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임신중지약 ‘미프진’ 허용 확대해야 하나
지난 7월 약물 낙태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는 윤용근 국민의힘 의원(맨오른쪽). 뉴스1


정부가 임신 9주 이하를 대상으로 임신 중지 약물인 ‘미프진’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지난 9월 발표했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7년 만에 나온 구체적 이행 방안이다. 그동안 관련 법 개정이 미뤄지면서 많은 여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물을 불법으로 구입해 복용하는 등 의료 사각지대에 내몰려 왔다.

이번 정부 방침은 시행 초기 2년간 병원에서만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도록 하고, 이후 경과를 봐서 약국 조제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프진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약물 도입 범위를 넓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과 생명 경시 풍조를 부추길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프진 허용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할지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찬성] 여성 건강권·자기 결정권 중요…불법 음성 거래 줄여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 동안 이어진 입법 공백은 여성들의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해 왔다. 법적 지위가 모호한 상태에서 임신 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은 불법으로 유통되는 미검증 약물에 의존하거나 위험한 시술로 내몰렸다. 미프진은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했고, 세계 100여 개국에서 약물적 임신 중지가 허용·시행되고 있다. 정부의 미프진 단계적 도입 계획은 뒤늦은 감이 있으며 오히려 허용 범위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시행 초기 2년간 병원 내 처방과 조제만 강제하는 ‘원내 조제’ 방침은 의료 접근성을 제한할 위험이 있다. 수술이 아닌 약물 복용을 통한 임신 중지는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병원 방문에 부담을 느끼는 미성년자나 지방 거주자, 신분 노출을 꺼리는 사람들이 적기에 치료받지 못하면 결국 다시 불법 음성 거래로 돌아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환자의 사생활 보호와 의료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약국 조제 전환이 필수적이다.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해야만 조제가 가능한 구조는 여성들에게 사회적 시선과 경제적 부담을 주게 된다. 의사의 정당한 처방을 바탕으로 일반 약국에서도 약을 원활히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만 실질적 의료 접근성이 확보된다. 임신 9주 이하 제한도 보다 현실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국가는 행정적 문턱을 높이는 것보다는 임신 여성이 안전하게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반대] 태아 생명권 보호해야…불완전 유산 등 부작용도 커임신 중지 약물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훼손하고 생명 경시 풍조를 부추길 우려가 크다. 모자보건법 등 관련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약물 도입부터 서두르는 것은 본말이 뒤바뀐 일이다. 종교계와 시민사회가 지적하듯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임신 여성이 경제·사회적 어려움 때문에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약물 복용의 문턱을 지나치게 낮추면 임신 중지를 피임의 연장선으로 가볍게 인식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약물의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 미프진은 복용 후 불완전 유산이나 과다 출혈, 패혈증 같은 치명적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의료계에서도 약물 투약 후 상태를 지속해서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의 직접적이고 철저한 통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약국 조제로 확대되거나 유통 관리가 허술해질 경우 오·남용으로 인한 건강 우려가 있다.

또 의사의 소신에 따른 진료 거부권이나 정당한 처방 거부권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허용 범위만 무분별하게 넓히는 것은 의료 현장에 커다란 혼란과 법적 부담을 주게 된다. 의료진이 도덕적 가치관이나 전문적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침해받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유통 채널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물론 약물 오·남용 시 발생할 위험성을 확실하게 차단할 수 있는 법적 지침이 정립되기 전까지 제도 도입과 범위 확대에 신중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료 현장의 안전장치를 공고하게 마련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생각하기] 약물 오남용 대책에 대한 논의 이뤄져야미프진 도입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약물 허용 여부를 넘어 여성의 건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있다. 더 이상 진영 논리나 찬반 대립 속에 입법 공백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국회는 의료 현장의 목소리와 각계 우려를 충분히 수렴해 명확한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약물 도입이 자칫 생명 경시로 이어지지 않도록 철저한 오·남용 방지 대책을 세우는 동시에, 여성들이 안전한 의료 체계 안에서 원활하게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 벼랑 끝에 몰린 여성들을 지원하는 육아 안전망 확충도 필요하다. 찬반 양측의 건설적인 대화를 바탕으로 정교하고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