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측정은 근대의 산물
초기 시계는 사치품…개인 소지 어려워
산업화로 정확한 시간 측정 중요해져
제국주의로 시간 세분
대영제국 확장과 함께 시간 기준 마련돼
자국 수도 아닌 英 그리니치가 중심
철도망이 통일한 시간
거리 개념 좁아지며 전국 시간 통일 진행
전신망 보급돼 전세계 시간도 같이 움직여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는 근대의 산물이었다. 당연히 초기에는 사치품 취급을 받았다. 1797년 영국에선 모든 시계에 세금이 부과됐다.초기 시계는 사치품…개인 소지 어려워
산업화로 정확한 시간 측정 중요해져
제국주의로 시간 세분
대영제국 확장과 함께 시간 기준 마련돼
자국 수도 아닌 英 그리니치가 중심
철도망이 통일한 시간
거리 개념 좁아지며 전국 시간 통일 진행
전신망 보급돼 전세계 시간도 같이 움직여
당시 영국의 세금을 걷는 관리들이 열심히 일한 덕에 조세 감정인의 신고서는 영국 사회에 시계가 얼마나 보급돼 있었는지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 피블스란 조그만 마을의 조세신고에서는 “읍내에는 시계(clock, 괘종시계나 탁상시계)가 15개, 은제 회중시계가 5개 있으며, 금제 회중시계는 없다. 피블스 읍내와 시골, 교구를 통틀어 시계는 105개, 은제 회중시계는 112개, 금제 회중시계는 35개 있다”는 식으로 꼼꼼하게 세금 부과를 위한 기록을 남겼다.
14~15세기까지만 해도 개인이 시계를 소유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기계식 시계가 매우 비쌌기 때문에 공공부문에서 활용했다. 이에 따라 1356년 볼로냐의 시청사에 공공 시계를 건립하기 위해 20세 이상 모든 시민에게 18페니의 세금이 부과됐다. 1386년 프랑스 국왕은 리옹 시의회가 공공 시계 건립을 위해 부담금을 징수하는 것을 허락했다.
영국을 기점으로 하는 지리적 개념도 등장했다. 아시아 대륙은 대영제국과의 거리에 따라 근동(近東, the Near East)과 중동(中東, the Middle East), 극동(極東, the Far East)으로 구분됐다. 이 같은 영국 중심의 기준은 시간 측정에도 적용됐다. 영국 그리니치의 시간이 전 세계 시간을 기록하는 원점이 돼 지금도 적용되고 있다(GMT).
사실 서양에선 13세기 말 시계라는 기계장치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시계는 대충 교회의 예배 시간을 알리는 데 활용됐을 따름이다. 시계를 가리키는 영어에서 시계를 의미하는 ‘clock’이라는 단어부터 종(鐘)을 의미하는 독일어의 ‘Glocke’, 프랑스어의 ‘cloche’와 연관된 것이다. 교회의 주요 일과 시에 종을 치던 습관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이후 시계 보급이 확대되고 시간을 균질적으로 나누게 됐다. 낮이 긴 여름이나 낮이 짧은 겨울이나 동일한 시간대로 구분되면서 전국의 시간을 통일하고 그 기준을 잡으려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정확한 시간은 측정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여전히 사람들에게 필요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자연의 주기에 따른 유동적 시간 기준에 따라 살아갔다. 19세기 중반까지 마을마다 독자적인 시간 개념이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은 별과 태양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
19세기 이전에는 정확한 시간을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었기에 시계에 분침이 없었지만, 1880년대에는 초 단위까지 정확히 맞출 것을 요구할 정도로 사회가 급변했다. 경영자와 관리인, 노동자는 점점 더 시계와 호각으로 규율되는 노동 일과에 묶여버렸다. 시간 엄수가 장려됐고, 늦으면 벌금이나 해고로 벌을 받았다. 시간은 절약해야 하는 대상이 됐고, ‘시간이 돈’인 세상이 됐다.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 주인공이자 편집증적으로 시간에 집착하는 인물로 묘사된 포그 씨는 이 같은 배경이 참고가 됐다.
이 상황을 가속한 것은 철도의 등장이었다. 1830년 영국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에 최초의 여객 철도가 들어섰고, 이후 철도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1836~1837년에 영국에서만 총 44개 회사가 총연장 2410㎞의 사업을 승인받는 철도 붐이 일었다. 1845~1847년에는 626개 회사가 승인받은 철도 건설 총연장이 1만5340㎞에 달했다.
철도 붐을 타고 기차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거리 개념이 좁혀졌고, 전체 시간망을 통일하는 것도 시급해졌다. 결국 영국의 철도 회사들은 런던 시간을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철길을 따라 늘어선 전신을 이용해 전국에 시간을 알렸다.
다른 유럽 국가도 영국의 사례를 따라갔다. 프랑스에선 열차들이 파리보다 5분 늦은 루앙 시각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파리 기차역 안에 있는 시계는 바깥에 있는 시계보다 5분 늦게 맞춰졌다.
하지만 세계 각지의 혼란은 한동안 계속됐다. 대서양 건너 브라질 상파울루역에는 시계가 3개 있었는데 하나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도착하는 기차용이었고, 하나는 상파울루주 내에서만 운행하는 열차용, 세 번째는 산토스항에서 오는 기차의 시간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영토가 너무 넓었던 미국은 자국만의 시간대를 따로 정했다. 1870년대 미국에는 서로 다른 지방 시간대가 300개, 철도시가 80개 있었다. 이에 따라 버펄로역에는 시간이 각각 다른 시계가 3개 있었고, 피츠버그역에는 6개의 다른 시계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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