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극대노 vs 흐뭇? 광화문에 한글 현판 달자는 정부 [시사이슈 찬반토론]
광화문 현판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수십 년 이어진 ‘한자냐 한글이냐’ 논쟁이 아니다. 이번에는 ‘1+1’ 논란이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올해 초 한글 현판을 추가하는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광화문 3층 누각 처마에 설치된 기존 한자 현판은 그대로 두고, 그 아래에 한글로 된 현판을 추가로 달자는 제안이다. 광화문 현판 논란은 201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글로 직접 쓴 현판을 철거하고 한자 현판으로 교체하면서 시작됐다. 한글과 광화문의 상징성을 내세우는 쪽과 문화유산의 원형 보존을 주장하는 쪽이 팽팽히 부딪치면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실패해왔다. 문체부 제안은 문화재 원형을 지키면서 한글을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충족하는 절충안인 셈이다. [찬성] 문화유산 넘어 국가 정체성 문제…나라 상징에 당연히 한글 있어야 광화문 한글 현판 설치는 단순한 유물 복원을 넘어선 국가 정체성의 문제다. 한글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를 상징하는 공간인 광화문에 한자만 있고, 한글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은 상식적이지 않다. 한글 현판을 통해 우리가 한자 사용 국가라는 국제적 오해를 없애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문화적 자주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문화유산의 범주에서 원형 보존이 원칙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다는 것은 더 넓은 차원의 국가적 상징성을 고려해야 한다. 문화유산도 어느 시점의 진정성을 선택해 복원하는 창조적 해석이 가능하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례는 해외에도 많다. 중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은 1859년 복원 과정에서 새로 설계한 작품이다. 루브르 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는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상징이 됐다. 전통과 현대적 가치가 어우러질 때 오히려 새로운 문화적 가치가 생겨날 수 있다.

국가 이미지 제고 효과도 있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K문화의 근간에는 한글이 있다. 경복궁은 한글이 태어난 곳이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고뇌하며 한글을 만든 경복궁 정문에 한글 현판을 달아 K컬처의 근간인 한글 탄생지라는 서사를 완성할 수 있다. 경복궁 연간 관람객 688만여 명 중 외국인이 40%(278만 명)를 차지한다. 한글 현판을 단다면 한국 문화의 고유성과 우수성을 더욱 잘 알리고 한글이라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광화문은 과거 한자 문화를 무의미하게 세습하고 있는 박제된 유산이다. 21세기의 시대 정신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글 현판 설치는 역사 왜곡이 아니라, 후손의 자각과 시대정신을 더해 역사를 완전체로 만드는 과정이다. 한글 현판은 문화관광 콘텐츠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반대] 시류 따른 유산 변형은 역사 왜곡…경복궁 복원의 진정성 훼손할 것 문화유산은 우리가 물려받은 과거의 흔적이다. 시류에 따라 문화유산을 변형하는 것은 과거의 물질 증거를 조작하는 행위로, 역사를 왜곡하고 옛사람의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다.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면 경복궁 복원의 진정성이 훼손될 것이다. 경복궁은 고종 중건 당시를 기준으로 1990년부터 2045년까지 지속적으로 복원하는 과정에 있다. 어떤 고증 기록에도 없는 한글 현판을 더하는 순간 ‘원형에 최대한 가까운 복원’이라는 기준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면 국가 유산 보수와 복원의 당위성조차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

해외에서도 과거의 언어와 표현 방식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사례가 많다. 영국 왕실 문장에는 프랑스어가 적혀 있다. 1066년 노르만 정복 이후 300년간 영국 왕실 언어가 프랑스어였지만, 영국은 그 흔적을 굳이 지우지 않았다. 유럽 성당의 벽면에 라틴어 문구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듯 한자 현판도 공동 문어(文語)로서 한자가 점유해온 역사를 증명하는 것이다.

현재의 한자 현판은 오류를 바로잡아가며 원형에 다가가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여기에 한글 현판을 추가하는 것은 원형에서 멀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한자 현판 아래 한글 현판을 덧붙이는 것은 단순한 발음기호 표기에 불과하다. 오히려 한글의 주체적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경복궁과 광화문은 일제 강점기와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며 정치적 목적에 따라 그 상징이 변형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만약 현판을 또다시 바꾼다면 이는 광화문이 가진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깎아 먹는 일이 될 것이다. 과거가 당시 사회와 문화를 스스로 증언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다만 한글 현판 논의를 문자 병기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상징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넓혀 볼 필요가 있다. √ 생각하기 - 광화문 상징성·특수성 고려…전통·현대 조화시켜야
세종대왕 극대노 vs 흐뭇? 광화문에 한글 현판 달자는 정부 [시사이슈 찬반토론]
광화문 현판 논쟁은 문화유산 복원 원칙과 국가 정체성 확립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사안이다. 이는 광화문이라는 공간의 특수성과 상징성에 기인한다. 광화문은 조선 왕조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자, 근현대사의 굴곡을 관통해온 현장이기 때문이다. 숭례문 등 다른 문화유산과 달리 유독 광화문 현판에서만 수십 년째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이유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자냐 한글이냐’를 떠나 역사적 유산을 어떻게 계승하고 현재의 가치와 조화시킬 것인가라는 본질적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원형 복원이라는 원칙만큼 문화유산에 투영된 고유한 가치를 확산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경복궁의 역사성, 광화문의 공간적 의미까지 고려해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정부는 올해 100주년을 맞는 한글날에 맞춰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국민과 전문가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야 한다.

양준영 논설위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