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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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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정부는 원유를 정제해 얻는 나프타의 수출을 향후 5개월간 전면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석유는 수입하지만, 석유화학제품의 원료가 되는 나프타는 국내 생산량의 11%가량을 수출합니다. ‘원유 정제능력 세계 5위’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죠. 이 수출제한 조치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려면 석유의 정제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산업의 쌀’ 수출국, 한국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경유 등을 뽑을 때 함께 나오는 투명한 액체입니다. 이를 분해해 에틸렌·프로필렌·부타디엔·벤젠·톨루엔 등 기초 유분을 얻을 수 있죠. 기초 유분은 플라스틱·섬유·의약품 등의 원료가 됩니다. 예를 들어, 에틸렌은 폴리에틸렌(PE)과 폴리염화비닐(PVC)로 만들어져 플라스틱 생산에 투입됩니다. 프로필렌은 폴리프로필렌(PP)과 아크릴로 가공돼 섬유와 용기, 가전제품의 원료로 쓰입니다. 부타디엔은 합성고무, 벤젠은 합성섬유의 원료입니다. 이처럼 나프타는 ‘산업의 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상 상황에서 정부가 물량 통제를 하는 겁니다.메이저·OPEC의 ‘석유 정치’다음으로 국제원유 시장을 움직이는 ‘큰손’들을 알아야 석유 경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엔 ‘석유메이저’라 불리는 거대 석유 자본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있습니다. 석유메이저는 다른 말로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라고 합니다. 20세기 이후 세계 석유 생산의 85% 이상을 지배해온 석유 대기업이 엑슨모빌·셸·BP·토탈에너지·셰브론 등 7개로 압축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석유 시추에서 수송·정제·판매에 이르는 가치사슬(value chain)을 모두 장악하고 있습니다. 경영학에선 이를 ‘수직 통합(vertical integration)’ ‘수직 계열화’라고 하는데요, 이는 막강한 시장 지배력의 원천이 됩니다. 유가를 산유국이 아닌 이들 메이저가 정할 정도죠.

이른바 ‘석유 정치’가 벌어지는 곳은 산유국 협의기구 OPEC입니다. 자신들의 이해와 필요에 따라 석유 생산량을 조절하는데, 목소리를 단일하게 내지 못하는 게 취약점입니다. 같은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수니파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은 OPEC 내에서 걸핏하면 대립합니다. 유가 급락을 막기 위해 감산(생산량 감축)에 합의할 때면 양국은 “왜 우리가 더 많이 줄여야 하느냐”며 으르렁거립니다. 사우디는 석유 시장 점유율을 지키려 하고, 이란은 서방의 제재로 억눌려 있는 원유 생산량을 회복하려 하기 때문이죠. 2016년 이후로는 러시아를 포함한 OPEC 플러스(+)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계 산유량의 약 40%를 조율합니다. 의견이 맞을 때도 있습니다. 2014년과 2020년 OPEC은 의도적으로 석유 생산량을 늘려 유가를 폭락시킵니다. 지하 암석에서 뽑아내는 셰일오일로 미국이 세계 1위 석유 생산국이 되자 미국 셰일오일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증산에 나선 겁니다. 이 여파로 2014년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에서 30달러대까지 급락했습니다.석유 경제의 전환, 가능할까화석연료에 기반한 석유 경제가 이제 새로운 에너지원에 길을 내어줄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정도의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기존의 석유 경제는 에너지 기술의 발전, 자본의 독점, 전쟁의 촉발, 국가 간 밀약 등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결과물입니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연료 교체가 아니라, 문명을 떠받치는 소재·식량·금융·물류 시스템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현대를 ‘플라스틱 문명’이라고 할 정도인데요, 그렇다면 플라스틱을 무엇으로 대체해야 할까요? 석유 기반의 비료 없이 80억 세계 인구를 어떻게 먹일 수 있을까요? 페트로달러 이후 세계 금융 질서는 어떻게 재편될까요? 이런 과제까지 포함하는 에너지 전환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 발 딛고 선 석유 경제를 먼저 잘 이해해야 하겠죠.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NIE 포인트1. ‘석유 정치’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보자.

2.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이 구조조정 중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3. 미국·이란 전쟁이 석유 경제의 변화를 몰고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