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박완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6·25전쟁이 발발한 지 71년이 되었다. 전쟁을 직접 겪은 분들이 세상을 많이 떠났지만 작품 속의 6·25전쟁은 그 시대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깃발'에 따라 달라지는 전쟁 속의 삶](https://img.hankyung.com/photo/202106/AA.26721851.1.jpg)
1992년에 발표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는 1931년에 태어나 19세 때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과정까지를 기록했다면 6·25전쟁 한복판에서 겪은 얘기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고스란히 담았다.
소설 속에 ‘분하다 못해 생각할수록 억울한 것은 일사후퇴 때 대구나 부산으로 멀찌가니 피난 가서 정부가 환도할 때까지는 절대 안 움직일 태세로 자리 잡고 사는 이들은, 서울 쭉정이들이 북으로 남으로 끌려다닌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들의 피난살이 고생만 제일인 줄 알겠거니 싶은 거였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주인공과 오빠부부, 두 조카와 어머니는 총상을 입은 오빠 때문에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민위원회와 향토방위대똑같은 하늘 아래에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어떤 깃발이 꽂히는가에 따라 삶이 완전히 달라져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주인공 나와 가족들은 인적이 거의 끊어진 서울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갔다. 나는 올케와 함께 빈집의 담을 넘어 들어가 식량을 마련했고, 인민군의 강요로 인민위원회가 시키는 일을 해야 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인민군은 젊은 사람들을 모두 북으로 끌고 갈 계획을 세웠고, 나와 젖먹이를 업은 올케도 그 명령을 피할 길이 없었다. 움직이기 힘든 오빠와 서울에 남게 된 어머니는 나에게 절대로 임진강을 건너지 말라고 당부한다. 트럭을 타고 가라는 인민군의 권유를 따돌리고 시간을 끌며 북으로 걸어가던 중 인민군 깃발이 태극기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는 올케와 함께 서울로 발길을 돌린다.
이제부터는 인민위원회에 끌려가 일한 것, 북한으로 가고 있었던 걸 숨기고 한강 이남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피난민 행세를 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중 나는 서울대에 입학한 지 일 년도 채 안 되는 동안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다는 걸 깨닫고 친구들을 떠올린다. ‘여고 동창생에 대해 궁금한 게 얼마나 예뻐졌을까, 연애는 해 봤을까 따위가 아니라 죽었을까 살았을까,라는 것은 환갑이나 지나고 나서야 할 짓이 아닌가’라고 읊조리면서 전쟁이 가져온 참혹한 현실을 개탄한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제 국군 치하 향토방위대에서 일하며 오랜만에 한숨을 돌린다. 하지만 다시 피난명령이 떨어졌고, 이번에는 가족들과 함께 힘겨운 피난길에 나선다. 끝나지 않은 6·25전쟁잠시 지방에 머물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나는 여러 가지 일로 생계를 유지하다 미군부대 피엑스에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남자에 대해 털어놓자 어머니는 ‘그 좋은 학교’에 복학하지 않고 시집가려느냐며 악담을 퍼붓는다. 소설은 주인공의 결혼으로 끝나는데, 실제로 박완서 선생은 복학하지 않고 1953년에 결혼했으며 마흔 살이 되어서야 작가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