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파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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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뮈엘 베케트가 47세이던 1952년에 출간되었다. 이듬해 1월 5일 파리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상연되자, 무명작가이던 그의 위상이 달라졌다. 이 연극은 폭발적 인기를 누렸고, 파리에서만 300회 이상 선보였다. 지금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50여 개국에서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도, 신일까 빵일까 자유일까?
미국 초연 때 연출자 앨런 슈나이더가 “고도는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베케트가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에 썼을 것”이라고 답한 일화가 유명하다. 작가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고도에 대해 관객들은 “신이다” “빵이다” “자유다” “희망이다”라며 끝없이 추측한다.

사뮈엘 베케트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시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체의 인터뷰도 거절했다. 이후 1989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삶의 태도는 엄격한 청교도 가정과 적막한 환경 속에서 보낸 유년 시절과 관련이 있는 듯 보인다. 아일랜드 사람인 베케트는 작품을 영어, 프랑스어로 번갈아 가며 썼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처음에 프랑스어로 쓰고 이어서 영어로 다시 기록했다. 베케트는 “모국어의 고정된 첫 번째 의미에서 벗어나 언어의 정수에 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아무것도 안 하는 고도 씨<고도를 기다리며>는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 두 남자의 무의미한 듯 의미 있는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는 작품이다. 희곡을 읽으며 베케트가 말한 ‘언어의 정수’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독서 포인트다.

이 작품은 2막으로 구성되는데, 1막에서 고고와 디디는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린다. 2막은 고도가 끝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대화 사이사이에 흘러나오는 정보로 고고와 디디가 50년 동안이나 붙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고고가 뒤랑스강에 뛰어들었을 때 디디가 건져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둘은 함께 있으면서도 “우린 서로 떨어져 있었던 편이 낫지 않았을까?”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되거들랑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지”라면서도 둘은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 날 소년이 와서 “고도 씨가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하랬어요”라고 말한다. 그토록 고도를 기다렸으면서도 둘은 소년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형은 뭐 하는지만 질문한다. 소년이 “고도 씨한테 가서 뭐라고 할까요?”라고 묻자 디디는 “그냥 우리를 만났다고만 하려무나”라고 답한다.

2막에 소년이 다시 나타나고, 1막에서 만난 포조와 럭키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1막과 전혀 다른 상황을 연출한다. 어제 온 걸 기억하지 못하는 소년은 고고와 디디에게 “고도 씨가 내일 온다”고 말한다. 고도가 뭘 하고 있는지 물었을 때 소년은 “아무것도 안 해요”라고 하지만 둘은 별 반응이 없다.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것, 고도가 오기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온갖 짓거리를 다해가며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다.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면서,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상관없이 시간을 잘 흘려보내는 걸 다행으로 여긴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부조리연극이라고 이름 붙인 마틴 에슬린은 베케트를 ‘유쾌한 허무주의자’라고 불렀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베케트는 프랑스 친구들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도우면서 작품을 썼다. 비극적인 어두움이 깔린 가운데서도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두 남자를 그린 <고도를 기다리며>에 당시 상황이 녹아 있다고 짐작하기도 한다.

20세기 후반 서구 연극사의 방향을 돌려놓은 부조리극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베케트는 “이 작품에서 신이나 철학, 사상을 찾지 말고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집에 돌아가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라고 말했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오래전 ‘반드시 읽어야 할 희곡’이자 ‘반드시 봐야 할 공연’이라고 해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봤다. 다시 작품을 접하면서 그저 즐겁게 웃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누구든 이 작품을 대하면 고도는 실재하는지, 혹은 관념이자 이상인지, 깊고 오묘한 상념에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