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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미적이면서 폭력적"…일본의 이중성 파헤쳐

    “일본인은 미국이 지금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敵) 가운데 가장 낯설었다.”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1887~1948)가 1946년 펴낸 《국화와 칼》의 첫 문장이다. 미군은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왜 20세기 과학시대에 천황을 신격화해서 받드는지, 포로가 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겨 할복까지 하다가도 일단 포로가 되면 더없이 공손하고 협조적으로 나오는지 등 의문투성이였다.미국 국무부는 1944년 베네딕트에게 이런 일본인들의 특성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종전 뒤 군정(軍政)을 염두에 두고 있던 미국은 일본 국민이 패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알아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베네딕트가 2년간의 연구 끝에 내놓은 게 《국화와 칼》이다. 국화는 평화를, 칼은 전쟁을 상징한다. 이를 통해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해부했다.“일본인은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유순하면서도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고, 용감하면서도 겁쟁이고,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베네딕트는 서로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특성이 공존하게 된 원인에 대해 일본 특유의 계층제도, 보은(報恩), 의무(義務), 의리(義理), 수치심(羞恥心) 등 몇몇 핵심적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베네딕트에 따르면 일본인의 가장 큰 특징은 강박관념을 가질 정도로 ‘나름대로 설정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지키는 일이다. 섬이라는 폐쇄적이고 고립된 환경에서 안정은 절대적 가치로 인식되고 조화를 깨뜨리는 것은 금기였다.&n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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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은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공동체일 뿐"

    민족은 아득한 과거로부터 탄생해 무한한 미래로 이어지는 영속적인 것으로 인식될 때가 많다. 다른 가치들에 우선하는 ‘영원의 힘’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베네딕트 앤더슨(1936~2015)의 《상상된 공동체》는 민족에 대한 이런 통념에 도전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민족에 대한 앤더슨의 정의는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공동체’다. 종교와 왕정의 정당성이 의심받고 급속도로 무너진 18세기 말에 와서야 발명되다시피 세계사 전면에 등장한 개념이 민족이라는 주장이다. 실체가 불분명하지만 필요에 의해 상상돼 마치 ‘유령’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다는 분석이다.이런 코페르니쿠스적 관점은 출간 당시부터 주목받았고, 지금도 세계 사회과학도의 인용빈도 최상위권에 오르내리는 원동력이다. 오해 말 것은 ‘상상된 공동체’라고 해서 민족을 ‘허구’나 ‘가짜’로 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혈연 등으로 얽힌 무의식 깊은 곳으로부터의 숙명과도 같은 집단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약한 인간들이 유령처럼 상상해내”이 책은 민족주의라는 ‘이상 현상’이 근현대 정치에서 수없이 회자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현대 국가의 대부분이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무명용사의 묘가 존재하고, 텅 비어 있을 그 묘의 내부는 유령과 같은 민족적 상상들로 꽉 차 있다.”“많은 국가들이 민족의 이름으로 삶을 영위하면서도 민족, 민족성, 민족주의 같은 말은 정의조차 힘들다”는 게 앤더슨의 문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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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경제활동 통제는 자유에 대한 커다란 위협"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가 1960년 출간한 《자유헌정론(The Constitution of Liberty)》은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의 이상을 20세기 시각에서 재천명한 저작이다.하이에크는 존 스튜어트 밀의 계승자적 위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고유의 이상적 자유주의론을 확립했다. 이 책을 펴냈을 당시엔 전 세계에 사회주의와 복지국가의 이상이 휘몰아쳤다. 서구문명의 성공을 가능케 한 자유의 가치가 쇠퇴해가던 시기 하이에크는 “자유야말로 모든 도덕적 가치의 원천”임을 주창하며 그 전통의 복원을 모색했다.하이에크가 이 책에서 주목한 자유는 타인의 강제가 없는 상태인 ‘개인적 자유’다. ‘정치적 자유’ ‘집단적 자유’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개인적 자유를 문화적 진화의 산물로 본 하이에크는 자유가 필요한 이유를 ‘무지(無知)’라는 인간 본성에서 찾았다. 인간이 전지전능하다면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필요가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문명의 발전 과정은 확실성이 아니라 우연과 개연성에 대처한, 무지라는 근원적 사실에 대한 적응의 결과라고 봤다. 자유가 발전과 진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해 문명의 진보를 가능케 했다는 설명이다. 자생적 질서가 시장경제 발전 이뤄하이에크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상호 작용함으로써 확립되는 ‘자생적 질서’가 존재한다고 봤다. 정부가 나서 사회를 계획할 수 있다는 사고가 일반적이던 시절, 하이에크는 개인 행위의 자발적 상호 조정이 시장을 통해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자유에 대한 유일한 침해는 타인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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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은 여론에, 여론은 선전·선동에 좌우된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서양철학사》는 시대적 분위기와 맥락 속에서 서구사상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짚어주는 저작이다. 러셀은 지금도 이해하는 사람이 100명 미만이라는 《수학 원리》를 20대에 썼을 만큼 다방면에서 천재적이었던 ‘20세기 대표 지성’이다. 대가의 눈높이에서 거의 모든 철학자에 비판적으로 접근한 것이 이 책의 차별점이다. 니체의 말을 빌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사기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을 정도다.간과하기 쉬운 사실들에 대한 환기도 신선하다. 부도덕한 궤변론자로 인식되는 소피스트를 “아테네 민주주의를 강하고 풍부하게 만든 회의주의자”로 긍정 평가했다. 반면 르네상스는 “소수 학자와 예술가들의 운동이었던 탓에 크게 성공할 수 없었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놨다.1945년 출간된 《서양철학사》에는 정치인 작가 과학자가 다수 등장하고, 종교개혁 프랑스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도 자주 언급된다. 러셀은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는 말로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후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고대 철학자로 플라톤을 꼽았다. “선(善)을 최대로 이해한 사람이 통치자가 되는 국가”를 이상적 모델로 제시한 플라톤에 적극 동조했다. “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지성의 훈련과 도덕적 훈련을 받지 않은 자들의 정치참여를 막지 못하면 국가는 반드시 부패한다.” 지성·도덕 없는 정치는 국가 부패시켜고대 철학 다음 시기는 가톨릭 철학으로 명명했다. 교부 철학과 스콜라 철학으로 나뉘는 이 시대 철학의 목적은 ‘신앙의 옹호’였다. 초기 기독교 교리를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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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은 善한 동기 아닌 결과에 책임져야"

    “정치인은 자신이 누릴 권력에 도취되기에 앞서 감당해야 할 권력을 책임 있게 수행해낼 자질과 역량을 갖췄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선(善)한 동기만으로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하면 안 되고, 행위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져야 한다.”독일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그가 뮌헨대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를 직업 또는 소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에 대해 설명했다.베버는 1919년 이 책을 펴낸 동기에 대해 “독일에서 만연한 관료주의 때문”이라고 말했다. “입헌제의 발달로 한 사람의 지도적인 정치인이 정치 전반을 통일적으로 지휘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하지만 독일에선 전문적인 행정 훈련을 받은 관료에 의한 지배 현상이 강화돼 정당정치가 위축되고,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배출이 더욱 어렵게 됐다. 독일 정치인들은 권력도 없고 책임도 없으며 동종 직업집단인 ‘길드’와 같이 단지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고 파벌 본능에 빠져 있다.” “책임의식 없는 열정, 낭만주의일 뿐”독일 정당과 의회가 관료들의 결정에 기계적으로 따르는 거수기 또는 실행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정치를 단순히 생계수단으로 삼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베버는 이런 독일 상황을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라고 규정하고 “관료 지배체제를 통제해 대의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를 위해 정치 지도자가 갖춰야 할 세 가지 자질로 열정, 책임의식, 균형적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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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가 자유·안전 보장 못하면 복종의무 없다"

    “천성적으로 자유를 사랑하는 인간이 권력자 또는 국가에 권리를 양도하는 것은 자연상태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에서 벗어나 개인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받기 위해서다. 권력자가 이런 사회계약의 의무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에게 복종할 이유가 없다.”토머스 홉스(1588~1679)가 쓴 《리바이어던》은 국가의 필요성을 사회계약설을 통해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은 리바이어던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수많은 사람을 조합해 만든 거인이 머리에 왕관을 쓰고 오른손에는 검(劍)을 잡은 채 산 너머에 있는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거인의 이름이 ‘리바이어던’으로, 인간의 집합이면서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 권력을 가졌다. 저마다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자연상태에 있던 인간이 개인 권리를 위임하는 사회계약을 통해 탄생시킨 국가를 상징한다.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괴물이다. 성서에서는 혼돈을 상징하지만, 홉스는 그 반대의 뜻으로 차용했다. 리바이어던은 통치와 질서를 보장할 수 있는 힘의 소유자이며,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인간의 교만함을 억누르고 그들을 복종하게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홉스는 사회계약을 맺기 이전, 즉 정부와 국가가 없는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그렸다. 질서를 찾아볼 수 없고 모든 것은 폭력과 술수, 힘과 기만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가장 나쁜 것은 폭력에 따른 죽음의 공포이며,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며 추잡하고 야만적이며 덧없는 것이다.” “자연상태에선 만인 대 만인의 투쟁”홉스는 인간의 본성 중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세 가지 요소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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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중은 평등·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밀집한다

    “밀집 속에서는 가깝게 느끼고 커다란 안도감을 얻게 된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는 이 ‘축복의 순간’을 맛보기 위해 인간은 군중을 형성한다.”“인간의 역사는 수많은 군중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을 숭상한다. 그들은 모두 시체 더미의 왕이다. 살아남는 최후의 인간이 되는 것이 모든 권력자가 원하는 것이다.”예술과 철학과 자연을 사랑하는 독일인들은 왜 그런 끔찍한 범죄에 참여하고, 또 침묵했을까. 포악한 권력자의 명령이 있었다지만 히틀러 시대의 유대인 집단학살은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미스터리이자 공포로 기억된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스페인계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거주하다가 ‘군중’의 위협에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 강렬한 충격이 계기가 된 35년 연구의 결과물이 《군중과 권력》이다. 군중의 본질을 폭넓은 시각으로 조명한 이 저작을 아널드 토인비는 “인간사에 대한 포괄적 이해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했다. “군중 속 안도감은 순간의 환상일 뿐”카네티는 위협적 군중이 형성되는 이유를 “생존 본능의 발동”이라고 진단했다. 인간은 광활한 평원 위에 서서 돌아가는 풍차와 같다는 게 그의 관찰이다. “풍차와 이웃 풍차 사이에는 간격이 있을 뿐 다른 아무것도 없다. 모든 삶은 이 간격 속에서 펼쳐진다. 재산, 지위, 계급 등이 간격을 만들고 확대시킨다. 함께 모여야만 이 간격이 주는 중압감과 질곡에서 해방될 수 있다.” 군중이 밀집상태를 선호하는 이유다.《군중과 권력》은 밀집된 군중이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방전(放電)’을 꼽는다. 방전은 카네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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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이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손님 각자가 가지고 온 음식이 한 사람이 만든 요리보다 더 다양한 맛을 내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함께 내리는 판단이 훨씬 더 뛰어나다. 국가가 필요한 이유도 이와 같다.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국가 구성원들이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더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그리스 정치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행복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 가운데 최고의 선(善)이라고 여겼다. 그는 “행복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조건 안에서 가장 적절하게 스스로를 실현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잘 어울리는 것”이라고 했다.이런 개인의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정치체제가 무엇인지 탐구한 책이 《정치학(politica)》이다. 그는 41세 때 마케도니아 왕의 부탁을 받고 왕자(훗날 알렉산더 대왕)의 가정교사가 됐다. 이 책은 그가 알렉산더에게 가르치기 위해 정리한 교재다. 폴리티카는 ‘폴리스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지칭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비롯한 각 폴리스의 다양한 통치 형태를 관찰한 뒤 어떤 것이 바람직한 정치 시스템인지 제시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이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생존 때문이다. “인간이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국가가 필요하다. 국가라고 불릴 정도의 공동체가 돼야 자급자족이 가능해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공유지의 비극 정확하게 인식두 번째는 국가에 소속돼야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