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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기(狂氣)’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마음 상태…격한 감정에 사로잡혀 저지른 악행은 고통과 슬픔만 따라

    나는 내게 묻는다.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는가?” 혹은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대상에 투여해 보는가?” 무엇을 응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광기(狂氣)’란 관찰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마음의 상태다. 남들을 보기 전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미움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모두 미움이다. 격려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모두 칭찬할 대상이다.광기란 자신의 마음속에 불이 일 듯 일어나는 격한 감정으로 세상을 보려는 어리석음이다. 광기는 입을 통해, 글을 통해, 몸을 통해 폭력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여기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이 저지를 일을 알지 못하는 비극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아이아스다. 테크메사 아이아스는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고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오디세우스에게 줘서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아가멤논과 메넬레우스, 그리고 오디세우스를 살해하려 한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혀 가축들과 목동들을 그들로 착각해 무참하게 도륙한다. 아이아스의 막사에서 나온 자는 테크메사다. 테크메사는 아이아스가 트로이 전쟁 중에 잡은 포로다. 아이아스는 오늘날 터키 중앙에 있는 프리지아 왕국을 점령해 프리지아의 왕 텔레우타스를 살해했다. 이 사건을 기록한 1세기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아이아스가 텔레우타스의 딸 테크메사의 미모에 반해 첩으로 들였다고 전한다. 합창대는 테크메사를 “아이아스가 전쟁에서 자신의 잠자리를 위해 힘겹게 얻은 프리지아 텔레우타스의 딸이여!”라고 부른다. 테크메사는 아이아스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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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개입에 익숙해지는 것은 노예 상태로 가는 길"…입법·행정의 실패에 지나치게 관대한 시민의식 비판

    “공무원 조직은 어느 정도의 성장 단계를 넘어서면 점점 더 억제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프랑스 등 대륙국가의 관료제에서 보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군주에게 무제한 권위가 있다는 가정을 논박하면서 자유주의가 등장한 것처럼, 현재의 진정한 자유주의는 의회에 무제한적인 권위가 있다는 가정을 논박할 것이다.”허버트 스펜서(1820~1903)는 영국 사회학의 창시자이자 철학자, 자유주의 사상가다. 그가 주창한 사회진화론(사회다윈주의)은 한동안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고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그의 자유주의 철학은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경쟁과 자유주의를 옹호했기 때문에 반대 진영으로부터 과도하게 비난받았다는 지적도 나온다.경계해야 할 입법만능주의19세기 영국의 정치·경제·사회상을 담아 1884년 펴낸 《개인 대 국가(The Man versus the State)》는 스펜서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이 책에서 “국가의 역할과 간섭이 커질수록 개인 자유는 침해받게 된다”며 ‘작은 정부론’을 폈다. 또 개인의 자유와 책임, 자발적 협동을 강조하면서 과도한 정부 규제의 철폐와 자유무역 확대, 무분별한 복지 축소의 불가피함을 강조했다.스펜서는 “정부기관이 많아질수록, 시민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고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관념이 더 많이 생겨난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정부 개입에 익숙해지면 바라는 목적을 개인적인 행위나 사적인 조합이 아니라 공공기관을 통해 달성하는 데 더 친숙해질 것”이라며 이를 “노예 상태로 가는 길&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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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투와 시기에 눈멀어 무차별 살육하는 아이아스…미움의 화살로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자는 바로 자신

    기원후 2세기 인도 사상가 파탄잘리는 인도의 찬란한 세계 유산인 ‘요가’를 체계화하면서 요가와 관련한 다양한 경전을 집대성해 《요가수트라》란 네 권의 책으로 편찬했다. 파탄잘리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잡념을 제거하고 더 나은 자신이 되도록 수련하면서 네 가지 마음을 획득한다고 했다. 이는 후대 불교인들에게 ‘사무량심(四無量心)’, 즉 ‘셀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숭고한 마음 네 가지’로 전수됐다.사무량심(四無量心) 첫 번째는 ‘마이트리(maitri)’다. 산스크리트어 마이트리는 한자로는 ‘자(慈)’로 표현됐다. ‘자’는 흔히 사랑으로 번역된다. 사랑은 내가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느끼고 가하는 감정이나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고, 상대방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미리 살펴 아는 마음이다. 더 나아가 상대방이 즐거워하는 것을 함께 즐거워하고 그것을 마련해주려는 애틋한 마음이다. 두번째는 ‘카룬나(karuna)’다. 카룬나는 한자 ‘슬플 비(悲)’로 번역된다. 슬픔이란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 서로 등을 대고 함께 울 수 있는 마음이며 그 이웃이 슬픈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미리 헤아리고 그 방안을 마련해주는 용기다. 인간이 ‘자비(慈悲)’라는 가치를 자신의 생각과 말, 행동을 통해 실천하면, 이보다 더 심오한 단계의 마음으로 진입한다. 바로 ‘무디타(mudita)’다. 무디타는 한자로 ‘기쁠 희(喜)’로 번역된다. 기쁨이란 한마디로 친구의 출세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친구의 불행을 함께 슬퍼하기는 쉬워도, 그(녀)의 행복을 함께 즐거워하기는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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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 이념 확산에는 '얼치기 지식인'의 책임이 크다"…선의(善意)로 가장해 유럽 휩쓸던 사회주의 허구성 경고

    “사회주의가 내세우는 이상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역사적 경험들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사회주의 정책으로 인해 사회가 파괴되고 난 다음에야 이런 경험들을 체득하는 경우가 많다.”프랑스의 군중심리학 대가인 귀스타브 르 봉(1841~1931)은 1896년 출간한 《사회주의의 심리학》에서 당시 유럽을 휩쓸던 사회주의의 허구성과 위험을 경고했다. 그는 “사회주의가 ‘핍박 없는 모두가 잘사는 평등사회’를 주창하지만, 사회발전 원동력인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억압하기 때문에 결국 핍박과 빈곤을 낳을 뿐”이라고 역설했다.“국가 간섭주의 확산 경계해야”르 봉은 유혈혁명을 부르짖는 사회주의 광기(狂氣)를 경계했다. “오늘날(1890년대) 상황은 혁명을 통해 사회 모순을 단번에 해결하려 했던 프랑스 대혁명 때를 떠올리게 한다. 사회주의의 득세는 피와 혼란, 독재로 귀결됐던 선례(先例)를 답습할 가능성을 높인다.”그는 사회주의 이념이 확대 재생산되는 데는 ‘얼치기 지식인’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가장 위험한 사회주의 사도(使徒)는 책에 담긴 지식 외에는 아무런 지식이 없는 학자들이다. 정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선의(善意)’를 가장한 구호로 민중을 선동한다. 문학가인 모레스 바레가 지적했듯이 현실과 유리된 이론가들은 사회 번영을 해친다.”사회주의는 여러 가지 모순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성이나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신앙’으로 자리잡았다는 판단에서였다. “사회주의 이론이 내포한 모순들이 사회주의의 승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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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몽과 오만은 자신만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이해…그리스 비극공연은 ‘3인칭 눈’으로 사물 보는 연습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눈앞에 등장한 대상은 내가 보고 분석해 이해하는 객관적인 대상과는 별로 상관없다. 내가 그 대상을 오래전부터 보고 관찰해왔다면, 나는 이미 그 대상에 관한 이미지를 구축했고, 그 이미지에 그 대상을 언제나 대입시킨다. 나는 어떤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이미 저장돼 있는 이미지를 다시 확인할 뿐이다. 만일 내가 마주친 대상이 이전에 본 적이 없거나, 나의 지적인 활동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이상한 것, 혹은 신기한 것으로 치부하고 이해하기를 포기한다.색안경 나는 내 두 눈을 통해 내가 이해하고 있는 세계 안으로 매일 만나는 대상을 강제로 끌어당긴다. 그 대상이 지니고 있는 내적인 통일성과 진정성을 인식하기 위해선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 나는 세상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고 있다고 인식하고 고백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인 어제까지의 시선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남들은 모두 내가 색안경을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배경과 환경이 나의 습관과 익숙함이 돼 나 자신은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기원전 5세기에 등장한 그리스 비극 공연의 가장 큰 목적은 디오니소스 축제에 앉아 비극 공연을 보고 있는 아테네인들에게 세상을 자신의 눈, 즉 1인칭의 눈으로 쳐다보지 말고 옆에 앉아 있는 남편의 눈, 아내의 눈, 자식의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가장 비극적인 인간, 원수의 눈, 적군의 눈, 즉 3인칭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촉구한다. 영화, 연극, 방송, 신문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는 제3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이다. 나의 눈에서 색안경을 벗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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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족·인종·영토·언어·종교는 민족 결정조건 아니다"…민족 이루는 요소로 더불어 살려는 '의지 공동체' 강조

    “민족은 인종에서 유래하는 것도, 언어로 구분되는 것도, 종교로 결속되는 것도, 국경선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민족이란 언제든지 새로 생겨날 수 있으며, 언젠가는 종말을 고하게 되는 개념일 뿐이다.”근대국가가 성립하면서 본격 등장한 ‘민족’이란 개념은 인류에게 수많은 갈등을 부추겼다. 민족이란 이름 아래 다른 민족을 대량 학살하는 비극도 적지 않았다. 민족을 구성하는 요인은 무엇이고, 순수한 단일 민족이라는 것이 가능한 건가. 프랑스 철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에르네스트 르낭(1823~1892)이 이런 고민을 담아 펴낸 책이 《민족이란 무엇인가》다.르낭이 민족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는 1870년 발생한 프랑스-프로이센 간 전쟁이었다. 전쟁에서 이긴 프로이센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제국’을 선포했다. 이와 함께 독일 민족주의가 전면에 부상했다. 독일은 게르만족이라는 혈통과 독일어라는 언어를 국가 구성요건의 핵심으로 삼았다. 르낭은 민족성의 원칙을 이렇게 인종과 언어에 두는 독일식 민족주의 원리가 틀렸음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종족이나 인종, 지리, 언어, 종교 등은 민족을 결정하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르낭은 “민족이 종족에서 유래한다는 믿음은 무의미하다”며 “유럽만 봐도 이 믿음의 오류는 명백하다”고 했다. 유럽은 로마제국 지배를 받던 당시 하나로 묶여 있었고, 이 국경선 안에서 수많은 민족이 몇백 년간 뒤섞였다. 로마제국이 해체된 이후에도 많은 전쟁과 이동을 통해 민족이 혼합됐다. 따라서 프랑스인은 켈트족이기도 하고, 이베리아족이기도 하며, 게르만족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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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예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자가 받는 '훈장'…트로이 영웅 아킬레우스는 목숨 바친 대가로 '명성' 얻어

    고대 그리스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 중 한 명인 투키디데스(기원전 460~400년)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라는 불후의 저서를 남겼다. 아테네는 기원전 5세기 후반 거의 30년 동안 스파르타와 내전을 벌였다. 이 전쟁을 기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그 범위와 간결함, 정확도에서 역사서술의 전범이라 불릴 만하다.투키디데스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왜 아테네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가? 어떻게 정치가 사회나 개인을 고양시키거나 혹은 망가뜨릴 수 있는가? 누가 위대한 리더인가? 아테네가 퇴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아테네가 퇴락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테네를 떠받치고 있던 ‘명예’가 비웃음거리로 전락해 사라져 버렸다.” 아레테 고대 그리스인은 모든 인간에겐 각자에게 알맞은 ‘개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개성은 각자가 발견하고 수련해야 할 신의 선물이다. 그들은 아테네에서 운명적으로 각자 다른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녀)는 공동체인 ‘도시’ 안에서 자기 나름의 탁월함을 발휘한다. 개인은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낸다. 고대 그리스어로 경쟁은 ‘아곤(agon)’이다. 인간은 아곤을 통해서만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탁월함은 고대 그리스어로 ‘아레테(arete)’다. 아레테는 흔히 ‘덕’으로 번역되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염원한 인간의 최선을 총체적으로 담은 단어다. 아레테의 의미는 실로 다양하다. ‘선, 탁월함, 남성다움, 힘, 용기, 덕, 성격, 명성, 영광, 위엄’이다. 그뿐만 아니라 ‘기적, 경의, 경배의 대상’이란 의미도 있다. 고대 그리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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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급증 따른 빈곤 불가피성 강조하며 미래 비관, 농업생산성 향상 간과…국가 개입주의 한계 지적도

    영국 경제학자인 토머스 맬서스(1766~1834)는 1798년 《인구론》을 펴냈다. 산업혁명으로 농촌 사람들이 계속 도시로 몰려들던 때였다. 급팽창한 도시는 혼란스러웠지만,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계몽주의 사상은 산업혁명과 과학 발달에 힘입어 사회가 더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었다.맬서스는 사회 주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인구론》을 대표하는 문장인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에서 보듯 미래를 비관적으로 봤다. 토지 자원은 유한한 만큼 식량 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리고 그는 식량 부족이 초래할 빈곤은 자연적 조건에 의한 것이지 사회제도에 의한 것이 아니며, 인위적으로 구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맬서스는 일반 정서와는 다른 주장을 펼치는 데 대한 부담 때문에 《인구론》 초판을 익명으로 낸 뒤 2판부터 실명으로 출판하며 내용을 수정해 나갔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인구론》의 가치를 “문장도 착상도 단순하지만, 여기에는 체계적인 경제학적 사고의 발단이 있고 인용할 만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식량부족 대비해 인구 급증 막아야”맬서스는 《인구론》 출판에 앞서 미국 정치가이자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으로부터 통계자료를 받아 인구와 식량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의 ‘기하급수적 인구 증가와 산술급수적 식량 증산’ 결론은 그렇게 도출됐다. “25년마다 인구는 1, 2, 4, 8, 16, 32, 64, 128, 256, 512 식으로 증가한다. 식량은 1, 2, 3, 4, 5, 6, 7, 8, 9, 10 식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225년 뒤에는 인구와 식량의 비율이 512 대 10이 될 것이다.”《인구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