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년 전 화석이 푼 비밀
식물이 육지에 자리를 잡은 건 지금으로부터 약 5억 년 전이다. 동물이 육지에 처음 올라온 건 그보다 1억3000만 년이나 늦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육상동물은 올라오자마자 발밑에 지천으로 깔린 식물을 먹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최초의 육상 척추동물은 수천만 년 동안 풀 한 포기 건드리지 않고 서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소나 말처럼 풀만 먹고 사는 초식동물은 언제, 어떻게 등장했을까? 최근 그 진화의 결정적 흔적이 3억700만 년 전 화석에서 발견됐다.
미국 시카고 필드자연사박물관이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팀은 고해상도 마이크로CT 기술을 이용해 이 동물의 두개골을 스캔했다. 그 결과, 티라노로터의 입안에는 이빨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일반적인 이빨 줄 외에도 입천장과 아래턱에 여러 개의 작은 이빨이 뼈 판처럼 촘촘히 배열돼 있었다. 이는 훗날 등장하는 초식 공룡에서 흔히 발견되는 구조다. 위아래 뼈 판이 서로 맞물려 문지르며 질긴 식물성 물질을 갈아내는 맷돌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이 동물이 지구 역사상 최초로 ‘샐러드’를 즐긴 초기 척추동물 중 하나였을 것으로 결론내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식물세포에는 동물세포와 달리 ‘세포벽’이라는 구성 성분이 있다. 세포벽은 셀룰로스로 이뤄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섬유질’이라고 부르는 물질이다. 셀룰로스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셀룰레이스라는 효소가 필요하다. 이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는 일부 세균, 곰팡이, 곤충을 포함한 극소수의 무척추동물만 지니고 있다. 현재 지구상의 그 어떤 육상 척추동물도 자신의 힘으로는 이 효소를 만들어낼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풀을 소화할 수 있게 된 걸까.
답은 이들의 첫 주식이던 곤충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곤충과 같은 절지동물은 이미 식물을 먹고 있었다. 억센 식물을 잘게 으깨는 튼튼한 턱과 셀룰로스를 분해하는 효소, 장내 미생물까지 삼박자를 갖춘 절지동물은 완벽한 ‘식물 소화 공장’이었다. 초기 육상 척추동물은 직접 식물을 소화할 수 없었지만, 식물을 먹고 자란 곤충을 잡아먹음으로써 간접적으로 식물의 영양분을 흡수하고 있었다. 실제로 연구팀은 티라노로터 또한 완전한 채식주의 동물은 아니었고, 곤충이나 작은 절지동물도 먹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결정적 변화가 일어났다. 곤충을 먹으면서 이들의 소화관에 살던 셀룰로스 분해 미생물이 척추동물의 장 속에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소가 음식을 되새김질하는 것도 결국 이 미생물들이 셀룰로스를 분해할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행동이다. 그 시스템의 씨앗이 3억 년 전 곤충을 먹는 과정에서 조용히 심어졌다.
이빨과 턱관절 역시 곤충 덕분에 진화했다. 초기 육식동물의 이빨은 먹이를 찌르는 날카로운 송곳 모양이었다. 하지만 단단한 곤충의 외골격을 깨부수기 위해 턱 힘이 강해지고 치아가 튼튼해지면서 뜻밖의 진화적 발판이 마련됐다. 곤충을 부수기 위해 발달한 이빨 구조가 우연히 주변의 질긴 식물을 으깨고 가는 데도 탁월한 성능을 발휘한다는 것이 자연선택을 통해 증명된 것이다. 위아래로만 닫히던 턱관절도 이때 맷돌처럼 좌우로 비빌 수 있도록 변해갔다. 결국 먹이였던 곤충은 초기 척추동물에게 식물 소화를 위한 하드웨어(이빨)와 소프트웨어(장내 미생물)를 함께 넘겨준 셈이다.
연구팀은 티라노로터의 발견을 계기로 비슷한 계통의 화석들을 재조사했다. 그 결과, 3억1800만 년 전의 화석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확인됐다. 이는 육상 척추동물이 상륙한 직후,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다양한 초식동물 형태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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