에 들어와 외로움을 달래주는 노예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안주인 노릇을 한다. 현대인들은 핸드폰의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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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 원형 극장에 모인 2만명의 시민들…비극 작품을 보며 ‘숙고하는 인간’이 됐죠

    대부분 국가들에서 왕정이 유일한 정치제도로 당연하게 수용됐을 때, 고대 그리스의 몇몇 정치가들과 시인들은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제도를 실험했다. 그들은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았다. 그들은 ‘공공교육’을 통해 자신이 지닌 자만과 욕심과 같이 아테네 공동체를 저해하는 해악들을 시민들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공동체 교육을 시작했다. 그 교육이 바로 ‘그리스 비극 공연’이다.‘정치적 동물’인류는 기원전 5000년께 ‘도시’라는 인위적인 공간에 살면서 자신의 생존력을 높였다. 그 안에 ‘개인의 삶’은 없었다. 개인은 날 때부터 자신의 신분이 정해져 있으며, 그 신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신분이 요구하는 노동을 수행할 뿐이었다. 고대 사회는 왕을 중심으로 그의 일가친척들로 구성된 극소수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대다수 시민들은 이들의 땅을 빌려 경작하는 소작농들로, 자신들의 소출 대부분을 세금으로 귀족에게 바쳤다. 만일 할당된 수확량이나 세금을 상납하지 못하면 이들은 바로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다.고대 그리스 도시는 이주민들에 의해 서서히 형성된 도시들이다. 특히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레반트 지역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많았다. 그리스는 전통적인 가족, 친족, 부족을 초월해 같은 지역에 오랫동안 거주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그들은 유사시 외부의 적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평상시에는 서로 간 평화를 유지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는 기본 단위를 ‘폴리스(polis)’ 즉 ‘도시’라고 불렀다. 아테네를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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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획·간섭주의는 시장경제와 양립하지 못한다"

    “정부 조치에 의해서건, 노동조합의 압력에 의해서건 최저임금이 간섭받지 않는 시장에서 정해지는 수준보다 높게 책정되는 순간 장시간 지속되는 대량 실업을 초래한다.”“산업화가 가능하게 된 것은 이전에 축적된 자본이나 기술적 지식 때문이 아니고 이 모두를 창조해내는 ‘경제적 자유’ 덕분이다.”오스트리아 학파의 거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1881~1973)는 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꼽힌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 후배 경제학자들의 스승 역할을 했다. 그가 1952년 쓴 《자유를 위한 계획(Planning for Freedom)》은 자유시장경제 이론의 ‘바이블’로 통한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계획, 가격과 임금 통제 등과 같은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을 조목조목 비판했다.“계획과 자본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계획제도 하에서 생산은 정부 지시에 따라 이뤄진다. 소비자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킴으로써 이윤을 얻으려는 자본가와 기업가에 의한 게 아니다. (중략) 케인스 등은 자유사회를 위해서도 계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간에 위치하는 제3의 제도를 제안한다. 프랑스인들이 간섭주의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제3의 길은 없다.”오스트리아 학파의 거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1881~1973)는 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꼽힌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 후배 경제학자들의 스승 역할을 했다. 그가 1952년 쓴 《자유를 위한 계획(Planning for Freedom)》은 자유시장경제 이론의 ‘바이블’로 통한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계획, 가격과 임금 통제 등과 같은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을 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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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제목

    제목이 좋은 소설은 내용이 궁금하게 만든다. 인상 좋은 사람에게 끌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 자체로 독자의 이목을 끈다면 절반은 성공한 제목이며 다 읽고 나서 작품에 딱 맞다 싶으면 온전히 성공한 제목이다. 제목에 집중하며 소설을 읽어 보자.‘씬짜오, 씬짜오’(최은영, 2016년)의 화자인 ‘나’의 가족은 독일에 체류하던 시절 베트남 출신인 투이네 가족과 교류한다. 투이는 ‘나’와 같은 반 급우였고 투이의 아버지 호 아저씨는 아빠 회사의 동료였다. 두 가족은 서로의 집을 왕래하며 함께 식사하고 교류한다. 어른들은 밤새 카드놀이를 하고 ‘나’는 투이와 만화책을 보거나 직소 퍼즐을 하며 애틋한 우정을 쌓는다.외부와 고립돼 육아에만 매달려 있던 엄마도 투이네 집에 초대받은 날에는 예쁘게 차려입고 행복해했고 사이가 냉랭했던 아빠와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두 가족은 어느 저녁 식탁에서 베트남 전쟁을 화제에 올린 일을 계기로 멀어진다. 호 아저씨는 베트남 전쟁 때 한국인이 저지른 학살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하였고 ‘나’의 아버지는 그것은 전쟁 상황에서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맞섰다. 그 전쟁에서 가족이 몰살당한 투이의 엄마 응웬도, 참전한 형을 잃은 ‘나’의 아빠도 당시에는 어린 아이였을 뿐이다.이후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왔고 성인이 된 ‘나’는 몇 번이나 독일 출장을 가도 그 마을을 찾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는. 엄마가 떠났을 때 엄마를 위해 울어준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이모들조차 어릴 때부터 우울했다거나 영리한 애는 아니었다는 식으로 엄마를 회상했다. ‘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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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장치들

    「서울, 1964년 겨울(1965, 김승옥)」을 읽어 보자. 1964년 어느 겨울 밤 ‘나’, 대학원생 안, 사내 이렇게 세 사람이 술을 마신다. 셋은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났다. 사내는 서적 외판원인데 오늘 아내가 죽었고 죽은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아서 돈이 생겼는데 아무래도 지금 그 돈을 다 써야 할 것 같다며 같이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 셋은 술에 취해서 밤거리를 걷다가 소방차를 발견한다. 사내가 택시를 잡고 셋은 소방차를 따라가서 불구경을 한다. 사내는 아내가 불에 타고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돈을 불 속에 던져 버린다.이후 셋은 여관에 투숙한다. 사내는 같은 방에 들어가자고 간절히 말했으나 안은 각자 다른 방에 들어가자고 주장한다. 이튿날 아침 사내는 죽어 있었다. 사내의 자살을 짐작했던 안은 다른 사람들이 알기 전에 도망치자고 한다. 이유는 딱 하나. 혹시 생길지 모르는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안에 동의한 ‘나’가 급히 옷을 주워 입고 방을 나오려는데 개미 한 마리가 ‘나’의 발쪽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나’는 왜 개미가 발을 붙잡으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을까? 그것은 ‘나’가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단절된 인간상, 과도한 개인주의, 폐쇄적인 존재의 고독을 그려낸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인간적 체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개미는 작은 소재지만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주제의 형상화에 기여하는 주요 장치다.이상문학상 수상작가 권여선의 「내 정원의 붉은 열매(2007)」의 화자 ‘나’는 친구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