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인문논술을 위한 독서-<당신은 자유로운가>편
인문논술을 위한 독서-<당신은 자유로운가>편
자유의지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반면 결정론은 세상의 모든 사건이 이전의 원인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둘은 정면으로 부딪칩니다. 만약 나의 선택이 원인-결과의 사슬을 따라 이미 정해진 것이라면, ‘내가 선택했다’는 말은 환상일지 모릅니다.
이 물음이 인문논술에서 자주 다뤄지는 데엔 분명한 까닭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두 기둥인 법과 교육이 모두 ‘인간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도, 학생을 타이르고 가르치는 것도, 그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다는 믿음이 있어야 성립합니다. 그 믿음이 무너지면 저자의 표현처럼 ‘소행성 충돌’에 맞먹는 충격이 닥칠 겁니다. 게다가 뇌과학과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이 물음은 한층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뇌 영상으로 한 사람의 충동조절 기능에 문제가 있음이 밝혀진다면, 그에게 정상인과 똑같은 책임을 묻는 것이 공정한 일일까요?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차이이런 문제를 차근차근 짚어주는 책이 철학자 김남호의 <당신은 자유로운가>입니다. 저자는 어느 한 입장을 정답으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인류가 아직 풀지 못한 이 난제를 둘러싼 논쟁을 정리해 독자에게 ‘생각의 재료’와 ‘논쟁에 뛰어들 입구’를 건네주려 합니다. 종교와 철학은 물론이고 신경과학, 챗GPT와 휴머노이드까지 끌어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다는 믿음을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합니다.
책의 1장은 왜 이것이 문제인지를 강렬한 사례들로 보여줍니다. 저자는 극단적으로 다른 인물들을 나란히 세웁니다. 스승을 배반한 갸롯 유다와 부인한 베드로, 콜카타의 성녀 마더 테레사와 ‘축구의 신’ 메시, 그리고 살인마들입니다. 예수가 모든 것을 아는 신이어서 두 제자의 선택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그 선택은 정해진 사건이었을 텐데 우리가 유다의 배반을 탓할 수 있을까요? 마더 테레사의 공감 능력과 메시의 발재간이 그들이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타고난 조건이라면, 그것을 부러워하거나 그렇게 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자는 다소 짓궂게 권합니다. 차라리 빅뱅을 탓하라고요.
책임 문제를 가장 예리하게 드러내는 것은 세 살인 사건의 대비입니다. 몽유병 상태에서 장인, 장모를 공격한 파크스는 의식이 말 그대로 ‘전원이 꺼진 상태’였기에 무죄가 인정되었습니다. 전두엽 손상이 확인된 박춘풍과, 두뇌 손상이 전혀 없는 테드 번디의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두 사람 모두 의식이 멀쩡했고 범행 의도도 분명했으니까요. 여기서 저자는 결정적인 사고 실험을 던집니다. “사건 직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이들에게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열려 있을까?” 그리고 더 불온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만약 범행의 진짜 원인이 그들의 의식이 아니라 두뇌 작용이라면?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 그 선택을 일으킨 진짜 원인은 두뇌의 신경 상태(수직적 결정)일까요, 아니면 ‘이렇게 하고 싶다’는 내 마음(수평적 결정)일까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철학자 김재권은 신경 상태라는 물리적 원인만으로 이미 충분한 설명이 된다면 거기에 마음이라는 원인이 따로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봅니다. 손을 드는 행동의 원인이 두뇌 신호로 전부 설명된다면 ‘들고 싶었다’는 마음은 행동을 일으킨 원인이 아니라 그저 곁따라 나타난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이죠. 결정론이 막연한 직관이 아니라 이토록 빈틈없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을 학생 여러분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흄 “인과관계란 습관의 관념”3장으로 넘어가면 이 논쟁의 근세 출발점이 펼쳐집니다. 홉스와 흄은 영리한 절충을 시도합니다. 폭포의 물이 아무 방해 없이 떨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자유롭게’ 떨어진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그 낙하는 중력이라는 원인에 따른 ‘필연’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강요 없이 자기 욕구대로 행동하면 비록 그 욕구가 원인들에 의해 생겨났더라도 자유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정되어 있어도 자유일 수 있다는 이 입장을 양립론이라 부릅니다.
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그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원인과 결과’라는 것이 정말 세상에 존재하는지를 의심합니다. 번개가 친 다음 나무에 불이 붙는 장면을 봤다고 해봅시다. 우리는 “번개가 불을 일으켰다”고 말하지만, 우리 눈에 실제로 들어온 것은 번개라는 장면과 불이라는 장면, 두 가지뿐입니다. ‘일으켰다’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본 적은 없습니다. 흄은 두 사건이 늘 잇따라 일어나는 것을 반복해서 겪다 보니 우리 마음이 둘 사이에 연결 고리가 있다고 믿게 된 것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즉 인과란 세상에 객관적으로 박혀 있는 법칙이 아니라, 인간의 습관이 만들어낸 관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책임은 어떻게 물을 수 있을까요? 흄의 답은 이렇습니다. 누군가 반려동물을 학대하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성품이 어떤지 판단하게 됩니다. 그 판단에 근거해 그의 행동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죠. 관찰을 통해 한 사람의 행동과 성품 사이의 연결을 읽어내는 것, 그것이 책임의 근거가 됩니다. 칸트가 흄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기억해 두면, 비교 논제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습니다. 철학자들의 소신그렇다면 학생 여러분은 무엇을 들고 시험장에 들어가야 할까요. 저자가 정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좋은 출발점입니다. 어느 철학자를 추종하기보다, 그들이 각자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홉스와 흄은 일상의 도덕적 책임을, 에드워즈는 신의 주권과 인간 책임의 양립을, 니체는 힘과 자기 극복을 지키려 했습니다. 같은 자유의지를 논하면서도 무엇을 지키고 싶은가에 따라 결론이 정반대로 갈린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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