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의 숨겨진 메커니즘
한 유전자가 딱 한 가지 특징만을 결정한다고 믿는다면 크나큰 오해다. 생명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유전자는 전구 하나를 껐다 켰다 하는 스위치가 아니라, 여러 전구가 연결된 복잡한 회로 시스템에 가깝다. 한 유전자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형질을 결정하거나 한 형질이 여러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 예로 동아시아인에게서 자주 관찰되는 EDAR 유전자 변이는 머리카락을 더 굵게 하고, 앞니를 삽 모양으로 만들며 땀샘 밀도를 높인다. 머리카락, 치아, 땀샘은 전혀 다른 기관이지만 발생 과정에서 같은 유전자 신호 경로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연구팀은 먼저 사람의 피부 샘플을 분석했다. 발에 나타나는 당뇨병성 궤양, 혈액순환 문제로 발생하는 다리 궤양, 흔히 욕창으로 알려진 압박성 궤양 등 오래된 상처 조직에서 피부 샘플을 채취한 뒤, 이 세포들에서 MC1R 유전자 신호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오래된 상처 조직은 건강한 피부에 비해 MC1R 유전자 신호가 약화돼 있었다. MC1R 유전자와 상처 치유 속도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는 결과였다.
연관성을 좀 더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동물실험도 진행했다. 연구팀은 MC1R 유전자에 변이가 생긴 붉은 털 생쥐와 MC1R 유전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검은 털 생쥐에 각각 4㎜ 길이의 상처를 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가 얼마나 낫는지 관찰했는데, 검은 털 생쥐는 7일째에 상처의 93%가 아물었지만 붉은 털 생쥐의 상처는 73%만 치유됐다.
또한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MC1R 유전자 변이 여부에 따른 면역세포 활동 차이를 확인했다. 상처가 생기면 면역세포는 먼저 손상된 조직을 제거하기 위해 염증반응을 일으키고, 점차 염증반응을 줄이면서 손상 부위를 복구한다. 그런데 MC1R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난 붉은 털 생쥐에서는 초기 염증반응이 과도하게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번 실험 결과로부터 상처 치유 과정에서 염증을 적절히 유도한 뒤 손상을 복구하는 데 MC1R 유전자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구를 이끈 제나 캐시 에든버러대 염증연구센터 연구원은 “MC1R은 면역세포, 피부 바깥층을 형성하는 세포, 흉터 조직을 만드는 세포, 혈관 내벽 세포 등 다양한 유형의 피부세포에서 발견된다”며 “이는 MC1R이 치유 과정의 여러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MC1R 유전자를 활용한 치료 가능성도 확인했다. 치유 속도가 느리고 염증이 심한 궤양이 나타난 생쥐에 MC1R을 활성화하는 약물을 적용해본 결과, 생쥐 상처가 극적으로 개선됐다. 면역세포가 만드는 염증이 줄어들었으며, 상처 부위에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개선되고 피부 바깥층이 회복됐다. 또한 만성 상처는 물론 건강한 피부에 난 작은 상처에도 MC1R 약물을 도포하자 혈류가 증가하고 림프액 흐름이 개선됐다. 즉 MC1R 유전자 변이로 붉은색 머리를 가진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서 피부 상처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제나 캐시 연구원은 “이번 연구로 MC1R이 상처 회복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이유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앞으로 MC1R을 활용한 연고가 상용화된다면 피부 자가 회복을 돕는 새로운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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