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수학은 정답만 좇는 과목이 아니라, 질문을 토대로 사고의 폭을 넓히고 불가능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찾게 해주는 탐험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탁에서 시작해 고등학교 교과서의 세제곱근 개념까지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수학이야말로 시대와 문화를 넘어 인간을 성장시키는 공부임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Getty Images Bank연필 한 자루와 눈금 없는 자, 그리고 컴퍼스만으로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요?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 제한된 도구로도 우리는 원을 그리고, 이등분선을 긋고, 정다각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작도(作圖)’라고 부릅니다. 작도는 단순히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엄격한 규칙과 제한 속에서 인간의 사고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훈련이며, ‘어떻게 할 수 있는가’와 동시에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탐구하는 지적 활동입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람들을 매혹시켜왔지만 결국 불가능하다고 판명된 세 가지 작도 문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델로스 문제’입니다.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제단을 2배로 만들라.”델로스섬의 아폴론 신전에서 내려온 이 신탁은 전염병으로 고통받던 시기에 제단을 2배로 키우면 신의 노여움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신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실제로 제단을 2배로 지어야 하는 구체적 과제로 받아들였고, 건축가들은 그 방법을 몰라 곤란에 빠졌습니다. 절망에 빠진 건축가들이 플라톤에게 갔을 때, 플라톤은 신탁이 그리스인들의 수학과 기하학에 대한 소홀함을 비판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종교적 의식을 넘어 수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야 하는 도전 과제가 되었습니다.
신탁은 정육면체 모양의 제단 부피를 정확히 2배로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흔히 하는 착각은 ‘각 변을 2배로 늘리면 되겠지?’인데, 그렇게 하면 부피는 2×2×2로 8배가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새로운 제단의 한 변의 길이를 x라고 할 때, x3=2 가 되어야 실제로 부피가 정확히 2배가 됩니다. 이는 곧 x=
(약 1.26…)라는 값을 작도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정사각형의 대각선을 이용하면
는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세제곱근은 다릅니다. 자와 컴퍼스로 얻을 수 있는 수는 제곱근을 반복해 얻는 수(이차 확장)에 한정되는데,
는 그 범주 밖에 있어 순수 작도로는 불가능합니다.
고대의 수학자 아르키타스는 입체적 구성을 통해 이 문제를 ‘기계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여기서 ‘기계적’이란 자와 컴퍼스만 쓰는 순수 작도가 아니라, 추가 장치와 연속적 운동을 허용한다는 뜻입니다. 아르키타스는 직각을 가진 T모양의 자를 여러 개 이어 붙이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1과 2 사이의 두 수 x, y를 찾아 1 : x = x : y = y : 2가 되도록 그림을 그리면, 이때 x3=2 가 되어 점 C의 좌표가
이 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특수한 장치나 도구를 미끄러뜨리는 움직임을 통해 해를 ‘찾아 맞추는’ 방식으로 세제곱근을 종이 위에 구현했습니다.
플라톤은 이런 기계적 방식이 순수한 수학적 사유를 흐린다고 비판했습니다. 그에게 수학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유의 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이러한 기계적 시도들도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수학적 사고력이 자라나고, 기존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성장하며, 문제 해결의 새로운 실마리를 찾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20세기 수학자 폴리아가 강조한 ‘문제 해결의 발견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델로스 문제는 결국
라는 수와 마주하게 합니다. 이는 고등학교 지수와 로그 단원에서 처음 배우는 수이기도 합니다.
가 1.41…인 것처럼,
는 약 1.26 정도의 값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단순히 교과서에 적힌 정의가 아니라, 실제적인 수의 크기와 연결된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고대의 신탁으로부터 출발한 문제가 오늘날 교과서 속 지식과 연결되며, 수학 공부가 단순한 시험 대비가 아니라 인류의 긴 탐구 과정에 동참하며 공부하는 경험임을 보여줍니다. 보통 학교 혹은 학원에서 정의에서부터 시작하는 수학 공부에 이러한 맥락에서의 이해가 동반되어 더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정현 푸른숲발도르프학교 교사 작도 불가능 문제는 수학이 단순히 계산만 하는 학문이 아니라,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부터는 할 수 없는가를 탐구하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흥미롭게도 이 문제들은 자와 컴퍼스가 아닌 다른 도구를 쓰면 불가능한 문제처럼 보여도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는데, 이는 일종의 교훈이나 격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또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 같은 주장을 하더라도 그 기반에 깔린 규칙 혹은 전제가 달라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서로의 주장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약간 비약해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