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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김하경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김하경 한국경제신문 기자
돈 쓸 곳은 많은데 부족한 것같이 느껴지죠? 계획에 없던 지출이 생기면서 얇아진 지갑에 난처해집니다. 사실 국가도 비슷해요. 우리가 용돈이 모자라면 부모님 등에게 더 받아 충당하는 것처럼, 정부도 나라 살림을 꾸려가는 가계부에 대한 일종의 비상금 통장이 있거든요. 이를 ‘추가경정예산’(추경)이라고 하는데, 국가 예산을 ‘새로고침’하는 겁니다.

생글생글에서 여러 번 짚어봤듯, 지난 2월 말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로 전쟁이 일어났잖아요. 전 세계 주요 석유 생산지인 중동 지역의 갈등으로 공급이 불안해지면서 기름값이 크게 오른 여파로 국내 산업 역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이재명 대통령이 중동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고 민생 위기를 겪는 국민도 돌보겠다는 취지에서 추경안을 마련한 것이죠.

그렇게 나온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이 지난 10일 국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본회의에서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일부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어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추경에 대해 “회사는 어려워지는데 사장이 회식비만 쏘는 꼴”이라고 비판했죠.

이번 추경안은 이재명 정부 들어 두 번째인데요,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2차 추경론’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에는 반도체와 증시 호황에 따른 초과 세수 전망 덕분에 국채 발행 없이 지출 확대가 가능했거든요. 하지만 정말 2차 추경이 현실화한다면 추가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그래서 재정 당국은 날 선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추경은 꼭 필요한 때, 알맞은 곳에 써야만 당초 목표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내 물가를 더 자극한다면 추경으로 국민을 돕겠다는 목적도 결국 소용없어지고, 오히려 시장의 불안감을 키워 추경의 본래 취지를 훼손할 수 있거든요. 국가의 공식 비상금 통장 격인 추경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요. 추경의 두 얼굴…경제 응급처치 vs 미래 부담
선제적 대응 필요하지만 자주 하면 '폭탄'돼요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가 제출한 26조2000 규모의 ‘전쟁 추경안’이 통과됐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가 제출한 26조2000 규모의 ‘전쟁 추경안’이 통과됐다. 연합뉴스
정부는 매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단위로 나라의 수입과 지출 계획을 짭니다. 한 해 동안 국가 재정의 뼈대가 되는데요, 이를 ‘본예산’이라고 해요. 재정 당국은 본예산을 편성할 때 예비비도 준비해놓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긴급하고 중대한 일이 생겨 예비비로 대응할 수 없는 경우 예산의 씀씀이를 변경하죠. 이렇게 추가로 투입하는 비상 자금을 추가경정예산(追加更正豫算, supplementary budget), 줄여서 ‘추경’이라고 해요.

각 부처에서 추가로 필요한 예산을 재정경제부에 요청하면 타당성을 검토해 추경안을 짭니다. 이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요. 추경안이 국회로 넘어가면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1차 심사를 하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에서 종합심사를 진행합니다. 심사를 마친 추경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면 국회의원들의 투표를 거쳐 의결되는데요, 예산이 법적으로 확정되는 거죠. 이후 정부는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추경 자금을 실제로 집행하게 됩니다.

단일예산 원칙 깨는 예외

우리 재정 운용의 기본 원칙은 단일예산입니다. 국가의 모든 수입과 지출은 하나의 예산서, 즉 본예산 안에 모두 포함돼야 한다는 뜻이죠. 정부가 예산서를 여러 개로 쪼개놓으면 전체 나라 살림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돈이 어디로 새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재정의 투명성을 위해 장부를 하나로 묶어서 쓰는 겁니다.

하지만 추경은 예외입니다. 본예산이 이미 확정돼 실행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지출을 위해 추경이라는 예산서를 더 만드는 거잖아요. 1차, 2차 추경을 한다면 그해의 예산서는 2개, 3개로 늘어나게 되겠죠. 이듬해 정부가 예산을 당초 목적에 맞게 잘 썼는지를 확인하는 결산 작업을 할 때도 처음 정한 본예산이 아니라 추경까지 모두 합친 총예산을 기준으로 성적표를 매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추경은 단일예산의 원칙을 합법적으로 깨뜨리는 대표적 예외 장치입니다. 추경의 근거가 되는 건 헌법 제56조인데요, “정부는 예산에 변경을 가할 필요가 있을 때는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거든요. 얼핏 헌법 조항만 보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추경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만약 정부가 무분별하게 추경을 편성한다면 국가 재정이 낭비되고 빚도 늘어날 겁니다.

재해 등 편성 요건에 제한

그래서 일종의 제동장치가 있습니다. 국가재정법 제89조는 추경을 편성하기 위한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해요. 전쟁이나 재해, 경기침체 같은 경제 상황 변화, 법령에 따른 지출 발생 등입니다.

추경은 이미 성립된 예산의 변경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의 변경을 위한 수정예산과는 구별됩니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국정 운용의 목표로 삼고 임기 5년 동안 추경을 10차례나 편성했어요. 당시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 현상이었기에 불가피한 면이 있었죠.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 직후 소상공인들의 코로나19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59조4000억원의 추경안을 편성한 이후에는 본예산 중심의 재정 운용을 이어갔습니다.

순기능 많지만 지나치면 안 돼

추경은 돌발적인 국가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가장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수단으로 꼽힙니다. 경기침체가 우려될 때 추경을 통해 시장에 선제적으로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요. 정부가 돈을 풀면 가계지출이 증가하고 실업률이 하락하는 등 단기적 순기능이 크거든요. 내수를 진작하고 성장률 하락 폭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또 이번 ‘전쟁 추경’처럼 경제 위기 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소상공인이나 저소득층을 직접 지원해주죠. 1년 단위인 본예산의 경직성도 어느 정도 보완해줍니다.

하지만 대규모 추경이 지나치게 잦아지면 부작용도 생깁니다. 추경 재원의 대부분은 적자국채, 즉 국가가 발행하는 빚문서를 통해 조달되거든요. 과도한 국채 발행은 국가의 부채 규모를 늘리고 신용등급을 하락시킬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시장은 정부의 재정 예측 및 운용에 의문을 가질 겁니다. 막대한 정부 자금이 자주 풀리면 물가상승, 즉 인플레이션도 부추길 수 있겠죠.

무엇보다 추경을 위해 찍어낸 적자국채는 결국 내일의 세금으로 돌아옵니다. 지금 기성세대가 빌려 쓴 돈은 훗날 미래세대가 이자까지 떠안아야 할 청구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추경은 ‘비상용’ 소화기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에도 습관적으로 소화기를 터뜨리다 보면, 정작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곳간이 텅 비어 있을 수 있으니까요. NIE포인트 1. 단일예산의 원칙에 대해 설명해 보자.

2. 국가재정법상 추경을 편성할 수 있는 요건을 알아보자.

3.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직접적 요인은 뭘까.

김정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