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하'와 '경하', 그리고 '축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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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당원 주권을 만들어 낸 정 후보에게 치하의 말씀을 드린다.” “저한테 ‘치하한다’고 했는데 치하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쓰는 표현이다. 그렇게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는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릴 것 같다.” 지난 8월 정치권에선 여당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때아닌 ‘국어 논쟁’이 달아올랐다. ‘치하하다’를 둘러싼 말다툼이 단초가 됐다. 두루 쓰는 일상적 말은 ‘축하하다’‘(노고를) 치하하다’란 말이 있다. 물론 일상적인 표현은 아니고, 주로 공적인 자리에서 의례적인 칭찬을 할 때 쓴다. “위원장은 선수단의 쾌거를 치하하기 위해 만찬을 베풀었다” 같은 맥락에서 쓰는 말이다. 국어사전은 ‘치하(致賀)’를 ‘남이 한 일에 대해 고마움이나 칭찬의 뜻을 표시함. 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한다’로 설명하고 있다.

‘치(致)’가 ‘이르다, 다다르다’를 뜻하는 한자어다. 공치사(空致辭: 빈말로 하는 칭찬), 견문일치(見聞一致: 보고 들은 바가 꼭 같음), 치부(致富: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됨), 치사량(致死量: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의 양) 등에 이 말이 쓰였다. ‘하(賀)’는 ‘축하하여 예의를 보이다. 보태다’란 의미이다. ‘더할 가(加)’와 ‘조개 패(貝)’ 자가 결합한 모습으로, 경사가 있는 집에 선물(貝)을 더해(加) 축하해준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이 말은 국어사전에서 풀이하듯이,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칭찬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동등한 위상이거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대통령이 산업일꾼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식으로 쓰던 말이다. 우리말에서도 언어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최근에는 ‘치하하다’보다 상황에 따라 ‘격려하다, 칭찬하다, 고마워하다. 감사하다’ 식으로 바꿔 쓰는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치하’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인 데 비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올리는 축하 인사 가운데 하나가 ‘경하(敬賀)’다. ‘공경 경(敬)’ 자를 쓴 말이다. “경하드립니다”라고 하면 극도의 공경하는 마음, 즉 받들어 모시는 마음을 담아 축하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또한 권위주의 시대에 통용되던 인사말로 받아들여진다. 요즘엔 인권의식의 고양과 수평적 문화의 확산에 따라 국립국어원에서도 이 ‘경하’를 ‘축하’로 다듬었다(국어순화용어자료집-선거정치용어, 1997).

‘축하(祝賀)’는 ‘남의 좋은 일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인사함’이다. 일상에서도 널리 쓰이는 말이라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부담없이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니 언어의 위계질서란 관점에서 보면 ‘치하’와 ‘경하’ 중간쯤에 ‘축하’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금일봉’은 권위주의 시절의 잔존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치하’니, ‘경하’니 하는 구태의연한 말이 꽤 있었다. ‘하사품’도 그런 말 중의 하나다. 명절이나 특별히 기념할 일이 있을 때 관련 단체나 소속원들에게 하사품 또는 하사금이 지급됐다. ‘하사(下賜)’란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주는 것을 말한다. ‘사(賜)’ 자가 ‘조개 패(貝: 돈, 재물)’와 ‘바꿀 역(易)’ 자가 어울린 글자로 ‘주다, 베풀다’란 뜻을 담고 있다. 왕조시대의 용어라 지금은 이런 말을 쓸 이유도 없고, 잘 쓰지도 않는다.

지난 시절에는 ‘금일봉’(金一封: 금액을 밝히지 않고 종이에 싸서 봉해 주는 상금, 격려금, 기부금 따위를 이르는 말)이니, ‘시달’(示達: 상부에서 하부로 명령이나 통지 따위를 문서로 전달함)한다느니 하는 말도 많이 쓰였다. 요즘도 쓰이는 사례가 간간이 발견되는(특히 관급 보도자료 등 관용어에서는 비교적 자주 보인다) 이런 말들의 공통점은 모두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는, 권위주의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높임 분명히 한 ‘축하드리다’도 인정일상의 언어에서는 요즘 이런 말을 쓴 글이 많이 사라졌다. 말글에 대한 언중(言衆)과 언론의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금일봉’은 상황에 따라 축하금, 격려금, 성금, 기부금, 위로금 등 구체적인 말로 쓰면 된다. ‘시달하다’는 전달하다, 권고하다 등 좀 더 쉽고 편한 말로 쓰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참고로, ‘축하드리다’ ‘감사드리다’란 말을 공대를 중복해 쓴, 부적절한 표현이란 주장도 있다. 이는 우리말 용법을 너무 엄격하게 다룬 데서 비롯된 지나친 규제 결과다. 예전에는 국립국어원에서도 중복적 공대를 피하는 입장(표준화법해설, 1992)이었다. 그러나 2011년 <표준언어예절>에서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와 함께 높임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 ‘축하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도 쓸 수 있는 표현으로 인정했다.
'치하'와 '경하', 그리고 '축하'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