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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를 만드는 목적은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의 보호

    “자연이 제공한 것에서 자신의 노동을 섞어 무언가 보태면 그것은 배타적인 소유가 된다. 이는 자연상태 때부터 존재하는 개인의 고유 권리다. 국왕이라도 이런 개인의 소유권, 처분권에 대해 사사로이 침해할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의 소유물을 보전하지 못하거나 탈취하려 할 경우 국민은 저항할 권리가 있다.”존 로크(1632~1704)는 《통치론》을 통해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치론》은 절대왕정을 전복시킨 영국의 명예혁명(1688) 이듬해 출간됐다. 로크는 이 책에서 자유로운 사회 구현을 위해 국가는 어떤 체계로 구성되고,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설계도를 그렸다. 정치·사회의 운영원리로 다수결의 원리, 입법, 집행(행정), 재판관(사법) 등의 개념도 제시했다.또 인간 이성의 합리성, 개인 자유의 신성함, 사유 재산의 절대성, 불합리한 통치에 대한 저항권 등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개념들도 이 책에 담았다. 이런 개념들은 근대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리로 정착됐다. 로크의 자유주의 개념은 왕권신수설에 대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당시 왕권신수설을 내세운 로버트 필머 경은 “하느님이 아담의 후손인 통치자들에게 영토와 함께 신민(臣民)을 준 것이기 때문에 신민은 통치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의무가 있다”며 “신민의 재산 역시 왕이 시혜로서 준 것이기 때문에 통치자는 신민의 동의 없이 이를 처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근대 자유민주주의 이론적 틀 제공이에 대해 로크가 왕권신수설에 기초한 절대왕정 체제를 근본적으로 반대하며 내세운 것이 사회계약론이다. 로크는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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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는 가장 크면서 비도덕적인 집단"

    참혹한 첫 번째 세계대전(1914~1918)을 겪은 뒤에도 사람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인류의 이성을 계몽하고 합리성을 함양하다 보면 더딜지라도 ‘이상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라인홀드 니버(1892~1971)가 1932년 내놓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오랜 전통의 ‘이성중심적 낙관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한 저작이다. 그는 “개인이 도덕적·이타적이더라도, 그들이 모인 사회는 구조적으로 비도덕적·이기적으로 타락한다”고 봤다. ‘이성의 시대’가 올 것이란 ‘헛된 망상’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마치 예언처럼 책 출간 이듬해 히틀러 집단이 집권하고, 최악의 두 번째 세계대전이 이어졌다. 니버는 주목받았고, 그가 태동시킨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추종자들에 의해 ‘소련 봉쇄정책’으로 구체화돼 냉전종식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모든 현실주의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모두 도덕적이어도 집단은 비도덕적《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새로운 정치와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니버는 ‘공동체는 정의와 사랑의 장소며, 역사는 진기한 창조물로 가득하다’는 통념을 거부한다. “비도덕적인 사람이 많아 세상이 어지럽고, 이들을 교육하면 도덕적 사회가 올 것이란 생각은 환상”이라고 몰아붙였다. 개인은 교육과 훈련으로 이성과 정의감을 키울 수 있지만, 사회나 집단에는 불가능하다고 봤다. 사회는 구성원의 이기심과 집단 내 권력 간 상호작용에 의해 집단이기주의로 치닫게 마련이며, 개인의 도덕성은 사회 집단 내에서 발휘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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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과 '군중' 모순어법으로 현대사회의 획일화 비판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타인지향적 아이는 내부지향적 시대의 어른보다 더 세련된 방식으로 인간관계의 속사정을 예민하게 파악한다.”“자신의 생각이나 생활 자체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알아차리면 더 이상 군중 속의 고독을 동료 집단에 의지해 애써 누그러뜨리지 않아도 된다.”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명실상부한 유일 초강대국 반열에 올랐다. 전쟁은 미국의 경제적 번영에 크게 기여했다. 1950년대 미국은 풍요로운 사회로 불렸다. 1930년대 시작된 뉴딜 정책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미국 사회에서는 소득 분배의 평준화가 일어났고, 중산층은 사회 중심세력으로 급속히 자리잡았다. 소득 격차가 줄어들면서 소비 유형은 비슷해졌다. 미국 사회는 획일화·동질화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집단적인 기준을 따르는 ‘순응주의’가 일반적 현상으로 나타났다.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1909~2002)의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 그는 이 책에서 산업화된 대중사회의 구조적 메커니즘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의 사회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날카롭게 분석했다. 처음엔 1940년대 후반 미국인들의 정치적 무관심의 근원에 대한 연구로 출발했다. 그러나 많은 초안을 거치면서 미국인의 삶에 대한 야심찬 연구로 발전했다. 학술서임에도 1950년 초판이 나왔을 때 7만 부가 매진됐고, 1954년 보급판은 50만 부가 팔렸다. 미국 학계에선 찬사와 비판이 함께 쏟아졌다. 일반 독자층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시대를 대표하는 저서가 됐다. 타인지향형으로 사회적 성격 변화‘고독’과 ‘군중&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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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의 정책참여가 경제를 정치로 변질시킨다"

    19세기 들어 세계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문을 걸어잠그던 ‘중상주의’에서 애덤 스미스가 제안한 ‘자유방임의 지배’로 전환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1873년 시작된 세계 최초의 ‘대불황’이 23년간 지속되자 보호주의로 회귀했고, 이는 제국주의로 이어졌다. 이후 대공황(1929년)과 세계전쟁이 덮치자 세계는 개입주의로 치달았다.퇴조하던 자유주의를 부활시킨 주역은 자본주의 종가 영국, 미국이 아니라 독일(서독)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전쟁으로 피폐해진 독일은 1948년 화폐개혁 후 ‘질서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대처와 레이건 시대인 1980년대 초에야 ‘신자유주의’로 회귀한 영국과 미국보다 30여 년이나 빠른 행보였다. ‘라인강의 기적’ 이끈 질서자유주의독일 질서자유주의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경제학자가 발터 오이켄(1891~1950)이다. 2차 대전 종전 후 정부 역할을 중시하는 케인스경제학이 득세하던 시기에 독일은 오이켄 등이 주창한 프라이부르크학파의 질서자유주의를 채택했다. 결과는 ‘라인강의 기적’이었다. 오이켄 사후 2년 뒤 발간된 《경제정책의 원리》는 그의 통찰이 집대성된 경제학의 고전이다.오이켄은 독일 경제의 ‘정신적 아버지’로 불린다. 질서자유주의의 핵심 명제는 “경제정책은 안정된 질서를 형성하는 것이어야 하며, 결코 시장 과정에 자의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이켄 등장 전 독일과 유럽에선 ‘강단 사회주의자’ 구스타프 슈몰러(1838~1917)로 대표되는 ‘역사주의 경제학’이 대세였다. 역사학파는 ‘모든 사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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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의 성패는 지식근로자에 달려"…제조업 쇠퇴도 예언

    “다음 사회에서는 지식근로자가 지배적 집단이 될 것이다. 기업의 성공과 생존은 그 회사가 보유한 지식근로자의 성과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피터 드러커(1909~2005)에게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는 일생의 화두였다. 그는 1959년 《내일의 이정표》에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뒤 평생에 걸쳐 저술과 강연을 통해 ‘지식사회’의 도래와 ‘지식근로자’의 등장을 설파했다.2002년 출간된 《넥스트 소사이어티(Managing in the Next Society)》 역시 지식사회 이론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지식근로자의 시대’를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사회를 이끌 변화의 동력을 다각적으로 탐색했다.드러커가 예측한 다음 사회의 특성은 지식근로자의 급부상과 제조업의 쇠퇴, 인구 구조 변화로 요약된다. 그는 다가올 사회의 진정한 자본은 돈이 아니라 지식이며, 지식근로자가 사회의 주도 세력이 될 것으로 봤다. 또 지식근로자를 자본가로 규정했다. 핵심 자원이자 생산수단인 지식과 기술을 소유한 지식근로자들이 연금기금과 투자신탁기금 투자를 통해 기업의 주주가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진정한 자본은 돈이 아니라 지식”드러커는 “지식사회는 상승 이동이 실질적으로, 무제한적으로 열려 있는 최초의 인간사회”라고 단언했다. 국경이 없고, 누구나 쉽게 지식을 획득할 수 있지만,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질 것이란 설명이다. 지식사회를 가속화할 원동력은 정보기술이다. 드러커는 전통적인 지식근로자 외에 컴퓨터 기술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지식기술자(knowledge techn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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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의 역할은 자유 확장"…진리 포기한 노예의 삶 경계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는 ‘철학자 중의 철학자’로 불린다. 게오르크 헤겔(1770~1831)은 “철학자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단지 스피노자주의자가 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생전에 거의 주목받지 못한 그의 철학은 20세기 중후반부터 재평가돼 ‘스피노자의 귀환’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신과 자연, 정신과 자유, 지성과 국가 등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니체와 프로이트 등에게 영감을 안기며 현대 철학과 사회 속으로 파고들었다.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의 대표로 손꼽히는 질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철학자들의 예수’라고 부른 이유다.윤리학을 뜻하는 《에티카(Ehtica)》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해야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답하는 책이다. 개인, 자유, 진리에 대한 각성이 분출되고 있는 요즘 한국에서도 ‘스피노자 읽기’가 확산되고 있다. “진리 포기하면 노예의 삶 못 벗어”네덜란드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스피노자의 삶은 힘겹고 파란만장했다. 어떤 구도자보다도 처절하고 비타협적으로 자유와 진리를 좇은 결과였다. 17세기 절대왕정 시대를 살아낸 스피노자는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했고, 그의 사상은 금기시되기까지 했다. 모든 학문과 철학이 권력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수행한 시대에 개인과 자유를 철저하게 옹호했기 때문이다. “야훼는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유대사회로부터 스스로 고립되고 추방당하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권력자들은 시대와의 불화에 개의치 않고 비판적 자유정신을 설파한 스피노자를 압박하고 핍박했다.스피노자의 대표 저작 《에티카》는 자유의 본성을 밝히고 자유에 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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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치가 100만 명 먹여살려"…'악덕'이 경제번영 이끈다 주장

    “사치는 가난뱅이 100만 명에게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100만 명을 먹여살렸다.”“잘살고 못사는 것을 공무원과 정치인의 미덕과 양심에 의지하려는 사람들은 불행하며, 그들의 법질서는 언제까지나 불안할 것이다.”“개인의 악덕(惡德)은 사회의 이익이 될 수 있다.” “사치는 가난뱅이 100만 명에게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100만 명을 먹여살렸다.”(버나드 맨더빌)18세기 초 영국은 경제 자유가 확대되고 상업과 금융이 발전하면서 풍요와 번영을 누렸다. 일각에서는 물질 추구, 이기심, 탐욕이 만연하고 과도한 사치와 낭비가 도덕을 파괴시켜 사회적 분열을 초래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이런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도덕 개혁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그 무렵 악덕으로 여겨지던 이기심과 사치가 오히려 번영을 가져온다고 주장하며 도덕 개혁 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 버나드 맨더빌(1670~1733)이다.맨더빌의 대표작 《꿀벌의 우화: 또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은 자본주의 발전의 초입에서 발생하는 ‘돈과 도덕’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우화(寓話) 형식을 빌려 때로는 시로, 때로는 대화하는 방식을 통해 상업사회의 출현으로 야기된 도덕문제를 예리하게 진단했다. 맨더빌은 1705년 펴낸 풍자시 《투덜대는 벌집》에서 ‘악덕이 사라지면 잘살던 사회도 무너진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여기에 주석 20개를 달고 ‘미덕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글을 추가해 1714년에 출간한 책이 《꿀벌의 우화》다. 맨더빌의 핵심 주제인 ‘개인의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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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이 정치에 종속되면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

    아르놀트 하우저(1892~1978)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문화·사회사를 통사적으로 정리한 네 권짜리 방대한 저작이다. 미술사를 중심으로 소설 음악 영화 등 많은 예술 분야를 사회사적 방법론으로 해석해낸 거의 유일한 책으로 손꼽힌다. 하우저는 미적 완성도나 작가의 기교를 넘어 예술작품을 ‘시대와 사회관계 속에서 빚어진 산물’로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런 접근은 문명과 사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천재와 걸작 중심으로 쓰이던 예술사에서 ‘작품을 소비하는 수요자’를 발견하고, 주체로 등장시킨 것도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의 기여다. ‘신비의 영역’에 있던 예술을 사회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경제활동의 일환으로 이끌어냈고, 이는 인접 학문에 영향을 미쳤다. “인상파·고딕은 사회 진보의 산물”1951년 출간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선사시대부터 20세기 대중영화 시대까지 인간·사회·예술의 관계를 풀어냈다. 예술사가이자 문학사가였던 하우저는 미술 문학 철학 미학 역사 등을 넘나드는 박학다식과 통섭적 시각으로 예술에 대한 이해도를 넓혀준다.하우저는 작품이나 사조를 대할 때 반드시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고대 동굴벽화, 영웅들의 서사시, 귀족 여성들의 연애소설, 계몽시대의 시민극, 현대 대중영화는 모두 당시 사회와 시대적 요구를 최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술도 천재도 시대의 산물이라는 설명이다.인상주의 사조를 ‘가장 도시적인 예술’로 해석하는 대목에서 그의 예술관이 잘 드러난다. 하우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