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못생긴 여자>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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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어떻게든 예뻐졌고 그래서 행복해졌다.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다” 같은 식상한 스토리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이 작품이 이탈리아 문단 최고의 등용문 이탈로 칼비노상의 2010년 수상작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1년 후 신인 작가의 작품은 이탈리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의 최종 후보작에 올라 놀라움을 줬다.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잘생긴 아빠는 나처럼 세상일 헤쳐나갈 줄 몰라"
<못생긴 여자>의 주인공 레베카는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못생겨 거의 괴물에 가까운 외모를 지녔다. 레베카를 둘러싼 어른들의 복잡한 사연과 합쳐지면서 소설의 깊이와 묘미가 더해진다.

준수한 외모의 산부인과 의사 아빠가 한눈에 반한 절세미인 엄마, 둘 사이에서 어떻게 괴물 같은 아이가 태어날 걸까. 다지증, 손가락이 5개 이상인 아이가 여럿인 집안의 딸인 엄마는 태어난 아기의 손가락이 몹시도 궁금했다. 다행히 아기는 5개의 손가락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아빠였다. 근친혼으로 유전병이 많던 유럽의 명문 가문들처럼 아버지 집안도 그로 인한 유전병이 있었던 것.꿋꿋하게 성장한 레베카결국 레베카는 엄마가 아닌 아빠에 의해 흉측한 외모를 갖고 태어났다. 아빠는 레베카를 돌볼 마달레나 아줌마를 고용하고, 결코 집 바깥으로 나가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임신했을 때부터 우울증을 앓은 엄마는 레베카를 낳은 뒤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가끔 명랑한 고모가 올 때만 활기가 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이 못생겼다는 사실을 인식한 레베카는 집안에서 조심조심 다니고, 문이 열린 방을 지나치며 엄마를 엿보는 가련한 아이로 자란다.

피아니스트인 고모가 어느 날 레베카의 예쁜 손을 보고 “피아노를 쳐야 할 손”이라면서 피아노를 가르친다. 발군의 실력을 나타낸 레베카는 아빠의 반대로 유치원도 컨서버토리도 다니지 못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레베카에게 오직 뚱뚱한 루칠라만이 친절하게 대해준다. 우울증을 이기지 못한 엄마는 레베카가 열 살 때 세상을 등지고, 자신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엄마지만 레베카의 마음은 쓸쓸하기만 하다.

어느 날 고모도 떠나면서 데 렐리스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데 렐리스 선생님 덕분에 콘서바토리도 다니고 선생님의 어머니인 할머니와도 친해진다. 할머니는 레베카의 엄마와 가까이 지낸 얘기를 들려주며 엄마가 남겨놓은 일기를 찾아보라고 권한다. 일기를 읽으며 엄마를 이해한 레베카는 “책상 앞에 앉아 거울을 통해 딸이 지나가는 걸 지켜봤다”는 대목에서 목이 멘다.

어느 날 루칠라의 가족이 급하게 이사 가고, 아빠마저 마달레나 아줌마에게 모든 걸 맡기고 떠나 버린다. 심한 놀림 속에서도 꿋꿋하게 성장한 레베카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피아니스트 역 배우의 ‘손가락 대역’을 하며 생활한다. 어느 날 영화를 보다가 레베카의 손과 레베카의 연주를 알아본 루칠라가 찾아온다. 세 살짜리 딸을 데리고.나는 못생긴 사람일까?레베카가 차분하게 잘 성장한 비결은 뭘까. 각자 생각이 다르겠지만 레베카가 자신의 외모를 받아들인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올 듯하다. 레베카는 누구와 비교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못생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욕망을 마음에서 몰아냈기에 못생긴 여자가 하고 싶은 일의 폭은 터무니없이 좁다”고 말한다. 레베카는 터무니없이 좁은 일과 피아노라는 재능이 맞물리는 행운을 얻는다.

“음악은 내 인생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새로운 사실은 그동안 느껴본 적 없는 감정들로 나의 일상을 채워주었다. 나를 움켜쥐고 있었던 일종의 공허함, 그 막막하기만 했던 기다림의 시간이 서서히 메워지기 시작했다”는 고백은 외모와 상관없이 누구나 만나야 할 지점이다.

오른쪽 눈과 얼굴 털 제거 수술을 받은 레베카는 예전보다 예뻐졌다고 감탄하는 루칠라에게 “하지만 못생긴 건 어쩔 수 없어”라며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해질 때까지 여기 갇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면서 지내는 거야”라고 답한다. 대단한 미남인 아버지에 대해 “나처럼 맞서서 세상일을 헤쳐나갈 줄 몰라”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나름 잘 지내고, 그렇게 외롭지 않다면서도 레베카는 루칠라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누가 진짜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남자일까? 나는 못생긴 사람일까? 책을 읽으면 이런 질문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서 답이 들려올지 모른다.